연합뉴스677조원 규모의 내년도 예산안을 심사하는 국회가 쟁점 예산을 두고 합의에 이르지 못하면서, 최소 수십조 원의 예산이 '소(小)소위원회(소소위)'에서 논의될 전망이다.
문제는 소소위의 경우 법적 근거가 없고 속기록도 남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에 따라 소수 국회의원이 국민의 혈세를 깜깜이로 좌지우지한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감사원도 최근 감사 보고서를 통해 소소위에서 끼워 넣은 '쪽지 예산'이 국가 재정 관련 법령을 위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 예비비, 경찰 특활비 등 예산 줄줄이 '소소위'로
27일 CBS노컷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는 조만간 내년도 예산안을 심의하는 소소위를 구성할 것으로 보인다. 예결위는 예산안조정소위원회를 통해 부처별 감액 심사를 진행했지만, 주요 사업 예산안을 두고 여야가 합의하지 못하면서 무더기로 보류됐다. 예결위 관계자는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올해 보류 규모가 상당해 유례없는 금액을 소소위에서 다룰 것으로 보인다"라고 설명했다.
보류된 예산안 규모는 평년을 뛰어넘어 수십조 원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감액 규모가 확정된 이후 증액 심사가 진행되는데, 이 과정에서 보류 예산 규모는 더 늘어갈 가능성이 크다. 규모가 큰 보류 예산 중에는 정부 예비비(4조8천억원)가 포함됐다. 더불어민주당은 "민생 경제를 살리는 데 써야 한다"며 2조8천억원의 감액을 요구했다. 또 정부가 6조원대로 편성한 공적개발원조(ODA) 사업과 3천억원대의 보건복지부의 '전공의육성지원' 예산, 1800억 규모의 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비용도 보류 처지에 놓였다.
이 밖에 △경찰 특활비 △동해 심해 가스전 사업인 '대왕고래 프로젝트' △서울-양평고속도로 △김건희 여사 예산으로 지목된 '전국민 마음투자 지원 사업' 등도 보류될 처지에 놓였다. 보류된 예산안들은 소위에서 다시 논의되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예결위 전체회의가 법정 처리 시한(12월2일) 전인 29일로 예정돼 있고 다시 소위를 여는 것은 물리적으로 어렵기 때문이다.
보류된 예산은 예결위 소소위로 넘어갈 예정이다. 소소위는 법정기한 내 처리하지 못한 예산의 증액, 감액을 심사하기 위해 꾸려지는 비공식 협의체다. 소소위에는 예결위원장과 여야 간사, 기획재정부 차관 등 소수만 참석한다. 소소위는 효율적인 심사를 위해 당 지도부와 간사 등이 물밑에서 소통하며 협의를 진행한다.
회의록도 남지 않는 '비공식' 기구…감사원 "불법 쪽지예산 2520억원"
국회의사당. 연합뉴스
문제는 소소위의 경우 법적 근거가 없는 협의체라는 점이다. 현행법에 따르면, 예산안 최종 심의는 예결위 소위에서 다루도록 규정하고 있다. 여기에 소소위 논의 과정은 속기록이나 회의록도 남기지 않아 어떤 과정을 거쳐 심사됐는지 공개되지 않는다. 이에 따라 수조 원에 달하는 예산안을 소수 인원이 밀실에서 결정한다는 비판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이러한 구조 때문에 소소위에서는 '쪽지 예산'이 거래될 환경이 조성된다. 국회의원들이 자신의 지역구를 챙기기 위해 '쪽지 예산'도 비판 받는 대목이다. 감사원이 전날 공개한 '국고보조금 편성 및 관리 실태' 감사 보고서에 따르면, 이같은 과정을 통해 거래된 '쪽지 예산' 상당수가 보조금법 등 국가 재정 관련 법령을 위반했다고 밝혔다. 구체적으로 이같은 '불법 예산'은 2021년부터 올해까지 20개 사업, 2520억원에 달한다고 지적했다.
민주당은 28일까지 진행되는 증액 심사에서 '이재명표 예산'인 지역화폐법과 고교무상교육 등 사업 예산을 증액해야 한다고 요구 중이다. 반면 국민의힘은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며 민주당의 일방적인 예산 삭감에 반발하고 있다. 이에 따라 예산안을 법정시한인 다음달 2일 전 처리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