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성탄절) 이브를 하루 앞둔 지난 23일 오후 서울시 은평구의 한 고깃집. 박요진 기자12·3 내란 사태 이후 탄핵 정국이 이어지면서 자영업자들에게 연말·크리스마스(성탄절) 특수는 단어 그대로 남의 나라 이야기다. 코로나19 때보다도 경기가 좋지 않다는 평가 속에 특히 골목상권 자영업자들은 배를 곯아야 하는 위기에 처했다.
20년 동안 고깃집 운영했지만 3일 연속 개시도 못한 건 '처음'
서울 마포구와 은평구에서 20년째 고깃집을 운영하고 있는 70대 주모씨. 주씨의 가게에는 지난주 17일부터 19일까지 단 한 명의 손님도 찾지 않았다. 사흘 연속 이른바 개시(開市)도 못하고 집으로 돌아간 것. 가족과 함께 일하며 인건비를 줄이며 근근이 버텼는데 이제는 현상 유지도 힘든 상황이다.
주씨는 "간간이 이어지는 손님도 12·3 내란 사태 이후 거의 끊겼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한창 송년회 등의 모임을 가져야 할 지난 23일 오후 8시 30분쯤, 주씨의 가게에 놓인 10여 개 테이블 중 단 한 테이블에만 손님들이 자리잡고 있었다.
비슷한 시각 방송국이 밀집해 있는 마포구 상암동 먹자골목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송년회 등으로 불야성을 이뤄야 할 때지만 음식점이나 술집의 절반 정도가 문을 닫았거나 대부분 한두 테이블만 이용 중이었다. 일본 음식점을 운영하는 50대 한모씨는 "크리스마스를 전후한 이 시기는 30분 이상 줄을 서는 게 보통이었는데 올해는 상황이 완전히 다르다"고 설명했다. 부정적인 경기 전망에 12·3 내란 사태 이후 불안정한 탄핵 정국이 이어지면서 자영업자들은 사실상 배를 곯아야 하는 상황에 놓인 셈이다.
크리스마스(성탄절) 이브를 하루 앞둔 지난 23일 오후 서울시 은평구의 또 다른 음식점. 박요진 기자12·3 내란 사태 이후 다수가 참여하는 모임은 간소하게라도 진행되곤 하지만 소규모 모임은 애초에 잡히지 않거나 취소되고 있다는 게 자영업자들의 목소리다. 이 때문에 골목상권의 상인들이 더 큰 타격을 받고 있다. 대를 이어 곱창집을 운영하는 40대 김모씨는 "지난해까지만 하더라도 하루 한두 건의 예약이 있어서 연말특수를 조금이나마 실감할 수 있었다"며 "올해 12월에는 예약이 단 한 건도 없어 하루에 식당을 찾는 손님들을 손에 꼽을 정도로 골목상권이 더 큰 타격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2016년 탄핵 정국 5개월 부정 전망…자영업자 61%, 매출 30% 이상 감소
지난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정국 당시에도 소비자심리지수(CCSI, Consumer Composite Sentiment Index)는 5개월 연속 앞으로 더 나빠질 것으로 전망한 기준치 100 아래를 기록했다. 헌법재판소가 탄핵 인용 여부를 결정할 때까지 이번에도 당분간 부정적인 전망이 유지될 수 있다는 의미다.
최근 소상공인연합회가 12·3 내란 사태 일주일 뒤인 지난 10일부터 12일까지 전국 일반 소상공인 총 1630명을 대상으로 온라인 설문한 결과를 보면 응답자의 88.4%가 매출 감소를 경험했다고 답했다. 매출 감소 규모로는 △50% 이상(36%) △30~50%(25.5%) 라고 답해 소상공인의 61% 이상이 30% 이상의 매출 감소를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크리스마스(성탄절) 이브를 하루 앞둔 지난 23일 오후 서울시 마포구의 한 음식점. 박요진 기자크리스마스 이브인 24일 오후 양천구 목동에서는 송년회 등의 모임을 점심에 진행하는 직장인들의 모습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직장인 50대 김모씨는 "송년회 모임을 점심에 진행하는 문화가 시작된 것은 비교적 오래지만 올해는 점심에라도 모임을 하는 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며 "탄핵안 통과 이후 정부나 곳곳에서 일상을 회복해야 한다고 말하는데 여전히 내란 사태가 지속되는 분위기"라고 설명했다.
"혹시 방 있나요"…회식하더라도 '눈치' 자기검열, 배달도 감소
내란 사태 이후 탄핵 정국이 이어지면서 드러내놓고 모임을 하기는 조심스럽다는 손님들 역시 늘고있다. 이들은 회식을 하더라도 칸막이 등으로 구분된 독립 공간을 찾고 있다. 상암에서 일하는 직장인 40대 최모씨는 "방송국에 근무하는 특성이 있어 더 그럴 수 있지만 회식을 하더라도 독립된 공간을 찾게 되는 것 같다"며 "이 시국에 회식을 하는 게 맞는지 자기검열을 하게 된다"고 말했다. 실제 이른바 방(룸)식 공간이 없을 경우 발길을 돌리는 손님도 있다.
배달을 겸하는 식당들의 처지도 곤궁하긴 마찬가지다. 코로나19 이후 식당은 찾지 않더라도 배달을 이용하는 경우가 늘었지만 올해 연말에는 이마저도 크게 줄었기 때문이다.
통계청이 한국신용데이터를 토대로 산출한 '배달 외식 매출 건수'를 보면 이달 6일 기준 배달 외식 매출 건수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8.0% 줄었다. 갈비탕 등을 판매하는 식당에 근무하는 30대 홍모씨는 "코로나19 이후 배달이 전체 주문의 절반 정도였지만 올해는 하루 한두 건 들어오곤 한다"며 "집에서도 외식을 자제한다는 뜻으로 사회 전반적으로 연말 특수는 사라졌거나 줄어들었다고 보는 게 맞는 것 같다"고 밝혔다. 인근에서 분식점과 정육점을 운영하는 자영업자들도 "그래도 배달은 큰 영향이 없겠지 생각했지만 아니"였다며 "집회는 못가더라도 외식이라도 자제하자는 분위기가 느껴진다"고 강조했다.
이날 통계청 나우캐스트에 따르면 12·3 내란 사태가 터진 이달 첫째 주(2~6일) 신한·현대·KB국민·롯데·비씨·삼성·NH농협·하나카드 등 8개 카드사의 신용카드 평균 이용금액은 직전 주 대비 26.3% 급감했다. 같은 기간 신용카드 이용 금액은 전국 17개 모든 시·도에서 감소한 가운데 서울의 감소율은 29.3%로 광주와 전북, 전남, 대구에 이어 가장 높았다.
정부가 공공 부문에서부터 연말·연시 모임을 활성화하고 내년 예산의 4분의 3을 상반기에 집행하는 등 내수 경제를 살리겠다는 방침을 밝힌 가운데 실제 경기 개선으로 이어질지 관심이 모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