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스턴 딜런 브룩스와 골든스테이트 스테판 커리. 연합뉴스 미국프로농구(NBA) 휴스턴 로켓츠의 2010년대는 제임스 하든의 시대였다.
하든은 2012년부터 2021년 1월(브루클린 네츠로 이적)까지 휴스턴을 서부컨퍼런스의 대표적인 강호로 이끌었다. 2018년 정규리그 MVP를 차지했고 세 차례나 득점왕에 올랐다. 휴스턴은 2012-2013시즌부터 하든이 떠나기 전까지 매 시즌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치열하기로 악명 높은 서부컨퍼런스 결승에만 두 차례 올라갔다.
하지만 하든은 휴스턴 소속으로 NBA 파이널 무대를 밟지 못했다. 휴스턴에게는 안타깝게도, 2010년대 서부컨퍼런스는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의 시대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스티브 커 감독의 지휘 아래 스테픈 커리, 클레이 탐슨, 드레이먼드 그린 등이 똘똘 뭉친 골든스테이트는 2010년대 중반부터 플레이오프 무대에서 무려 4번이나 하든이 이끄는 휴스턴의 발목을 잡았다.
그 시작은 2015년이었다. 골든스테이트는 2014-2015시즌 서부 결승에서 휴스턴을 4승 1패로 따돌렸다. 커리는 평균 31.2점, 3점슛 성공률 49.1%를 기록하며 휴스턴을 무너뜨렸다. 골든스테이트는 기세를 몰아 NBA 파이널에서 르브론 제임스의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를 6경기 만에 누르고 정상에 섰다.
휴스턴과 골든스테이트가 서부컨퍼런스의 대표적인 강호였던 만큼 포스트시즌 무대에서도 자주 만났다. 2016년에도 골든스테이트가 이겼다. 서부 1라운드에서 5경기 만에 휴스턴을 집에 보냈다. 커리가 부상 여파로 2경기밖에 뛰지 못했지만 탐슨이 시리즈 평균 23.4점을 기록하며 팀을 이끌었다.
양팀은 2018년 서부 결승에서 다시 만났다. 양팀 모두 이전과는 달랐다. 휴스턴에는 크리스 폴이 가세했고 골든스테이트에는 케빈 듀란트가 합류했다. 그런데 폴과 하든의 시너지가 굉장했다. 휴스턴은 그해 서부컨퍼런스 1번 시드 팀이었고 워리어스를 상대로 3승 2패 우위를 점하며 설욕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그러나 돌발 악재가 발생했다. 폴이 5차전 막판 햄스트링 부상을 당한 것이다. 휴스턴은 폴 없이 남은 경기를 소화해야 했고 결국 2연패를 당하며 무너졌다. 마지막 7차전에서는 3점슛을 27개 연속 실패(NBA 기록. KBL 기록은 수원 KT가 기록한 23개 연속 실패, 최근에 나왔다)하는 등 무기력했다.
양팀의 인연은 계속 됐다. 2019년 서부 2라운드에서 또 만났다. 그러나 이번에도 골든스테이트가 이겼다. 시리즈는 4승 2패로 끝났다. 듀란트가 평균 33.2점, 3점슛 성공률 43.8%를 기록하며 휴스턴에 악몽을 선사했다.
이후 하든이 휴스턴을 떠나면서, 골든스테이트도 변화와 부상 등의 여파로 주춤하면서 두 강호의 포스트시즌 대결은 한동안 열리지 않았다. 그 사이 휴스턴은 리빌딩을 단행했다. 골든스테이트는 변함없는 '윈 나우(Win now)' 체제였다. 2022년에 NBA 정상을 탈환하기도 했다.
휴스턴은 2024-2025시즌의 주인공 중 하나다. 이메 우도카 감독 체제에서 빠르게 리빌딩을 완성하면서 서부컨퍼런스 2번 시드를 따냈다. 알파렌 센군, 제일런 그린, 아멘 톰슨, 프레드 밴블릿, 딜런 브룩스 등을 중심으로 신구 조화를 잘 이뤘다. 강력하고 끈적끈적한 수비의 힘으로 돌풍을 일으켰다.
시즌 중반까지만 해도 골든스테이트는 플레이오프 진출을 장담할 수 없었다. 그러나 지미 버틀러를 트레이드로 영입하면서 판이 뒤집혔다. 커 감독이 "지미 버틀러 트레이드가 우리의 시즌을 구했다"고 말했을 정도다. 치열한 경쟁에 밀려 플레이-인 토너먼트를 치르기는 했지만 한 경기 만에 7번 시드를 따냈고 다시 한 번 휴스턴에 맞섰다.
지난 네 차례 대결과는 양상이 달랐다. 과거와는 달리 이번에는 골든스테이트가 도전하는 양상이었다. 하지만 결과는 같았다. 골든스테이트가 또 이겼다.
골든스테이트는 5일(한국시간) 미국 휴스턴에서 열린 2024-2025 NBA 서부컨퍼런스 1라운드 7차전에서 휴스턴을 103-89로 제치고 2라운드행 막차 티켓을 따냈다. 이 시리즈가 골든스테이트의 4승 3패 업셋(upset)으로 끝나면서 2라운드 대진이 모두 완성됐다.
골든스테이트는 7번 시드의 불리함을 뒤로 하고 먼저 3승 1패를 기록하며 우위를 점했다가 2연패를 당하면서 탈락 위기에 몰렸다. 하지만 경험이 팀을 살렸다. 휴스턴이 7차전의 압박감 속에 주춤하는 사이 버디 힐드의 외곽포가 경기 초반부터 불을 뿜었고 후반에는 커리가 살아났다. 고비 때마다 상대 흐름을 끊는 버틀러와 그린의 노련한 플레이를 휴스턴이 당해내지 못했다.
힐드는 3점슛 9개를 포함해 3점슛 33점을 퍼부었다. 이번 시즌을 앞두고 댈러스 매버릭스로 이적한 클레이 탐슨을 대신해 슈터 포지션을 맡은 힐드는 시즌 내내 기복을 보이다가 가장 결정적인 순간 화려하게 빛났다. 탐슨에게 '게임 식스 클레이(Game six Klay)'라는 별명이 있다면 이날만큼은 힐드를 '게임 세븐 버디(Game seven Buddy)'라 부를만 했다.
전반 3득점에 그쳤던 커리는 총 22점 10리바운드 7어시스트에 스틸과 블록슛을 각각 2개씩 기록하며 팀 승리를 견인했다. 올해 플레이오프에서 LA 레이커스의 르브론을 비롯해 하든, 카와이 레너드(이상 LA 클리퍼스), 케빈 듀란트(피닉스 선즈·PO 진출 실패) 등 2010년대를 이끌었던 스타들이 하나둘씩 조기 탈락하는 가운데 커리는 러셀 웨스트브룩(덴버 너겟츠)과 함께 2라운드에도 살아남았다.
버틀러는 20점 8리바운드 7어시스트로 활약했다.
휴스턴에서는 24점을 기록한 아멘 탐슨의 분전이 돋보였다. 탐슨은 이번 시리즈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운동 능력과 감각으로 골든스테이트를 공포에 몰아넣었고 마지막 경기에서도 눈부신 활약을 펼쳤지만 팀 패배로 빛이 바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