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오요안나 기상캐스터. 오요안나 인스타그램고용노동부가 직장 내 괴롭힘 피해를 호소하며 세상을 떠난 고(故) 오요안나 기상캐스터 사건을 특별근로감독 한 결과, '괴롭힘'이 있었다는 것은 인정되나 고인의 근로자성은 인정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이에 유족과 노동시민사회계는 모순된 결론을 냈다며 강력히 비판했다.
고용노동부는 2월 11일부터 지난 16일까지 약 3개월 동안 MBC(㈜문화방송)를 대상으로 특별근로감독을 실시했다. 고인 대상 괴롭힘 행위 유무를 비롯해 MBC 전반의 조직문화와 인력 운용 상태 등도 살펴 오늘(19일) 결과를 발표했다.
감독 결과를 요약하면 고인을 향한 '괴롭힘'은 인정되나, 고인을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인정하기는 어렵다는 내용이다.
①고인이 기상캐스터를 시작한 지 1~3년 이내의 사회 초년생인 점 ②업무상 필요성을 넘어 개인적 감정에서 비롯된 불필요한 발언이 수차례 이어져 온 점 ③지도·조언에 대해 선·후배 간 느끼는 정서적 간극이 큰 점 ④고인이 주요 지인들에게 지속적으로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고 유서에 구체적 내용을 기재한 점 등을 근거로 '괴롭힘이 있었다'라고 판단했다.
고용노동부는 MBC 기상캐스터를 "각각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가진 프리랜서 신분"이라면서도 "당사자들 간에 선·후배 관계로 표현되는 명확한 서열과 위계질서가 존재하는 조직문화 속에서 선·후배 간 갈등이 괴롭힘에 해당하는 행위들로 이어진 측면이 크다고 보았다"라고 설명했다.
다만 고인의 '근로자성'은 불인정했다. 참고인 조사, 고인의 소셜미디어와 노트북 포렌식 분석 등을 바탕으로 업무 처리 실태를 살펴봤을 때, 기상캐스터는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인정하기 어려워 같은 법 제76조의 2에 따른 '직장 내 괴롭힘' 규정을 적용할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①MBC와 계약된 업무 외에는 MBC 소속 근로자가 통상 하는 행정·당직·행사 등의 다른 업무를 하지 않은 점 ②일부 캐스터는 외부 기획사와 전속계약을 하거나, 엔터테인먼트사에 회원 가입을 하고 자유롭게 타 방송 출연이나 개인 영리활동을 해 왔고 그 수입이 전액 본인에게 귀속되는 ③기상정보 확인, 원고 및 CG 초안 작성 등 주된 업무수행에 구체적 지휘·감독 없이 기상캐스터가 상당한 재량을 가지고 자율적으로 업무를 수행한 점 ④취업규칙 및 복무규정 적용 비대상이며 방송 시작 2~3시간 전 자유롭게 출근하고 방송이 끝나면 별도 절차 없이 자유 퇴근한 점 ⑤별도로 정해진 휴가 절차 없이 기상캐스터 간 서로 조율해 업무 대체 후 휴가를 보내고 방송 출연 의상비를 기상캐스터가 직접 코디를 두고 지불한 점 등을 근거로 제시했다.
유족과 노동시민사회계는 감사 결과를 '반쪽'이라며 비판했다. 방송을만드는사람들의이름 엔딩크레딧·민주노동당·공공운수노조 희망연대본부 방송스태프지부·직장갑질119·노동인권실현을 위한 노무사모임 노동자성 연구 분과는 19일 오전 11시 서울 중구 서울지방고용노동청 본청 앞에서 'MBC 오요안나 기상캐스터 사망 사건 고용노동부 특별근로감독 결과 규탄 긴급 기자회견'을 열었다.
MBC 뉴스 방송작가 소송에서 법원이 뉴스 프로그램 방송작가를 MBC가 고용한 직원으로 판단한 사례를 먼저 언급한 윤지영 직장갑질119 대표는 "방송의 특성상, 프리랜서라고 이름 붙여진 사람들이 절대 프리하게 일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운을 뗐다. 윤 대표는 "고 오요안나 캐스터의 근무 상황도 다르지 않았는데, 고용노동부가 법리를 제대로 살피지 않았다고밖에는 설명할 길이 없다"라고 지적했다.
19일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앞에서 열린 MBC 오요안나 기상캐스터 사망 사건 고용노동부 특별근로감독 결과 규탄 기자회견 모습. 주최 측 제공하은성 노무사는 "고용노동부는 '기상캐스터가 한 방송사에 전속되지 않고 여러 군데서 일을 할 수 있는 점'이 근로자 부정의 근거가 된다고 했는데, 대체 어떤 기상캐스터가 여러 방송사에서 기상캐스터 업무를 하고 있는지 되묻고 싶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오늘 특별근로감독 결과는 노동자의 권리를 보호할 노동부가 되려 방송사의 비정규직 노동자 착취와 사용자 책임 회피에 면허를 부여한 셈"이라며 "누가 고용노동부에게 그러한 권한을 주었습니까?"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고인의 어머니인 장연미씨는 "MBC가 시키는 대로 일했는데, 노동자가 아니라고 한다. 고용노동부는 MBC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려고 이런 결정을 한 것이냐"라며 "유가족은 이번 특별근로감독 결과를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 절대 승복하지 않을 것이다. 가해자들이 진심으로 사과하고 MBC가 책임질 수 있도록 많은 분들이 함께 해 달라"라며 끝내 눈물을 보였다.
기자회견 참여자 일동은 "고용노동부가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고, 여전히 오요안나 기상캐스터의 죽음에 제대로 된 사과도, 책임 인정도 없이 노동 악습을 유지 중인 MBC가 진심으로 사죄하고 재발 방지를 위한 대책을 펼칠 때까지 계속 투쟁을 멈추지 않겠다"라고 강조했다.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이하 '한빛센터')도 같은 날 성명을 내어 "직장 내 괴롭힘은 있었지만 이를 막을 법 적용 대상은 되지 않는다는 대단히 유감스러운 결과"라고 평가했다.
우선, "계약된 업무만을 수행하는 것이 정상적인 상황"이기에 방송사 계약 업무 외의 다른 직원이 하는 통상 업무를 수행하지 않는 것을 곧 '노동자성 부정의 근거'가 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또한 "전속성 기준으로 노동자성을 판단하는 것은 낡은 방식이다. 게다가 저임금 구조 속에서 별도의 개인 영리활동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조건이었기 때문에, 다른 경제활동이 경제적 종속성을 낮춰주는 것도 아니었다"라고 짚었다.
이어 "대법원 판례에서도 상당한 지휘·감독만으로도 노동자성을 인정하는 것으로 바뀐 지가 10년도 훨씬 넘었다. 출퇴근이 자유롭다는 결론도 비상식적이다. 회사가 배정한 방송 시간에 무조건 맞춰 출근해야 했기 때문이다. 다른 기상캐스터들과 상호 조율로 휴가를 실시했다는 점은 오히려 근로자성의 징표로 봐야 한다. 스스로 대체인력을 구해서 대신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상호 계약관계에 놓여있지 않은 기상캐스터들 간의 조율을 강제하는 것은 회사의 존재가 없다면 설명되지 않는다"라고 비판했다.
한빛센터는 고용노동부에 "특별근로감독 결과가 방송 노동의 현실과 법원의 판례에 부합하는지 재검토"할 것과 "직장 내 괴롭힘과 산업안전에 대한 실질적 보호 범위를 넓힐 수 있는 제도 개선 방안을 강구해야 할 것"을, MBC에 "특별근로감독을 책임 소재의 면피용으로 활용할 것이 아니라 고용구조 개선과 무늬만 프리랜서에 대한 처우 개선을 위한 실질적인 대책을 내놓아야 할 것"을 각각 촉구했다.
한편, MBC는 이날 공식입장을 내어 "故 오요안나씨의 명복을 빈다. 유족분들께도 머리 숙여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라며 "고용노동부의 특별근로감독 결과를 매우 엄중하게 받아들인다. 재발 방지 대책 마련과 조직문화 개선, 노동관계법 준수를 경영의 최우선 과제로 올려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라고 알렸다.
구체적으로, "조직문화 개선을 위한 노력을 지체 없이 수행하겠다"라며 "관련자에 대해서는 적절한 조치를 하겠다"라고 전했다. MBC는 노동부에 제출한 '조직문화 전반에 대한 개선계획서'를 바탕으로 이미 개선 조치를 진행하고 있다며 "이번 발표를 계기로 미진한 부분은 없는지 거듭 확인하고 보완해 나가겠다"라고 약속했다.
MBC는 "프리랜서를 비롯한 비정규직, 외주사 직원 등 문화방송에서 함께 일하는 동료들이 차별받지 않도록 더욱 노력하겠다. 또 프리랜서 간, 비정규직 간 발생할 수 있는 문제도 최대한 빨리 개선할 수 있는 제도를 더 보완, 강화하겠다. 현재 운영 중인 클린센터를 확대 강화하여, 괴롭힘이나 어려움을 곧바로 신고하고 개선할 수 있게 하겠다. 고용 형태와 상관없이 동료들이 이를 인지했을 때는, 익명성을 담보 받고 신고할 수 있도록 개선하겠다"라고 밝혔다.
마지막으로 "일부 프리랜서들의 근로자성 판단에 대해서는 법적 검토를 거쳐 조속한 시일 내에 합당한 조치를 시행하겠다. 故 오요안나씨의 안타까운 일에 대해 유족들께 다시 한번 사과드린다"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