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베개 제공 춘향은 기생인가, 양반가 규수인가.
고전소설 '춘향전'은 18세기 이후 판소리로 공연되며 민중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다. 이후 140종이 넘는 이본이 등장했고, 그중 두 대표 이본인 '완판 84장본'과 '경판 30장본'을 함께 엮은 책 '열녀춘향수절가'가 출간됐다.
'춘향전'의 두 가지 맛을 한 권으로 통독할 수 있는 이번 책은 전주의 '완판(完板)'과 서울의 '경판(京板)'이라는 두 출판 지역의 차이뿐 아니라 춘향의 신분, 성격, 주변 인물에 대한 묘사에서도 극명한 차이를 보여준다.
기생 춘향과 양반 서녀 춘향, 연애를 주도하는 춘향과 음전한 춘향, 오만한 춘향과 서민의 지지를 받는 춘향 등 같은 이야기라도 전혀 다른 인물상이 펼쳐진다.
특히 완판 84장본 '열녀춘향수절가'는 조선 후기에 전주 일대에서 유통된 장편 완역본으로, 생생한 호남 방언과 판소리 리듬, 성적인 비유로 당시 민중의 언어와 감각을 생동감 있게 담아냈다. 이에 비해 경판 30장본 '춘향전'은 서울에서 유통된 비교적 짧은 분량의 버전으로, 이야기의 뼈대와 구조가 간결하며 원형에 가까운 서사를 간직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고전 '춘향전'을 바탕으로 각색된 영화 '방자전'과 국립창극단 대표 공연 '춘향전
책은 고어 원문과 현대어 번역을 나란히 배치하여 고전 읽기의 장벽을 낮췄다. 옮긴이는 "정보 습득이 목적이 아닌 작품 감상을 목표로 삼는다면, 고전만은 통독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춘향의 다양한 형상을 비교하며 읽다 보면 '춘향전'이 한 시대의 사상과 미의식을 어떻게 반영해 왔는지 자연스레 드러난다.
'춘향전'은 지금도 개작되고 있다. 기생이 정실부인이 되는 이야기의 무게감, 사랑과 저항을 동시에 품은 서사, 그리고 독자와 작가의 개입을 유도해 온 유연한 서사 구조는 이 고전이 끊임없이 재생산되는 원동력이기도 하다.
완판과 경판을 나란히 읽는다는 건 고전을 해체하고 다시 조립하는 경험이다. '열녀춘향수절가'는 그러한 경험을 가능케 하는 텍스트이자, 고전 읽기의 즐거움을 회복시키는 책이다.
정길수 옮김 | 돌베개 | 31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