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란 쿤데라. 민음사 제공세계적 작가 밀란 쿤데라의 2주기를 앞두고, 그의 미발표 산문 2편을 엮은 유고작 '89개의 말·프라하, 사라져가는 시'가 출간됐다.
제목 그대로, 단어 하나하나에 깃든 쿤데라의 사유와 상실의 정조를 고스란히 담은 이 책은 작가의 내면과 문학적 세계를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개인적 기록이자 철학적 유언이다.
체코슬로바키아에서 태어나 1975년 프랑스로 망명한 쿤데라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통해 인간 존재의 무게를 탐구한 대표적인 현대 작가다. 이번에 공개된 유고 산문 두 편은 그가 프랑스의 인문·정치잡지 '데바'에 각각 1985년과 1980년에 발표한 글로, 쿤데라의 사유와 고뇌가 농축된 텍스트다.
앞서 실린 '89개의 말'은 제목과 달리 총 101개의 단어로 구성된 미니 사전이다. 이 글은 쿤데라가 자신이 중요하게 여긴 단어, 회피하고 싶은 단어, 끝내 정의하지 못한 단어들에 대해 사유한 짧은 글 모음이다.
'아이러니', '절대', '존재', '저속함', '오르가슴' 같은 항목들 속에는 쿤데라 특유의 아이러니와 유머, 철학적 성찰이 배어 있다.
그는 "소설은 본질적으로 아이러니의 예술이며, 그 진실은 숨겨져 있고 말해지지도 말해질 수도 없다"고 정의하며, 자신이 쓴 언어에 얼마나 집착하고 성찰했는지를 드러낸다. 프랑스어 번역본이 왜곡된 사실에 분노하면서도, 결국 프랑스어로 집필할 수밖에 없었던 망명 작가의 정체성은 이 글 속 곳곳에 배어 있다.
민음사 제공 이어 실린 '프라하, 사라져가는 시'는 단행본으로 국내에 처음 번역 소개되는 글이다. 작가는 고국 체코와 그 수도 프라하를 향한 깊은 애정과 안타까움을 담아, '천년 역사의 마지막 메아리'가 어떻게 '전체주의의 밤' 속에 파묻혔는지를 서술한다.
그는 "소국은 대국을 모방한다는 믿음은 환상"이라며, 카프카와 야나체크, 초현실주의 시인 네즈발 등 중부 유럽 예술가들이 어떻게 자신만의 언어와 감각으로 또 다른 유럽을 창조했는지를 강조한다. 특히 '소송'의 요제프 K와 '용감한 병사 슈베이크'가 예견한 전체주의의 도래를 예리하게 짚으며, 프라하의 고유한 문화가 어떻게 억압당하고 지워졌는지를 담담히 고찰한다.
이번 책의 서문을 쓴 편집자 피에르 노라는 "이 책은 밀란 쿤데라의 소설 세계에 대한 최고의 입문서이자, 그의 섬세한 판단과 아이러니를 재발견할 기회"라고 소개했다.
밀란 쿤데라 지음 | 김병욱 옮김 | 민음사 | 13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