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윤희숙 혁신위원장이 13일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출범 직후 발빠르게 혁신안을 내놓던 국민의힘 혁신위원회가 당내 가장 예민한 이슈인 '인적 쇄신'의 기준을 설명했다. 그러나 책임자 징계나 불출마 권고 같은 통상의 방식 대신 불특정 다수를 향한 '사과 촉구' 정도의 소극적 조처가 뒤따랐다.
친윤(윤석열)계로 불리던 구(舊) 주류의 반발 여론을 의식해 진화에 나선 게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오히려 쇄신 의지가 있느냐는 당내의 의심은 더욱 커져가는 모양새다.
"사과 없는 인물은 쇄신 0순위"…하지만 누구를, 어떻게는 없었다
윤희숙 혁신위원장은 13일 기자간담회에서 "당이 이 지경까지 오기까지 당원들을 절망시키고 수치심을 느끼게 한 일들이 있다"며 8가지 인적 쇄신 기준을 설명했다.
그 기준으로 △대선 패배 △대선 후보 교체 시도 △전당대회 직후 김문수 후보의 단일화 입장 번복 △계엄 직후 대통령 관저 시위 참여한 국회의원 40여 명 △당대표 가족 연루 당원 게시판 사건 △22대 총선 비례대표 공천 관행 무시 △특정인을 위한 당헌·당규 개정 △尹정권 왜곡된 국정 운영 방치 등을 꼽았다.
다만 윤 위원장은 사퇴, 탈당, 조사, 징계, 불출마 권고와 같은 통상적인 인적 쇄신의 방식은 거론하지 않았다.
그저 "잘못하신 분들이 개별적으로 사과를 해야한다"며 불특정 다수에 촉구할 뿐이었다. "사과할 필요도 반성할 필요도 없다고 말하는 이들이 쇄신의 0순위"라고 규정했지만 역시 '선언' 수준을 넘지는 못했다.
그러면서 "칼을 휘두를 권한을 위임받은 게 아니라 당원의 생각과 의지로 칼을 이용하신다고 하면 그것을 이용할 기반을 만들어 드리는 게 혁신위의 역할"이라며 자신에게 인적 청산의 직접적 권한이 없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혁신안에 쏟아진 당내 반발…'사과 촉구'는 친윤 달래기?
연합뉴스당원 소환제 확대 발표라는 명분을 들긴 했지만, 이날 혁신위가 별안간 기자회견을 열어 '사과 촉구'라는 다소 소극적인 입장을 제시한 건 당내 주류 세력의 반발을 진화하기 위해서라는 해석이 나온다.
국민의힘 한 초선 의원은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인적 쇄신 없는 혁신이 어떻게 있겠느냐. 책임져야 할 사람들이 책임지지 않고서는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없다"며 "(혁신위원장의 사과 촉구는) 친윤 달래기로 비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날 기자회견 직전까지 혁신위가 두 차례 내놓은 혁신안을 두고 당내 여러 계파에서 지적했지만 친윤계로 불렸던 구(舊) 주류 쪽의 비판은 특히 격렬했고 공개적이었다.
계엄과 탄핵, 윤석열 부부의 전횡에 관한 사죄를 당헌·당규에 명시하자는 1호 혁신안과 당 최고위원을 폐지하고 당대표 중심 체제를 구축하자는 2호 혁신안이 모두 비판의 대상이었다.
당권 주자로 거론되는 나경원 의원은 "끝없는 갈등과 분열만 되풀이한다"고 했고, 과거 '계엄에 하나님의 뜻이 있다'는 발언으로 구설에 올랐던 장동혁 의원은 "언제까지 사과만 할 거냐"며 혁신위에 날을 세웠다.
나아가 송언석 비상대책위원장 겸 원내대표는 "혁신위가 인적 청산을 먼저 얘기했는데, 일의 순서가 거꾸로 된 것 같다"며 "특정 계파를 몰아내는 식으로 접근하면 당연히 필패하게 돼 있다"고 직격했다.
혁신위원장을 임명한 당 지도부가 혁신위 출범 나흘 만에 공개 견제에 나선 셈이었다.
좁아진 쇄신의 길…"윤희숙 위원장 본인도 대상 아닌가"
혁신위 발표 이후 '쇄신의 의지나 실행력이 있느냐' 하는 의심은 더욱 커지고 있다. 쇄신의 범위 자체를 좁혀놓은 터라 향후 보폭을 넓힐 여지 자체가 없어진 것 아니냐는 우려에서다.
나아가 친한(한동훈)계에서는 인적 쇄신 기준에 이른바 '당원 게시판 사태'가 포함된 데 대한 저항이 거세다. 혁신이라는 이름으로 한동훈 전 대표에게 재 뿌리는 것 아니냐는 반발이다.
친한계 한 의원은 "계엄, 탄핵, 후보 강제 교체 시도, 대통령 관저에 간 것과 비교해 '당원 게시판'은 경중이 맞지 않는다"며 "어떻게 음주운전과 신호위반 정도를 같은 수준으로 놓고 보느냐. 억지로 끼워 맞추기 한 것 같다"고 비판했다.
또 다른 초선 의원도 "지금 가장 중요한 건 우리가 배출한 윤석열 전 대통령이 계엄을 단행했다는 것, 당이 탄핵 반대 당론을 강하게 밀어붙여 이행했던 것"이라며 "새벽 시간에 후보를 교체하려 했던 결정들도 결코 가볍지 않다"고 말했다.
이 초선 의원은 또 "후보 교체 건에 대해서는 윤 위원장 본인이 한덕수 전 총리가 대선 후보자로 가야 한다고 얘기했던 분 아닌가"라며 쇄신 대상에 발화자인 윤 위원장도 포함된다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