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의 모습. 류영주 기자이재명 정부 첫 대규모 검찰 고위급 인사를 앞두고 물러나게 된 주요 간부들이 사의를 표명했다. 이들은 검찰 내부망(이프로스)에 남긴 사직 인사를 통해 최근 검찰을 둘러싼 여러 상황에 대한 당부를 남겼다.
검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본부를 지휘한 박세현(사법연수원 29기) 서울고검장은 이날 사직 인사글을 통해 "최근 몇년간 우리는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 형사사법 시스템의 실상을 직접 겪었고, 비상계엄 수사 과정에서는 그런 문제가 집중적으로 불거져 국민들을 한숨짓게 했다"고 썼다.
박 고검장은 "제도 변경에 대한 평가도, 개선 논의도 국민의 권익을 지키는 데 도움이 되는지의 관점에서 충분히 논의되고 검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국민의 입장에서 제대로 작동되는 제도, 믿을 수 있는 형사사법시스템을 설계하고 운영하기 위해 우리 구성원들의 땀과 눈물이 어린 고민과 노력, 그동안의 생생한 경험들이 충분히 반영되기를 바라고 또 바란다"고 밝혔다.
박세현 서울고검장. 윤창원 기자박 고검장은 법무부 형사기획과장, 대검 국제협력단장, 서울중앙지검 전문공보관 등을 거쳐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에는 대검 형사부장과 서울동부지검장을 역임한 뒤 서울고검장을 맡았다. 지난해 12월 3일 비상계엄 사태 이후에는 검찰 특수본을 맡으면서 윤석열 전 대통령을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기소했다.
윤석열 정부 첫 서울중앙지검장이었던 송경호(29기) 부산고검장은 "중대한 전환점에서 여러분이 국민의 목소리에 더욱 귀 기울이고, 흔들림 없는 사명감으로 국민적 신뢰를 굳건히 회복해 주시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고 밝혔다.
송 고검장은 "조만간 형사사법 시스템 개편이 본격화될 것으로 보인다"며 "국민의 생명, 신체 보호와 직결된 형사사법 절차는 오직 국민의 편익 증진과 범죄에 대한 국가적 대응력 강화를 최우선 목표로 설계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송 고검장은 중앙지검장 당시 야당 대표였던 이재명 대통령의 대장동·백현동 개발 비리 의혹과 '대선 개입 여론 조작' 의혹 사건 등의 수사를 지휘했다. 이후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과 관련해서는 김건희 여사를 검찰청사로 소환해 조사하려고 시도하다 작년 5월 부산고검장으로 '좌천성 승진' 발령됐다.
송경호 부산지검장. 윤창원 기자이를 암시하듯 송 고검장은 "사회적 이목이 집중된 사건들을 처리할 때는 더욱 큰 시험대에 올랐고, 때로는 양쪽 진영의 비판까지 감수해야 했다"며 "하지만 오히려 그 모든 과정이 우리를 더 단단하게 만들었다"고 후배 검사들에 당부했다.
송 고검장과 함께 대장동·백현동 수사를 이끌었던 고형곤(31기) 수원고검 차장검사(검사장)도 이날 이프로스를 통해 사직 의사를 밝혔다.
고 차장은 "모두 힘들고 어려운 시기에 사직 인사를 드리게 돼 송구한 마음이 그지없다"며 "다만 누구보다도 검찰 구성원들의 훌륭함과 저력을 잘 알기에 지금 이 어려움도 슬기롭게 극복해 앞으로도 계속해서 국민의 인권을 보호하고 사회정의를 지키는 국민을 위한 검찰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정영학(29기) 부산지검장은 사직 인사글에서 "검사의 일은 과분하고 힘들었다. 다른 사람의 불행을 다루는 일은 자신을 소모하지 않고는 하기 어렵다"며 "쉽지 않은 일들이 있었지만 선후배·동료 덕에 가파른 고개를 넘고 깊은 골짜기를 건넜다"고 소회를 전했다.
대검 검사장급 참모진 중 최선임인 전무곤(31기) 대검 기획조정부장도 이날 사직인사에서 "어려운 일도 많았지만 매순간 검찰의 철학과 가치를 지키려고 노력했다"며 "검찰의 힘은 평검사들에게 있다. 어려운 상황이지만 힘내시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법무부는 전날 오후부터 검사장급 이상 간부들에게 인사 대상 통보를 했다. 윤석열 정부 당시 중용된 특수·기획통 인사들이 다수 자리를 내놓게 됐다. 법무부는 이날 검찰인사위원회를 열고 검사장 승진과 전보 인사에 대해 심의할 계획이다. 이르면 내일(25일) 단행될 인사를 통해 이재명 정부 첫 검찰 진용이 꾸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