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강원 강릉시 경포해변 일대에 있는 대부분 식당들이 휴업 상태인 모습이다. 한 식당 앞에 '물 절약 동참으로 임시휴무입니다'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박창주 기자"저수지처럼 방문객도 씨가 말랐어요. 이대로라면 가게 문 닫아야죠."
10일 정오쯤 강원 강릉시의 대표 관광지인 경포해변 식당가. 평소 관광객들로 붐볐던 초당순두부 가게를 비롯한 여러 식당의 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한 식당 출입구 옆엔 '물 절약 동참으로 3일간 임시휴무'라고 적힌 A4용지가 붙었고, 영업 중인 일부 식당은 점심 때가 되도록 테이블들이 텅 빈 상황.
한 한식당 테이블 위에는 1.5리터짜리 생수 묶음들이 눈에 띄었다. 사상 최악의 가뭄 사태로 요리와 설거지에 쓰는 물조차 아껴야 하는 처지에 지자체와 가족 등으로부터 전달받은 생수는 영업용이자 '생명수'처럼 쓰이고 있다.
텅 빈 순두부 식당 한편에 지원받은 생수 물병들이 놓여 있다. 박창주 기자지원된 식수 등으로 간신히 마른 물통을 채우고는 있지만, 주고객인 관광객들 발길마저 끊기면서 언제까지 가게 문을 열 수 있을지 장담하기 힘든 처지다.
이 식당 사장 오모(60대·여)씨는 "포항에 사는 오빠가 보내주고 동주민센터에서도 물을 줘서 요리나 손님 제공용으로 쓰고 있다"며 "아끼고 또 아껴 영업하고 있지만,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식당가 인근 자전거 대여점은 문을 닫은 지 오래된 듯 건물과 자전거에 먼지가 수북했다. 바로 옆 또 다른 대여점은 정상 영업 중이었지만, 매장 내 가득 찬 자전거와 전동 킥보드가 '매출 가뭄'을 짐작케 했다.
대여점 사장 박모(40대)씨는 "경포해변 상권의 주요 고객은 랜드마크인 스카이베이호텔의 투숙객인데 수영장, 사우나 등을 닫으면서 호텔 손님이 대거 예약을 취소했다"며 "가게 문을 여는 것보다 닫는 게 더 이득이지만 혹시나 하는 기대감에 영업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도심 시장도 '직격탄'…단수 공포에 '노심초사'
강릉중앙시장에서 개업한 지 두 달 된 물회집 모습. 가뭄 여파로 물이 많이 필요한 소면을 재료에서 빼고 영업 중이다. 박창주 기자강릉 도심 상권도 가뭄에 직격탄을 맞기는 마찬가지다.
두 달 전 강릉시의 주요 전통시장인 강릉중앙시장에 물회집을 개업한 박모(45·여)씨는 메뉴의 주재료가 물인 탓에 이른바 '오픈발'도 포기했다.
물 부족으로 '육수냐 면사리냐'를 놓고 선택의 기로에 선 박씨. 결국 더 많은 물이 필요한 면을 덜어내기로 하고 회와 채소로 빈틈을 메우기로 했지만, 여름 성수기를 맞아 횟값이 오르면서 원가 부담에 허덕이고 있다.
박씨는 "재난지역으로 알려진 뒤부터는 관광객들도 크게 줄어 개업 직후 하루 300그릇 정도 팔리던 매출은 절반 이하로 줄었다"며 "아르바이트생 3명과 함께 장사를 시작했는데 지금은 가족과 단 둘이 영업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초당두부를 만들어 식당에 납품하는 김모(40대)씨도 울상이다. 단체 관광객이 급격히 줄면서 주요 거래처인 대형 식당들이 잇따라 주문을 취소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씨는 "가게 매출 대부분을 책임지고 있는 도매를 포기하고 소매에 매진하고 있다"며 "그러나 팔지 못한 도매 물량이 너무 많아 처치하기가 곤란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비교적 한적한 모습의 강릉중앙시장. 이준석 기자당장 쪼그라든 매출도 문제지만, 상인들이 가장 우려하는 건 '단수'다.
김씨는 "지금은 어렵게라도 장사를 하고 있지만 물이 끊기면 그마저도 어려워져 가게 문을 닫아야 한다"며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하루빨리 비가 오길 기대하면서 조금이라도 물을 아껴 쓰는 것 뿐"이라고 하소연했다.
생선가게 사장 김모(70대·)씨 역시 "평소에는 물을 펑펑 썼는데, 요즘은 단수 걱정에 따로 물을 받아놓고 꼭 필요할 때만 쓰고 있다"며 "지금까지는 어떻게든 버티고 있지만 가뭄이 길어질까 두렵다"고 걱정했다.
강릉시, 도암댐 비상 방류수 수용…가뭄 해소 될까?
강릉시 한 도로변에 군 급수차량들이 주차돼 있는 모습. 박창주 기자상인들과 시민들은 도암댐 비상 방류와 주말에 예고된 비가 가뭄 해소에 도움이 될지 주목하고 있다.
강릉시는 이날 평창군 대관령면 도암댐 도수관로 비상 방류수를 한시적으로 수용하기로 결정했다.
비상 방류수가 남대천을 거쳐 홍제정수장으로 이동할 수 있게 송수시설을 마련하면 하루 1만5천 톤 이상의 원수를 확보할 수 있게 된다. 시험 방류 시기는 오는 20일로, 문제가 발생하지 않으면 바로 방류를 진행한다.
강릉시 관계자는 "이번 비상 방류로 1일 1만t의 원수를 확보할 경우 오봉저수지 저수율 하락세를 늦추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며 "가뭄 극복을 위해 정부 지원을 해준 행정안전부, 환경부, 강원도 등에 감사하다"고 말했다.
또 오는 13일에는 남해안에서 시작한 비 소식이 전국으로 확대돼 강릉에도 단비가 내릴 전망이다.
한편, 강릉시민이 사용하는 생활용수의 87%를 공급하는 오봉저수지의 저수율은 이날 오후 3시 기준 12.0%(평년 70.9%)로, 전날보다 0.2%p 감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