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취항 첫날 잠실에서 마곡으로 항해중인 한강버스. 권민철 기자18일 오전 11시, 서울 잠실선착장에 정박해 있던 한강버스가 닻을 올리고 처녀 운항에 나섰다. 승선 인원 199명을 모두 태운 채였다.
역사적인 순간을 즐기려는 사람들이 몰리면서 미처 배에 타지 못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파도 없는 강물 위라서 그런지 접안해 있던 배가 움직이기 시작했는지는 창밖 풍경을 보고서야 알았다.
승객들은 한강 선상에서 보는 강변 풍경을 사진에 담느라 정신이 없었다.
승객들은 마치 유람선을 탄 느낌이라며 연신 감탄을 연발했다. 시속 23km 안팎인 속도에는 '적당하다', '출근 시간엔 느릴 것 같다'는 반응으로 갈렸다.
첫 목적지인 뚝섬선착장까지는 예정대로 11시 12분쯤 도착했다. 그런데 서쪽을 향하던 배가 반 바뀌 돌아 동쪽을 향한 채로 접안했다. 안전을 위해서다.
동승한 한강버스 관계자는 "선착장 인근 상류에 자리한 오리배 시설을 피해서 접안하느라 P자를 그리며 접안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선착장에 도킹하는 데도 승무원들의 시행착오가 이어졌다.
또 만선이다 보니 승선에도 적잖은 시간이 걸렸다. 인원 초과를 막기 위해 하선하는 사람들이 모두 내린 뒤에 그만큼의 숫자를 채웠다.
만선이 아닌 상태였다면 선수(배 앞부분)와 선미 양쪽으로 승·하선을 나눠한다면 이안(離岸, 부두에서 떠나는 것) 시간이 더 단축될 것 같았다.
9분 뒤 뚝섬선착장을 출발했다. 이번에는 후진한 뒤 선수를 180도 회전한 다음 원래의 방향인 서쪽으로 달렸다.
강변북로에 길게 늘어선 차들이 보였다. 정체가 더 심하다면 한강버스는 더 진가를 발휘할 것 같았다.
적어도 이 배를 탄 사람들에게 올림픽대로와 강변북로의 교통정체는 또 다른 볼거리가 될 수 있겠단 생각도 들었다.
한강 다리와 마주하는 시간도 색달랐다. 배의 위치에 따라 다르게 연출되는 청담대교, 영동대교, 성수대교, 동호대교의 모습은 그동안 봐왔던 다리의 모습과 달랐다.
오세훈 시장이 빡빡하고 바쁘게 돌아가는 서울의 일상에 한강버스가 새로운 숨을 불러일으킬 거라고 말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리라.
동승한 박진영 서울시 한강사업본부장은 "적어도 한강버스의 승선 인원을 걱정하진 않는다"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한강버스 위에서 마주한 또 다른 한강버스. 권민철 기자뚝섬선착장에서 17분 만에 옥수 선착장에 도착했다. 도착 직전에 통과해야하는 동호대교의 교각 때문에 이번에도 같은 방식으로 180도 회전해 접안했다.
옥수선착장에서 승객 20명씩을 내려주고 태운 뒤, 이번엔 10분 만에 이선해 압구정선착장으로 향했다.
처음 탔을 때의 흥분감이 잦아들면서 그제서야 배의 소음이 귀에 들렸다. 시운전 때 지적됐던 엔진 소음이다.
이날 기자가 탄 배는 디젤엔진과 전기모터를 번갈아 돌리는 하이브리드 선박이었다. 그러나 엔진 소음은 어느 배에서나 들을 수 있는 정도여서 크게 신경 쓰이진 않았다.
특히 전기 선박은 소음이 제로에 가깝다고 한다. 그럼에도 전기 선박을 더 들이지 않은 이유는 예산 때문이라고 한다. 전기 선박이 20억원이 더 비싸다는 것이다.
두 유형의 배 모두 최대 시속 37km까지 달릴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한강의 수심(평균 5m)과 항주파(항해시 생기는 파도), 안전 문제 등을 고려해 지금은 23km로 낮춰 운항 중이다.
양쪽 종점인 잠실에서 마곡까지 주파 시간이 당초 예상보다 52분이 더 걸리게 된 것은 이처럼 속도보다는 안전을 선택한 결과다.
10분 만에 다시 압구정선착장에 도착했다. 이곳에서도 역시 상류쪽의 수상레저 시설을 피해서 접안하느라 똑같이 180도 회전해 접안했다.
박진영 본부장은 "민간 영업장에 피해를 주지 않고, 안전도 확보하기 위해 지금은 어쩔 수 없이 이런 식으로 접안을 하지만, 접안 방식 개선을 통한 운행 시간 단축에 상당한 여지가 있는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다시 6분 만에 배는 여의도선착장을 향해 항해를 재개했다. 그런데 배를 둘러보다 배 앞쪽 공간에 마련된 자전거 거치대에 고정돼 있는 자전거 2대를 발견했다.
한강버스에 실린 자전거. 권민철 기자
좌석을 훑어봤다. 헬멧을 들고 있는 주인공(황중환, 46, 잠원동)을 찾아내 대화를 나눴다.
황 씨는 "한강버스 선착장까지 대개는 대중교통을 이용해 접근해야 한다는 점을 알고 자전거를 타고 집을 나서 승선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날 탑승에 굉장한 만족감을 나타냈다. 그는 여의도에서 하선해 점심을 먹고, 자전거를 타고 한강변을 따라 귀가할 것이라고 했다.
그의 말대로 자전거와 한강버스는 이 두 교통수단의 효능감을 배가시킬 절묘한 조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서울시 관계자는 당초에는 자전거 거치대 3~4개만 배치해 구색만 맞추려고 했다고 했다.
그러나 한강변의 자전거 인구가 한강버스에 유입될 가능성을 높다는 지적에 따라 자전거 거치대를 20여 개로 늘렸다고 한다.
여의도선착장에 한강버스가 접안하고 있다. 권민철 기자취항 첫날 여러 시행착오를 뒤로 하고 한강버스는 기자의 목적지인 여의도선착장에 도착했다. 내리고 시계를 보니 12시 34분이었다.
잠실에서 이곳까지 예정됐던 시간보다 11분이 늦었다.
느긋하게 선착장을 빠져나가던 두 승객이 나눈 이야기가 들렸다.
"이게 바쁜 출근 시간에 적합할지는 알 수 없지만, 퇴근 시간의 석양의 황혼은 꼭 한번 보고 싶네…"
"그러게, 봄이나 가을이나 계절마다 배 타는 느낌이 다를 것 같아서 자주 타게 될 것 같긴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