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오후 1시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해밀톤호텔 옆 골목 '기억과 안전의 길'에서 10·29 이태원참사 외국인 유가족이 오열하고 있다. 김수진 기자"그날 이태원에 경찰이 많지 않았어요. 더 철저하고 강력한 안전 조치가 필요합니다.
내 친구(지나트)가 아직도 왜 그날 이태원 거리에 있었는지…믿어지지 않아요."10·29 이태원 참사 3주기를 앞둔 25일, 해외에서 온 40여 명의 유가족은 참사 현장인 이태원역 1번 출구 앞 오르막길을 서성거렸다. 참사 현장을 처음으로 방문한 외국인 희생자 유가족들은 점점 붉어지는 눈시울을 감추려는 듯 고개를 숙였다. 맑은 날씨 속 쨍한 햇볕이 참사 현장을 비추고 있어 유가족들이 끝내 흘린 눈물 자국은 아스팔트 위에 선명하게 드러났다.
이란에서 온 두 여성은 오르막길을 오르다 결국 주저앉아 눈물 섞인 울분을 토해내고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유가족들은 국적과 인종을 떠나 서로 부둥켜안고 주체가 되지 않는 슬픈 마음을 달랬다. 허망한 듯 길을 한참 바라보다 걷고 멈추기를 반복하는 유가족도 있었다. 프랑스에서 온 한 유가족의 손은 헌화용 국화를 잡고도 연신 떨렸다.
25일 오후 1시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해밀톤호텔 옆 골목 '기억과 안전의 길'에서 10·29 이태원참사 외국인 유가족이 메모를 남기고 있다. 김수진 기자
헌화하는 시민들과 유가족들 옆 벽면에는 'Ju t'aime, Tu me manques tellement'(사랑해, 너무 보고싶어요), 'A toutes les victimes Reposez en paix'(모든 희생자에게, 편안히 잠들길)라고 적힌 프랑스어 메모가 붙어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희미해지는 죽음이 아니라 더 기억하고 고민하는 것이 되기를'과 같은 문구가 적힌 포스트잇도 나란히 붙어 시민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 행사에 참석해 보라색 점퍼를 입은 유가족들은 3년의 세월이 흘러도 여전한 슬픔에 숨을 고르기도 했다.
스리랑카에서 온 희생자 모하마드 지나트(사망 당시 27세)의 아내는 2살의 아들과 함께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했다. 한국에서 만난 지나트의 친구이자 같은 스리랑카 국적의 르하스가 함께 참사 현장을 찾았다.
르하스는 "사고가 일어나기 석 달 전 고향인 스리랑카에서 결혼한 지나트는 임신한 아내와 아들이 함께 한국에서 살게 될 거라는 기대 속에 취업을 앞두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25일 오후 1시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해밀톤호텔 옆 골목 '기억과 안전의 길'에서 10·29 이태원참사 유가족이 오열하고 있다. 김수진 기자
사고 발생 직전에도 자신이 거주하는 이태원 집에서 지나트와 시간을 보냈던 르하스는 "사고 이전에도 우리 집에서 저녁 식사를 함께했다. 내가 일을 간 사이 지나트는 참사를 당했다"며 떨리는 목소리로 설명했다. 이어 "잠깐 쇼핑을 간 상황인지, 산책을 나갔는지 왜 그날 지나트가 그곳에 있었는지 모르겠다"며 슬퍼했다.
이어 르하스는 "새벽이 되어서야 지나트와 연락이 되지 않아, 무언가 잘못된 거 같다고 직감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금 바라는 점이 있다면 이런 행사가 있으면 안전에 대해 더 신경을 써야 한다는 것뿐이다. 그날 경찰이 많지 않았다. 사람 수에 비해 아주 적은 수였다"라며 강조했다.
이날 정부의 초청으로 온 외국인 유가족 46명은 대다수가 처음으로 '10.29 기억과 안전의 길'을 방문했다. 이태원 참사 희생자 159명 가운데 외국 국적 희생자는 26명으로 이 중 21명의 유가족이 행사에 참석한다. 이들 모두 참사 정보와 진상 조사, 추모 과정에서 모두 적절한 지원을 받지 못한 것은 물론 우리나라와 원활한 소통도 어려웠던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에서 국내에 이들을 초청한 것은 참사 3주기인 올해가 처음이다. 시민단체와 유가족이 정부와 함께 행사를 주최한 것 역시 이전엔 없었다. 이들을 포함한 80여 명의 유가족들은 이날 오후 1시 참사 현장 방문을 시작으로 추모 행사를 진행했다. 희생자 159명을 기리는 시간인 오후 1시 59분에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교회와사회위원회를 포함한 4대 종교 추모예배에 참여했다.
25일 오후 2시 40분부터 10·29 이태원참사 유가족이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해밀톤호텔 옆 골목 '기억과 안전의 길'에서서울 시청역 서울광장까지 추모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김수진 기자오후 2시 40분부터는 이태원역에서 출발해 삼각지역, 용산 대통령실을 지나 시민과 유가족들이 더 합류해 시민추모대회가 열리는 서울시청까지 함께 행진했다.
행진이 끝나고 난 뒤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는 오후 6시 34분부터 시민추모대회를 개최한다. 6시 34분은, 2022년 10월 29일 첫 구조 요청 신고가 들어온 '희생을 막을 수 있었던' 시각을 의미한다.
외국인 유가족들은 오는 26일 한국 유가족과 면담하고, 27일부터 10.29 이태원 참사 특별 조사위원회에 피해자 인정 신청서를 제출한다. 3주기를 맞는 29일에는 공식 추모행사인 '기억식'에 참석한다. 이번 기억식은 이태원 참사 시민대책회의와 행정안전부, 서울시가 함께 개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