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과 소방관들이 사고 현장을 점검하고 있다. 독자 제공 경북 경주시 안강읍 두류공단에서 또다시 질식사고가 발생해 노동자 4명이 숨지거나 다치는 사고가 발생했다.
비슷한 유형의 사고가 반복되면서 사업장 안전관리 실태와 감독 체계의 허점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지난 25일 오전 11시 31분쯤 경주시 안강읍 두류공단의 아연가공업체에서 수조 내 배관 공사를 하던 작업자 4명이 질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사고 당시 근로자 한 명이 보이지 않자 동료 3명이 그를 찾기 위해 지하 2m 깊이의 수조 안으로 내려갔다가 함께 쓰러졌고, 이후 10여분 만에 작업반장이 이들을 발견해 신고했다.
이 가운데 3명은 심정지 상태, 1명은 의식 저하 상태로 발견돼 인근 병원으로 긴급 이송됐고 결국 2명은 숨졌다.
사고가 발생한 지하 수조. 경북소방본부 제공
해당 수조는 지난 17일 페인트 도장이 이뤄진 곳으로, 남아 있던 유기용제나 유해가스에 의한 질식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경찰은 이날 지하 수조 내부를 유해가스 측정 장비로 분석한 결과 일산화탄소가 검출된 것으로 잠정 파악했다. 정확한 농도는 공개하지 않았다. 일산화탄소는 무색, 무미, 무취이며 피부에도 자극적이지 않은 가스로 알려져 '침묵의 살인자'라고도 불린다.
다만 경찰은 일산화탄소가 사망에 직접적인 원인인지는 아직 단정할 수 없다고 보고, 지난 17일 지하 수조 내부에서 이뤄졌던 페인트 작업이 이번 사고와 연관이 있는지 여부 등을 파악하고 있다.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도 사고 당일 현장을 찾아 중앙산업재해수습본부를 구성하고, 사업장에 대한 특별감독과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여부에 대한 수사 진행을 긴급 지시했다.
김 장관은 구체적인 사고 경위와 위험 요인 등을 직접 살핀 후 소방·경찰·경주시·안전보건공단 관계자 등이 참석하는 긴급 상황점검회의를 개최하고 사고 수습에 만전을 기해 줄 것을 당부했다.
사고가 발생한 지하 수조. 경북소방본부 제공특히 사고의 근본 원인을 철저히 규명하고, 사안의 엄중함을 감안해 즉시 특별감독과 수사에 착수할 것을 긴급 지시했다.
사고 원인 규명과 책임자 처벌도 병행한다. 노동부는 사고 업체에 대한 압수수색 등 강제수사를 적극 추진하고 있으며 산업안전보건법 및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여부에 대해서도 신속하고 엄정하게 수사할 계획이다.
아울러 해당 사업장을 대상으로 특별감독을 실시하고 밀폐공간 안전보건수칙 이행 여부를 포함해 전반적인 법 준수 여부를 집중 점검하기로 했다.
하지만 비슷한 유형의 사고가 계속 이어지면서 사업장 안전관리 실태와 감독 체계의 허점을 지적하는 목소리는 커지고 있다.
질식사고가 발생한 공장. 독자제공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최근 10년간 밀폐공간 질식사고로 인한 사상자는 300명을 넘는다. 사고 대부분은 작업 전 산소농도 측정 미이행, 환기 부족, 안전장비 미착용 등 기본 수칙 위반이 원인으로 확인됐다.
특히 질식은 소음이나 화재처럼 즉각적인 경고 신호가 없어 작업자 스스로 위험을 인식하기 어렵다. 이로 인해 단순 점검이나 청소를 위해 지하 수조 등에 접근한 노동자들이 순식간에 쓰러지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이에 따라 전문가들은 밀폐공간 작업 전후의 산소 및 유해가스 농도 측정을 의무화하고, 결과를 기록·보관하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는 지적을 제기하고 있다.
노동부 관계자는 "밀폐공간을 보유한 고위험 사업장 5만여 곳을 대상으로 '질식사고 예방 3대 안전수칙'을 긴급 전파하고, 유사 사고 방지와 산업 현장의 경각심을 높이기 위한 후속 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