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베이글뮤지엄 SNS 캡처서울 종로구 안국동의 한 베이글 가게에서 시작된 브랜드, '런던베이글뮤지엄'(런베뮤)은 MZ세대 사이에서 '빵지순례 성지'로 통하며 긴 줄을 세우는 명소가 됐다.
하지만 화려한 인테리어와 SNS 홍보 뒤에 가려졌던 현장 노동의 그림자가 20대 청년의 죽음에 이르러서야 수면 위로 드러났다.
30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당국은 전날 런베뮤 인천점과 본사인 주식회사 엘비엠(LBM)에 대해 기획근로감독에 착수했다.
이는 지난 7월 인천점 오픈을 준비하던 중 회사 숙소에서 숨진 채 발견된 정모(26)씨의 유족이 과로사 의혹을 제기했기 때문이다. 유족에 따르면, 정씨는 사망 전 1주일간 80시간 이상, 사망 전 12주간은 주 평균 60시간 이상 근무했다. 교통카드 사용 내역과 업무 문자 등을 토대로 추산된 결과다. 유족은 근로복지공단에 산업재해를 신청한 상태다.
특히 정씨는 사망 전날 식사도 하지 못한 채 약 15시간 연속 근무한 것으로 알려졌고, 실제로 당시 여자친구에게 "오늘 밥 못 먹으러 가서 계속 일하는 중", "이슈가 있어서 밥 먹으러 갈 수가 (없었어)"라는 메시지를 남긴 사실도 공개됐다.
정씨는 약 14개월간 강남·수원·인천 등 네 개 지점을 전전하며 근무했고, 이 과정에서 근로계약서도 세 차례 갱신해야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과로사 여부에 회사는 "판단할 사안 아니다"…다른 직원들 입막음 의혹도
연합뉴스진보당 정혜경 의원실이 공개한 정씨와 같은 지점에서 근무했던 제보자 A씨의 증언에 따르면, 직원들은 정씨의 사망 원인을 '과로사'가 아닌 '교통사고'로 알았다.
A씨는 "직원들도 기사를 보고 사망사고를 알았다. 회사에서 당시 장례 소식은 전했지만, (사망원인을) 교통사고라고 알았다"고 전했다. 또 "손님이 근로환경에 대해 물어보면 잘 지내고 있다고 답하라고 말했다"며 사내에서 추모 분위기도 전혀 없었다고 지적했다.
A씨가 지인에게 보낸 SNS 메시지에도 "그 날 사람들이 울고 그랬는데 교통사고 정도로 알고 있었다", "녹취촬영 거부하라 그러고, 위장취업이나 위장손님이 물어보면 잘 다니고 있다고 대답하라고 했다"는 지시받은 흔적이 있었다고 정 의원실은 밝혔다.
실제로 정 의원실이 확보한, 지난 28일 사측의 아침조회 발언에도 "개인SNS에는 확인되지 않는 내용은 절대 게시하지 말아달라"는 지침성 내용이 포함된 것으로 확인됐다.
런베뮤 측은 28일 공식 사과문을 발표했지만, 과로사 여부에 대해서는 "판단할 사안이 아니다"며 '진실공방'에 나섰다. 사측은 지문인식기 오류로 '정확한 출퇴근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면서도, "직전 일주일 함께 근무한 동료 직원들의 근로시간은 분명 평소보다 높은 수준"이었다고 인정했다.
사측은 사태 초기에는 고인이 과로사로 숨지지 않았다며 "고인의 평균 주당 근로시간은 44.1시간"이라고 주장했지만, 유족 측은 사망 전 12주간의 데이터를 토대로 산출한 무의미한 주장이라며 반박한 바도 있다.
정의당은 "LBM은 14개월간 주당 평균 근로시간이 44.1시간이라고 주장하지만 유족 측이 주장하는 근로시간은 사망 직전 12주간에 관한 것이므로 사측은 사실을 호도하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억울한 죽음에 대해 책임을 회피하고 진실을 덮으려는 시도는 용납될 수 없다"면서 "유족에게 '양심껏 행동하라'며 적반하장으로 나오고, 직원들의 입막음을 시도하는 무도한 행태는 부도덕한 정도를 넘어 인면수심"이라고 비판했다.
2천억짜리 핫플레이스 뒤에 숨겨진 노동 현실?
연합뉴스
지난해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런베뮤의 운영사 엘비엠의 연간 매출은 796억 원, 243억 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고, 올해 7월 국내 사모펀드 JKL파트너스에 약 2천억 원에 매각됐다.
창업자 이효정 최고브랜드책임자(CBO)는 20년 간 패션업계에서 활동한 인물로, 공간 마케팅과 브랜드 전략으로 런베뮤를 지역 명소로까지 만들었다. 출판 활동으로까지 영역을 확장하며 유명세를 탔다. 하지만 고인이 숨진 시점이 매각 직전이고, 이후에도 기존 경영진인 강관구 대표이사가 유임하고 이효정 전 CBO도 고문으로 계속 경영에 관여했던 것으로 알려져 책임을 피할 수 없게 됐다.
더불어민주당 박지원 최고위원은 "청년들에게 핫플레이스로 불리던 런베뮤는 작년 8백억 원 이상의 매출을 올리고, 사모펀드에 2천억 원 이상에 매각됐다"며 "화려한 숫자 뒤에 청년의 노동을 갈아 넣은 원가절감이 숨어 있다는 사실에는 주목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노동부는 이번 기획 감독을 통해 고인의 장시간 노동 실태를 포함해 런베뮤 전 직원의 노동 환경 전반에 대해 점검할 방침이다. 해당 매장 뿐 아니라 전국 7개 매장의 노동 환경 전반에 대한 실태 점검 가능성도 열어놨다. 감독 결과에 따라 노동법 위반 사업장에 대한 처벌 및 개선 명령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노동부 관계자는 "향후 전 매장으로의 감독 확대 여부는 인천점의 운영 실태를 보고 판단하게 될 것"이라며 "근로시간 한도를 위반했는지, 포괄임금제 등을 오남용했는지를 중점적으로 보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