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넓은 세상'을 바라봅니다. 기술 발전으로 인식과 터전을 넓히는 '인류의 노력'을 바라봅니다. 지구를 넘어 광활한 우주에 대한 이야기, '코스모스토리' 시작합니다.
트라피스트-1 적색왜성계 상상도. NASA, ESO/M. Kornmesser/N. Risinger| ▶ 글 싣는 순서 |
①지구 밖 인류의 목적지는 여기?…트라피스트-1 적색왜성계 속 포스트 지구를 찾아서[코스모스토리] ②'크기에 위치까지 비슷하다?'…골디락스 존 속 지구 닮은꼴 행성 숨바꼭질[코스모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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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에서 생명체가 거주하고 있는 행성은 지구뿐일까?
이 철학적인 질문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 과학자들은 수십 년 동안 우주 속 생명체 존재 증거와 숨바꼭질을 하고 있습니다. 지난 1999년 인류는 한가지 신기한 천체를 발견합니다. 지구에서 물병자리 방향으로 약 40광년 거리에 떨어져 있는 트라피스트-1(TRAPPIST-1) 적색왜성계가 그 주인공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는 거대한 태양을 중심으로 다른 7개의 행성과 일정 거리를 두고 태양을 공전하고 있죠. 즉 타오르는 항성을 중심에 두고 공전하는 행성들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트라피스트-1은 태양처럼 타오르는 천체지만 표면온도가 훨씬 차가운 천체인 적색왜성으로 질량은 태양의 9% 정도에 불과합니다. 그리고 이 천체를 중심에 두고 행성들이 공전을 하고 있습니다. 행성은 발견한 순서에 따라 명칭을 부여받는데요. 트라피스트-1의 행성들은 공전주기가 작은 행성부터 발견돼 차례대로 기호를 받았습니다.
트라피스트-1 지구형 행성들과 태양계 지구형 행성들 비교. 항목은 공전주기(위에서부터), 중심별과 거리(1AU=지구와 태양과의 거리), 행성 반경, 행성 질량, 행성 밀도, 표면 중력. NASA/JPL-Caltech중심별을 두고 7개의 행성이 공전하는 모습은 태양계와 비슷하지만 중심의 적색왜성은 태양보다 매우 차갑기 때문에 주변에 공전을 하는 행성들이 그만큼 열을 받지 못합니다. 하지만 행성들이 중심별에 붙어 있다면 어떨까요? '트라피스트-1' 적색왜성계는 7개의 행성들 모두가 수성궤도보다 좁은 공간안에 배치돼 있습니다. 이 때문에 태양보다 차가운 적색왜성의 열기로도 행성의 표면에 에너지를 일정량 이상 받을 수 있게 됐습니다.
또한 7개의 행성 모두가 지표면이 딱딱한 암석으로 이루어진 지구형 행성 입니다. 이는 태양보다 약한 만큼 행성이 가깝게 배치돼 있고 궤도에 따라 적절한 에너지를 중심별에서 받을 수 있다는 말이 됩니다. 여기에 모든 행성이 공전과 자전이 같아 달처럼 같은 면으로만 중심별을 바라보는 '조석고정' 상태에 있습니다.
트라피스트-1 적색왜성계 크기와 태양계의 궤도 크기 비교. 녹색부분은 골디락스 존. NASA/JPL-Caltech놀라운 점은 계속됩니다. 생명체가 존재하거나 인류가 이주를 하기 위한 조건에는 중심별과 너무 가깝지도, 너무 멀지도 않은 곳으로 물이 액체상태로 존재할 수 있는 '골디락스 존(=해비터블 존, Goldilocks Zone)'에 행성이 위치해 있어야 합니다. 태양계에서는 유일하게 지구가 이 위치에서 공전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트라피스트-1 적색왜성계에서는 무려 4개의 행성이 골디락스 존에 포함돼 있죠. 이 천체를 발견했을 당시 과학자들은 드디어 외계생명체가 있을 가능성이 높은 곳을 찾았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합니다.
우리는 왜 적색왜성계 행성을 측정하는가?
이 놀라운 천체를 자세히 보기 위해 과학자들은 발견 당시 활약하던 최고의 광학장비인 허블 우주망원경(HST)과 스피처 우주망원경으로 관측했습니다. 하지만 행성들의 존재 여부는 알 수 있어도 이들 행성에 대기와 물이 존재하는지 여부를 알기엔 데이터가 너무 부족했죠. 이후 2022년 강력한 성능을 지닌 제임스웹 우주 망원경(James Webb Space Telescope)이 본격적인 관측활동을 시작하면서 과학자들의 관심은 다시 트라피스트-1으로 쏠렸습니다. 제임스웹은 트라피스트-1에서 가까운 b행성을 시작으로 순차적으로 모든 행성을 관측합니다.
빛이 행성의 대기를 지나가면서 변화되는 빛의 변화를 표현한 그림. NASA, ESA, and Z. Levy (STScI)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의문점이 발생합니다. 행성은 스스로 빛을 내지 못하죠. 망원경이 천체를 관측하려면 어떠한 형태로든 빛을 수신해야 관측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과학자들은 어떻게 멀리 떨어져 있는 행성을 관측할 수 있을까요? 중심별을 공전하는 행성이 지구와 일직선이 되는 순간 빛은 미세하게 약해지는데요. 이 미세한 변화를 관측하는 트랜짓 관측 방법을 이용해 우리는 행성의 존재를 인식합니다. 또한 행성을 지나는 빛은 대기의 구성성분에 따라 일부가 흡수되는데요. 이 차이를 계산해 우리는 행성의 대기 구성성분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적색왜성은 태양보다 약하고 크기도 작아 아주 민감한 성능의 망원경만 분석할 수 있습니다. 또한 행성의 공전궤도 속도도 제각각이라서 행성의 변화를 분별하기 매우 어렵습니다. 그러면 과학자들이 이렇게 어려운 과정을 거쳐가면서 적색왜성계의 행성을 관측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외계 항성 상상도. NASA's Goddard Space Flight Center/S. Wiessinger우주에는 태양같은 항성보다 트라피스트-1과 같은 적색왜성의 숫자가 훨씬 많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만큼 적색왜성을 공전하는 행성의 수 또한 매우 많습니다. 우리가 이 행성들에서 생명체가 존재할 수 있는 대기가 있는지를 파악하는 건 미래의 인류가 우주로 진출하거나 생명체를 찾는데 있어 중요한 기준이 됩니다.
또한 이번 관측으로 골디락스 존과 그 안팎을 공전하는 다양한 지구형 행성의 공전궤도에 따라 얼마만큼 환경이 달라지는지, 그리고 생명체가 존재할 수 있는 환경이 얼마만큼 구성될 수 있는지를 알 수 있게 될 것 입니다. 다양한 환경의 지구형 행성을 거느린 트라피스트-1 적색왜성계 관측이 특별하고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수성과 닮은 트라피스트-1 b행성
첫 관측 행성인 트라피스트-1 b행성은 태양과 지구 거리의 100분의 1도 안되는 매우 좁은 궤도로 공전하고 있으며 공전주기는 약 1.51일에 불과합니다. 과학자들은 이 행성에 대기가 있는지 여부에 큰 관심을 가졌습니다. 대기가 있다는 것은 다양한 증거가 될 수 있는데요. 우선 행성표면에 물이 존재할 수 있고 이를 기반으로 생명체의 존재 가능성이 생깁니다. 또한 이 행성은 중심별에 가장 붙어 있는 별로, 행성에 대기가 있다는 말은 중심별 플레어의 활동 여부와 강도까지도 유추할 수 있게 됩니다. 트라피스트-1은 초저온 적색왜성인 'M형 왜성'으로 구분되어 있는데요.
트라피스트-1 b행성 상상도. NASA, ESA, CSA, Joseph Olmsted (STScI); Science: Thomas Greene (NASA Ames), Taylor Bell (BAERI), Elsa Ducrot (CEA), Pierre-Olivier Lagage (CEA)M형 왜성은 성장기에 과도하게 수소융합을 하면 우주 멀리까지 플레어와 X선 등 무작위로 에너지를 발산하기도 합니다. 공전궤도가 가까운 상태에서 행성이 이러한 영향을 받는다면 어떻게 될까요? 각 행성은 저마다 자기장을 가지고 있어 이를 방어하겠지만 자기장이 충분히 강하지 않다면 대기가 대부분 벗겨지게 되고 결국 삭막한 암석행성이 됩니다. 태양계의 수성과 화성의 경우가 이와 비슷합니다.
아직 M형 왜성에 대한 연구가 충분하지 못한 현 시점에서 행성의 대기 유무 파악은 매우 중요합니다. 미국항공우주국(NASA)에 따르면 천체물리학자 '토머스 그린' 박사가 이끄는 국제 연구팀은 제임스웹의 중적외선 관측을 통해 트라피스트-1 b의 표면온도 관측 연구 결과를 네이처지를 통해 발표했습니다. 연구팀은 트라피스트-1 b의 조석고정 특성을 감안해 행성 표면 온도를 측정했는데요. 이때 독특한 측정방식을 사용했습니다. '이차 식 광도측정(secondary eclipse photometry)' 이라는 관측기술인데요. 이는 행성이 중심별을 가리는 일식이 아닌 행성이 중심별의 뒤를 돌때 중적외선 빛의 변화를 측정하는 기술입니다. 이 방법은 행성이 가시광은 발산하지 못하지만 적외선은 방출한다는 원리를 이용했습니다.
트라피스트-1 b행성의 대기를 관측할 때 사용한 '이차 식 광도측정(Secondary Eclipse Light Curve)' 관측 기술의 개념도. NASA, ESA, CSA, Joseph Olmsted (STScI); Science: Thomas Greene (NASA Ames), Taylor Bell (BAERI), Elsa Ducrot (CEA), Pierre-Olivier Lagage (CEA)연구진은 제임스웹의 중적외선기기(MIRI)를 활용해 중심별의 뒤를 돌기 전 빛과 중심별 뒤에 있을 때의 빛, 그리고 돌아 나왔을 때의 행성의 빛을 관측했습니다. 중심별 주변에 있을때 b행성에서 방출하는 적외선 빛과 중심별 뒤에 있을때 합쳐진 적외선 빛을 비교하고 중심별의 본래 빛을 차감해 온도 값의 변화를 산출합니다. b행성은 공전을 하면서 자전을 한번하는 조석고정이 되어있기 때문에 중심별을 바라보는 면은 온도가 매우 높지만 만약 대기가 존재해 열의 대류현상이 있다면 예측치보다 표면온도는 더 낮을 것입니다.
트라피스트-1 b행성의 표면온도 관측 결과를 표시한 그래프. 대기가 있을때의 시뮬레이션 온도보다 대기가 없을때의 시뮬레이션 온도에 근접했다. NASA, ESA, CSA, Joseph Olmsted (STScI); Science: Thomas Greene (NASA Ames), Taylor Bell (BAERI), Elsa Ducrot (CEA), Pierre-Olivier Lagage (CEA)결과는 어떻게 나왔을까요? 트라피스트-1 b의 표면 온도는 약 500캘빈(화씨 약 450도)으로 측정됐습니다. 대류현상이 있을때의 시뮬레이션 약 400캘빈보다 뜨겁고 트라피스트-1 b보다 약 1.6배 더 많은 에너지를 받는 수성의 표면온도 약 700캘빈보다는 낮습니다. 이 수치는 결국 b행성에서는 대기가 희박하거나 거의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합니다.
이렇게 M형 왜성계의 첫 행성에서는 대기가 없다는 것이 확실해졌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아쉬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아직 트라피스트-1 적색왜성계에는 공전하는 행성이 6개나 더 있고 이번에 관측한 b행성은 중심별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공전하는 가장 가혹한 환경에 있는 행성이기 때문입니다.
포스트 금성으로 바라본 트라피스트-1 c행성
중심별과 가장 가까운 행성의 관측을 마친 과학자들은 바로 b행성 보다 중심별에서 조금 더 떨어져 공전하고 있는 트라피스트-1 c행성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태양계에서도 수성 다음의 행성인 금성은 두꺼운 이산화탄소 대기를 두르고 있죠. c행성은 금성과 비슷한점이 많습니다.
트라피스트-1 c행성 상상도. 오른쪽 아래서 b행성도 중심별을 공전하고 있다. NASA, ESA, CSA, Joseph Olmsted (STScI); Science: Sebastian Zieba (MPIA), Laura Kreidberg (MPIA)우선 중심별을 공전하는 순서도 2번째로 같죠. 게다가 같은 암석형 행성이면서 질량 또한 비슷합니다. 트라피스트-1이 태양보다 약한 적색왜성인만큼 c행성은 금성과 태양거리의 약 1/50정도로 중심별에 가까이 붙어서 공전을 하고 있죠. 그만큼 중심별에서 방사선 영향을 받는 정도 또한 금성과 c행성은 비슷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c행성은 금성처럼 두꺼운 대기를 가지고 있을까요?
이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 독일 막스 플랑크 천문연구소 연구진은 c행성에 대한 대기 존재 여부를 관측한 연구 결과를 지난 2023년 6월 네이처지에 발표했습니다. 연구진은 앞서 b행성에 대한 연구 방법을 차용해 '이차 식 광도측정' 관측법으로 행성의 적외선 변화를 측정했습니다. 연구진은 제임스웹의 중적외선기기(MIRI)를 활용해 c행성의 중적외선 빛을 관측했습니다. 행성이 방출하는 적외선 빛의 양은 온도와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으며, 이는 대기의 영향을 받습니다. c행성이 금성과 비슷한 조건을 가지고 있는 만큼 만약 두꺼운 이산화탄소 대기가 있다면 측정했을 때 c행성의 적외선은 구름층에 흡수돼 변화가 없을 것입니다. 반대로 대기가 희박하거나 없다면 적외선은 더 많게 보일 것입니다.
트라피스트-1 c행성의 빛을 세가지 시나리오로 가정한 시뮬레이션과 실제 밝기를 대입한 그래프. 파란색은 이산화탄소 0.01%, 표면 압력 0.1바(bar), 구름이 없는 산소 대기를 가지고 있다고 가정했을 때의 빛의 방출 스펙트럼, 녹색은 대기가 없고 마그네슘 암석으로 이루어진 암석 표면이 있는 경우 빛의 방출 스펙트럼, 오렌지 색은 96.5%의 이산화탄소, 10바(bar)의 표면 압력, 그리고 황산 구름을 포함한 금성에 가까운 대기를 가지고 있을 때의 빛의 방출 스펙트럼 입니다. 빨간색 다이아몬드는 MIRI(웹의 중적외선 기기)에서 F1500W 필터를 사용해 측정한 c행성의 밝기 입니다. NASA, ESA, CSA, Joseph Olmsted (STScI); Science: Sebastian Zieba (MPIA), Laura Kreidberg (MPIA)결과는 어떻게 됐을까요? 논문의 1저자 세바스찬 지바(Sebastian Zieba)는 "행성이 대기가 없는 맨 암석이거나, 지구나 화성보다 얇은 CO2(이산화탄소) 대기를 가진 구름이 없는 것과 일치합니다."라며 "만약 행성에 두꺼운 CO2 대기가 있었다면, 우리는 정말 얕은 2차 일식을 관측했거나 전혀 관측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는 CO2가 15마이크론(1마이크론=1/1000mm) 빛을 모두 흡수하기 때문에 행성에서 오는 빛을 감지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라고 밝혔습니다.
NASA에서 공개한 c행성에 대한 적외선 방출 스펙트럼 데이터에 따르면 세가지 시나리오에 따른 그래프가 측정값(빨간 다이아몬드)이 대기가 없는 맨 바위 표면(녹색 선) 또는 구름이 없는 매우 얇은 이산화탄소 대기(파란색 선)와 일치하고 있습니다.
아쉽게도 이러한 수치는 c행성도 b행성처럼 대기가 거의 없고 삭막한 암석으로만 이뤄진 돌덩어리 행성이라는 것을 의미하며 생명체 존재 조건을 갖추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양한 외계 행성 상상도. NASA하지만 절망하기엔 아직 이릅니다. 현대과학이 예측한 생명체가 존재하기 가장 좋은 조건은 골디락스 존 안에서 대부분 형성되기 때문이고 지금까지 관측한 b, c행성은 이에 해당되지 않은 곳이기 때문입니다. 이에 과학자들의 시선은 골디락스 존의 가장 안쪽 궤도에 위치한 d 행성으로 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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