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쿠팡 등 이커머스 업체의 새벽배송 서비스를 둘러싼 논쟁이 정치권까지 확산되며 '새벽배송 전면 금지' 등 사실과 다른 주장까지 퍼뜨리며 '과잉 정치화'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전국택배노동조합(택배노조)이 제안한 '심야 배송 제한' 논의는 언제부턴가 '새벽배송 전면 금지'라는 프레임으로 둔갑했다. 급기야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와 정의당 장혜영 전 의원의 지난 3일 CBS '한판승부' 공개 토론으로까지 이어졌다. 문제의 본질인 노동자 건강권 보호 논의는 실종되고,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의 주장이라는 이유만으로 편 가르기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논란의 발단은 지난달 22일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출범한 '택배 사회적 대화기구' 회의에서 비롯됐다. 이날 회의에서 택배노조는 "자정부터 오전 5시까지 초심야 시간대의 배송을 제한해 택배기사의 과로를 줄이고 최소한의 수면시간을 보장하자"고 제안했다.
노조는 단순한 '금지'가 아닌, △오전 5시 출근 조 편성 △배송 물량 조절 △긴급품목 예외 설정 등을 통해 야간 노동을 최소한으로 줄이면서도 기존처럼 오전 7시까지 배송을 완료하는 등 다양한 대안도 함께 제시했다.
하지만 이 제안을 일부 언론과 정치권이 '새벽배송 전면 금지'로 왜곡 해석하기 시작했다. 한 전 대표는 "새벽배송이 금지되면 늦게 퇴근하는 맞벌이 부부를 비롯해 2천만 국민의 일상과 소상공인의 생계가 무너질 수 있다"며 강력 반발했다. 이에 대해 장 전 의원은 "노동자의 과로 문제를 이용해 시민과 갈라치기를 한다"고 지적했다. 결국 두 사람은 공개토론까지 진행했고, '새벽 배송'은 갑자기 정치 쟁점으로 비화됐다.
			
		
민주노총 택배노조 강민욱 부위원장은 CBS 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새벽배송 금지'라는 말 자체를 하지 않았다"며 "최초 보도한 언론사에 대해 언론중재위원회 제소도 검토 중"이라고 억울해했다.
그러면서 "이번 논의는 사회적 대화기구의 첫 회의에서 나온 초기 제안이고, 얼마든지 조정해보자는 입장이었다"며 "관련 내용이 왜곡된 채 외부로 유출되고, '민주노총이 전면 금지를 주장했다'는 식의 공격적 프레임으로 둔갑해버렸다"며 강한 유감을 표했다.
결국 '야간 고정노동 구조를 개선하자'는 논의의 취지는 퇴색됐고, '민주노총의 억지 주장'이라는 이분법적 프레임만 남았다. 그렇게 새벽배송은 조정 불가능한, 신성불가침의 영역이 됐다. 과연 그럴까.
지난해 10월 우리리서치가 실시한 국민 인식 조사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500명)의 65.8%는 "택배노동자의 과로를 고려할 때 새벽배송은 불필요하다"고 답했다. 이용 경험자(300명) 중에서도 63.2%가 "중단돼도 불편하지 않다"고 응답했다.
중앙대학교 사회복지학부 이승윤 교수는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이 데이터를 인용하며 "쿠팡이 독점적 시장 지배력을 바탕으로 창출한 새벽배송은 소비자의 잠재적 니즈에 따른 것이기보다는 인위적 수요 창출에 가깝다"며 '의료·치안·수산시장 새벽 경매 등과는 달리, 새벽배송은 기능적 필수성이 없는 편의 서비스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건강권과 직결된 의학적 관점에서 보면 논점은 더욱 분명해진다. 새벽 배송 조정 논의는 생명권이냐, 새벽 배송 포기냐 이분법적으로 다가갈 문제가 아닌,  '당장 택배 노동자의 건강권과 생명권을 어떻게 지킬 수 있을까'하는 시급한 문제다.
이대목동병원 직업환경의학과 김현주 교수는 3일 SNS에서 "논쟁이 소비자의 편리함이나 노동자의 선택이라는 프레임에만 갇히지 않고, 야간노동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의학적 지식과 경험을 기반으로 논의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김 교수는 '야간노동이 몸에 익숙해진다'는 주장에 대해 "이는 과학적으로 정확하지 않다"라고 반박했다. 김 교수는 1999년부터 노동자의 건강진단을 수행해온 전문가로, 야간노동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을 오랜 기간 연구해왔다.
그는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국제암연구소는 2012년 야간노동을 'Group 2A, 인간에게 발암 가능성이 있는 요인'으로 분류했다"며 국내 제조업 및 운수업 노동자 대상 연구에서도 고정 야간근무자의 심혈관계 사망률은 주간 근무자의 2배에 달했다는 사실도 덧붙였다.
		
		
그러면서 김 교수는 "야간노동은 단순히 '피곤한 시간대에 일한다'는 문제가 아니다"라며 생체리듬 파괴가 누적되어 회복이 불가능한 단계에 이르는 것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이어 "'새벽배송을 금지해야 하는가'라는 정책 논의는 '노동자가 선택했으니 괜찮다'거나 '소비자가 원하니까 어쩔 수 없다'는 수준에서 머물러서는 안 된다"며 "야간노동, 장시간 노동, 고강도 노동, 휴식 부족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공동체 전체의 건강을 소진시키는 구조적 문제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연합뉴스실제 노동 환경은 이 같은 우려를 뒷받침한다. 택배노동자과로사대책위와 택배노조가 발표한 쿠팡 퀵플렉스 노동자 실태조사에 따르면, 이들은 하루 평균 11.1시간을 일하며, 이 중 2.6시간을 분류 작업에, 56분을 프레시백 세척 및 반품 정리에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은 근로기준법상 '노동자'가 아닌 특수고용직으로 분류돼 주 52시간제, 야간근로수당, 연속휴식 보장 등 법적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다.  
2020년 이후 쿠팡에서 발생한 것으로 알려진 배송 기사 과로사 사례만 20여 건에 달한다. 지난해 5월에는 야간 고정 배송을 하던 40대 남성이 주 6일 근무, 평균 63시간 노동 끝에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되기도 했다. 당시 그는 "개처럼 뛰고 있다"는 메시지를 쿠팡 측에 남겼다. 그럼에도 새벽 배송을 하는 쿠팡은 지난 2021년 택배 사회적 합의를 여전히 이행하지 않고 있다.
택배 사회적 대화기구는 오는 5일 2차 회의를 열고, 택배기사의 과로사 방지와 새벽배송 구조 개선 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정치권과 사회 각계가 과잉된 프레임에서 벗어나 실질적 대안을 모색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이대목동병원 김현주 교수는 페이스북 말미에 이렇게 썼다.
"의학적 원칙은 분명하다. 야간노동은 건강에 유해하며 하지 않는 게 최선이다. 공동체의 유지에 필수적인 야간 노동은 그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대책이 필요하다. 새벽배송을 법으로 금지할 것인지, 혹은 제한·보상·기술적 대체를 논의할 것인지는 사회적 합의의 영역이다. 중요한 것은, 그 논의의 출발점이 과학과 사실 위에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 글은 바로 그 출발선을 분명히 하자는 제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