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오후 일산서구의 한 학원가에 '시진핑 장기이식으로 150세, 실종자 급증 장기매매 몸조심!'이라는 내용의 현수막이 달려 있다. 그 앞을 초등학생이 지나고 있는 모습. 이원석 기자'시진핑 장기이식으로 150세, 실종자 급증 장기매매 몸조심!' '중국 유학생은 100% 잠재적 간첩' '검찰개혁은 북한의 지령!'
최근 길거리를 걷다보면 다소 황당한 내용의 현수막들을 종종 마주치게 된다. 전국적으로 유사한 현수막들이 계속 달리고 있는데, 내용들은 달라도 공통적으로 한켠에 큐알(QR)코드가 새겨진 디자인이다. 대체 어디서 온 현수막들일까.
학원가에도 달려…시민들 "아이들 영향 우려"
해당 현수막들은 대부분 극우 성향 단체들의 입장을 담고 있다. 최근엔 중국에 반중(反中) 정서가 담긴 내용들로 여럿 달렸다. '시진핑 장기이식', '중국 유학생은 잠재적 간첩' 외에도 '유괴·납치·장기적출 엄마들은 무섭다! 중국인 무비자 입국 중단하라!', '중국인 무비자 입국, 관광 아닌 점령?', '국정자원 화재로 정부시스템을 중국업체로 이전?' 등으로 일부 자극적인 표현과 확인되지 않은 정보들도 버젓이 실렸다.
얼마 전 경주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앞두고 경북도내 곳곳에 이런 현수막들이 달려 논란이 되기도 했다. 해당 행사에는 중국의 시진핑 국가주석도 참석했다.
현수막은 지난 5월 대선 전후로도 전국에 활발하게 개첩됐는데, 부정선거 주장이 담긴 현수막들이 다수 포착됐다. '선생님! 저희반은 23명인데 왜 30표가 나와요? 응~ 우리나라 국회의원도 그렇게 뽑혔단다', '엄마! 개표기 재부팅하니 득표 숫자가 달라졌다는데요?!' '구멍숭숭 사전투표 불안해서 못살겠다' 등의 문구를 비롯해 대선 이후엔 '중국인이 투표한 대선 무효', '6·3 한국대선 부정선거 확실', '중국공산당 한국선거 개입' 등의 내용이 담겼다.
이외에도 '계엄령이 옳았다', '상남자 킹석열 지지' 등 12·3 비상계엄을 옹호하거나 최근엔 이재명 대통령과 김현지 대통령실 부속실장 사진에 '무슨 관계?'라는 문구를 담은 현수막도 달려 논란을 낳고 있다.
시민들은 황당하다는 반응이다. 13일 오후 경기 고양시 일산서구의 한 학원가에는 '시진핑 장기이식으로 150세' 현수막이 달려 있었다. 10대 자녀를 둔 45세 유모씨는 "아이들이 많이 다니는 길이라 더 걱정된다"며 "사실로 믿거나 조금이라도 안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것 아닌가"라고 우려했다. 34세 허모씨도 "보기만 해도 뭔가 불쾌하다"며 "이상한 내용인데도 며칠째 달려 있어 왜 철거나 제재가 되지 않는지 황당했다"고 말했다.
반면 일부 시민은 현수막을 읽어보더니 스마트폰으로 촬영하거나 현수막에 담긴 큐알코드를 스캔하기도 했다. 60대 남성은 "그냥 내용이 특이해서 찍었다"고 했다. 한 20대 대학생은 "현수막에 큐알코드가 달려 있길래 신기해서 스캔해봤다"고 말했다.
실제 현수막에 담긴 큐알코드를 스마트폰으로 스캔하면 "뉴스를 통해 정치소식을 듣나요? 당신은 세뇌 당하고 있습니다!"라는 문구가 실린 사이트가 등장한다. '잠깐, 우리나라가 공산화 된다고?', '한국이 중국의 속국이 되고 있다?' 등의 주제를 소개하며 극우 성향 유튜브로 연결되는 링크를 소개했다.
'애국현수막 달기' 측이 사이트에 공개한 현수막 디자인들. 애국현수막 달기 사이트'장당 2만원, 5장부터 시작'…후원금도 모금
해당 현수막들은 '애국현수막 달기'라는 단체에서 제작되는 것으로 이들은 사이트를 운영하면서 사람들로부터 현수막 제작 비용을 후원 받거나 설치 자원봉사자를 직접 모집해 전국적으로 현수막을 달아왔다. 마치 캠페인 방식으로 현수막 달기 운동을 한 것이다.
현재는 해당 사이트에 들어가면 시스템 점검으로 인해 서비스가 일시 중단됐다는 안내가 등장한다. 그러나 SNS엔 각종 현수막 시안과 함께 "애국현수막 달기에 동참해 달라"라는 홍보글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장당 2만원, 5장부터 시작', '인쇄부터 거는 것까지 다 지원해줌' 등의 설명과 함께 계좌번호 등이 적혀 있었다. 후원금을 모으는 글도 보였다. 이러한 글들엔 강경보수 성향 지지자로 보이는 이들이 댓글 등으로 적지 않은 호응을 보이는 듯했다.
그런데 이곳에서 단 현수막들은 모두 일반 현수막이 아닌 정당 현수막이다. 정당 현수막은 정당법과 옥외광고물법에 따라 일반 현수막과 달리 설치 기간과 장소, 표기 사항 등을 제외하면 별다른 규제를 받지 않는다. 해당 현수막들엔 작게 '내일로미래로'라는 이름의 정당명이 적혀 있다.
내일로미래로는 지난 2023년 충청의미래당, 신한반도평화체제당 등 군소정당들이 합당해 만들어진 원외정당으로 소개됐다. 따로 정당 홈페이지는 찾을 수 없었고,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홈페이지에 등록된 여의도 국회 인근 주소로 찾아가니 회계사 사무실이 존재하고 있었다. 사무실의 주인은 "당 대표가 내 제자인데 주소만 빌려쓰고 있고, 실제로는 온양온천(충남 아산) 쪽에 당 사무실이 있다"고 설명했다.
내일로미래로의 최창원 대표는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우리가 애국현수막 달기를 하는 게 맞다"라며 "전국적으로 몇천개씩 우리 현수막을 달고 있다"고 설명했다. 최 대표는 현수막 달기 캠페인을 시작한 계기에 대해선 "국민을 깨우는 운동을 하는 것이다. 요즘 언론이 야당을 대변하는 곳이 없지 않나"라며 "어쩔 수 없이 택한 게 현수막이었는데 오히려 새로운 틈새시장을 개척한 게 됐다"고 말했다.
최근 정치권에선 표현의 자유를 보장 받는 정당 현수막이 법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어 정비가 시급하다는 논의가 나오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최근 국무회의에서 "정당이라고 해서 지정된 곳이 아닌 아무 곳에나 현수막을 달게 하는 것이 옳은 일인지 모르겠다"며 대책 마련을 주문하기도 했다.
한편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지난 7월 신고되지 않은 계좌를 통해 정치자금을 수수해 이를 정당 명의 현수막을 제작하는 데 지출한 혐의로 최 대표 등 3명을 검찰에 고발했다. 이에 대해 최 대표는 "그 문제는 다 해결됐다"고만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