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성탄절을 하루 앞두고 어린이들과의 전화 통화에서 '석탄'을 언급하며 자신의 에너지 정책 기조를 드러냈다. 크리스마스 분위기 속에서 오간 질문과 답변이었지만 트럼프 대통령 특유의 정치적 메시지가 자연스럽게 섞였다는 평가가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성탄을 하루 앞둔 지난 24일(현지시간) 부인 멜라니아 여사와 함께 북미항공우주방위사령부(NORAD)가 운영하는 '산타 추적 핫라인' 전화를 통해 어린이들과 통화했다.
캔자스주에 사는 8세 소녀가 산타 선물로 무엇을 받고 싶으냐는 질문에 "석탄은 싫다"고 답하자, 트럼프 대통령은 웃으며 "'깨끗하고 아름다운 석탄' 말이니?"라고 되물었다. 이 발언은 즉각 주목을 받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집권 1기 시절부터 태양광·풍력 등 신재생에너지 확대에 비판적인 입장을 보여왔고, 석탄을 포함한 화석연료 산업을 되살려야 한다는 주장을 반복해 왔다. 그는 선거 유세와 연설에서 '아름다운 석탄', '깨끗한 석탄'이라는 표현을 즐겨 사용해 왔는데 이날 어린이와의 대화에서도 같은 표현이 등장한 것이다. 단순한 농담처럼 들릴 수 있지만 성탄절 통화라는 가벼운 자리에서도 자신의 정책 방향을 놓치지 않았다는 해석이다.
미국 대통령이나 그 배우자가 크리스마스 이브에 어린이들과 통화하는 것은 수십 년간 이어져 온 전통이다. NORAD는 1955년부터 산타클로스의 이동 경로를 알려주는 '산타 추적' 이벤트를 운영해 왔다. 트럼프 대통령 부부는 이날 플로리다주 팜비치의 마러라고 클럽에서 약 10여 차례 어린이들의 전화를 받았다.
통화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전반적으로 친근한 분위기를 유지했다.
노스캐롤라이나주에 사는 8세 어린이가 "산타를 위해 쿠키를 남겨두지 않으면 화를 내느냐"고 묻자 "그렇지는 않겠지만 매우 실망할 것"이라고 답했고, 오클라호마주 출신 아이와는 "산타는 아주 착한 사람"이라며 대화를 이어갔다. 동시에 그는 오클라호마주를 두고 "선거 기간 나에게 매우 잘해준 주"라며 정치적 언급도 덧붙였다.
도널드 트럼프(오른쪽) 미국 대통령과 그의 부인인 멜라니아 트럼프(왼쪽)가 북미항공우주사령부(NORAD)가 운영하는 'NORAD 산타 추적 핫라인'에 연결돼 어린이들과 통화하고 있다. 연합뉴스NORAD 행사와 관련한 발언에서도 트럼프 대통령 특유의 화법이 드러났다.
그는 "우리나라(미국)에 나쁜 산타는 침투하지 못하게 하겠다"고 언급했다. 여기서 '침투(infiltrate)'라는 표현은 불법 이민 문제를 언급할 때 자주 쓰는 단어 선택과 겹친다. 산타 이야기 속에서도 국경과 안보를 중시하는 자신의 인식을 투영한 것으로 보인다.
경합주인 펜실베이니아에 사는 5세 어린이와의 통화에서는 "우리는 펜실베이니아에서 압도적으로 이겼다. 그래서 나는 그 주를 아주 좋아한다"고 말하며 선거 성적을 직접 언급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통화 도중 "하루 종일 이걸 하고 싶다"면서도 중국,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 등 국제 현안을 처리해야 한다며 아쉬움을 나타냈다.
통화를 마친 뒤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에 글을 올려 성탄 인사를 전하는 동시에 정치적 반대 세력을 비판하는 표현을 덧붙였다. 그는 과거에도 크리스마스를 전후해 정치적 메시지를 담은 글을 올려 논란을 빚은 바 있다.
이번 성탄절 어린이 통화는 형식상으로는 전통적인 연례 행사였지만 석탄 발언을 비롯해 선거와 국경 문제까지 언급되면서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적 성향이 고스란히 드러났다는 분석이다.
어린이와의 질의·응답이라는 부드러운 형식 속에서도 자신의 정책 기조를 강조하는 트럼프식 정치 커뮤니케이션이 다시 한번 확인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