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욱 감독. 연합뉴스영화감독 박찬욱이 영화 '어쩔수가없다'를 미국에서 제작하려다 좌절을 겪고, 결국 한국 영화로 완성하게 된 과정을 미국 유력지 뉴욕타임스 인터뷰를 통해 밝혔다.
뉴욕타임스는 27일(현지시간) 박 감독과의 인터뷰 기사에서 "해고된 관리자가 잔혹한 살인을 저지르는 이야기를 다룬 그의 영화에 미국 스튜디오들이 투자를 꺼리자, 그는 한국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지금 그는 히트작을 손에 쥐었다"고 전했다.
NYT는 박 감독을 "아시아에서 가장 유명한 감독 중 한 명으로, 한국 사회에 대한 복합적이고 비판적인 시선과 강렬한 호러 감각으로 사랑받는 작가주의 감독"이라고 소개했다.
보도에 따르면 박 감독은 '어쩔수가없다' 작업 초기부터 이 작품을 미국 영화로 연출하길 원했고, 할리우드 스튜디오로부터 제작비를 조달하기 위해 약 12년간 시도했으나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원작인 도널드 웨스트레이크의 소설 '액스(The Ax)'가 미국 사회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영화 역시 미국에서 만드는 것이 아주 자연스럽게 느껴졌다"고 설명했다.
박 감독은 인터뷰에서 "이 영화는 자본주의 체제에 관한 이야기이며, 자본주의의 심장부인 미국에서 가장 잘 전달될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그는 미국 내 대형 제지 공장들을 답사하며 촬영 장소로 활용하는 방안에도 큰 매력을 느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할리우드 투자자들이 제시한 제작비는 박 감독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규모에 크게 못 미쳤고, 결국 프로듀서의 권유에 따라 배경을 한국으로 옮겨 영화를 완성하게 됐다. 박 감독은 "이제 한국 영화로 만들고 나니, 왜 훨씬 더 일찍 이렇게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고 밝혔다.
NYT는 이 작품에서 박 감독이 직면한 핵심 과제 중 하나로 주인공 '만수'의 살인 동기를 관객에게 설득력 있게 전달하는 문제를 꼽았다. 이에 대해 박 감독은 "영화나 예술의 유일한 목적이 관객이 인물의 행동을 전적으로 이해하고 공감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세상에는 나와 다르게 행동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설득력 있게 제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CJ ENM 제공'어쩔수가없다'는 지난 성탄절 미국 주요 5개 도시에서 제한적으로 개봉해 현지 관객들과 만났다. 이 작품은 내달 열리는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뮤지컬·코미디 영화 부문 작품상, 외국어영화상, 남우주연상(이병헌) 등 3개 부문 후보에 올랐으며, 아카데미 시상식 국제영화상 부문 예비후보(쇼트리스트)에도 포함됐다.
NYT는 별도 리뷰 기사에서 이 작품을 두고 "잔혹한 시대에 대한 잔혹한 이야기가 박찬욱 특유의 감각으로 전달된다"며 "완벽하게 균형 잡힌 장면 하나하나가 감탄을 자아낸다"고 평가했다. 다만 "영화의 톤과 분위기가 두 주연 배우의 연기만큼 정교하게 조율됐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라며 아쉬움도 덧붙였다.
박 감독은 미국 시상식 시즌을 앞두고 봉준호 감독에게 조언을 구했다며 "건강 관리를 잘하라는 말을 들었다"고 전했다. 그는 또 "칵테일을 들고 낯선 사람들과 서서 대화하는 미국식 네트워킹 문화가 한국인인 나에게는 낯설고 어렵다"고 털어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