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내에서 재배중인 만감류 국산 품종 1호 '가을향'. 박정섭 기자40년 농부의 새로운 버팀목, 만감류 국산 품종 1호 '가을향'
제주도내에서 40년째 감귤 농사를 짓고 있는 A씨.
1만 6천㎡ 노지감귤 밭 한 켠에 자리잡은 2300㎡ 규모의 비닐하우스는 A씨에게 감귤농사를 이어올 수 있게 하는 버팀목이다.
지난해 노지감귤 농사로 쥐어든 돈은 2천만원. 비료와 농약대를 제하고 나면 남는 건 없다. 그가 지난 1년간 더위와 싸우며 흘린 땀이나 과수원을 가꾸기 위해 들인 노동력은 논외다.
감귤농사를 짓고도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생활을 감내해야 하다보니 4년 전 비닐하우스 절반을 뚝 떼내 심어둔 200여 그루의 '가을향'은 그에게 새로운 희망이다.
감귤 품종 황금향과 레드향이 반반씩 섞인 신품종 가을향은 2018년 제주도농업기술원이 첫 개발한 만감류다. 품종보호 등록·출원을 기준으로 만감류 국산 품종 1호다. 2022년부터 일반농가에 보급됐다. 이름은 가을철에 맛있게 먹을 수 있는 감귤에서 유래됐다.
일본의 황금향 품종을 대체하고, 올해부터 관세 철폐 뒤 이커머스와 대형마트에서 소비자를 공략하고 있는 만다린의 대항 품종으로 기대받고 있다.
당도는 13브릭스, 산도는 0.8% 정도다. 노지 재배까지 성공한다면 온주밀감을 대체할 수 있는 경쟁력있는 품종으로서의 가능성도 지니고 있다.
A씨가 지난 7일 첫 출하한 가을향의 5kg 한상자 가격은 3만원(택배비 포함). 아직 소비자들의 직접적인 반응을 보지는 못했지만 도매상과 직거래로 판매하고 있다. 함께 재배중인 한라봉 판매 가격을 가을향 판매기준에 적용했다.
가을향 수확 현장. 박정섭 기자"고품질 체질 개선 없이 무한경쟁에 맞설 수 없다"
만다린 파고를 넘어서려는 만감류 농가들의 노력과 달리 관세가 단계적으로 인하되던 지난 몇 년간 농가들은 이미 예방주사없는 통증을 겪었다.
미국산 만다린 수입량이 7천톤을 넘어섰던 2024년 봄. 제주 만감류는 직격탄을 맞았다.
천혜향은 1kg당 5천원 선을 유지하던 도매가가 4천원 밑으로 28%나 곤두박질쳤다. 한라봉은 kg당 4천원에서 3200원대로 20%나 주저앉으며 경영비조차 건지기 힘든 수준에 이르렀다.
유례없는 도전에 직면한 제주도가 농가와 농협과 손을 맞잡고 감귤산업 경쟁력 강화에 나선다. 고품질 중심의 체질 개선 없이는 무한경쟁에 맞설 수 없다는 위기의식의 발로다.
제주도는 온라인 유통 플랫폼 내 제주감귤 전용관 운영을 확대하고, 제주감귤의 당도와 신선도를 강조해 미국산 만다린과의 차별을 꾀하기로 했다.
특히 한라봉과 천혜향은 당도 13브릭스 이상, 산도 1.1% 이하, 레드향과 카라향은 당도 14브릭스 이상, 산도 1.1% 이하, 황금향은 당도 12브릭스 이상, 산도 1% 이하 등 품질 기준을 충족한 완숙과 출하를 지원하기로 했다.
오영훈 지사가 14일 제주시내 레드향 재배 농가에서 현장 간담회를 갖고 있다. 제주도 제공품질 미달 출하 막고, 초격차 품질로 승부수
제주도와 농산물수급관리센터·농협·감협·품목조직체로 구성된 '민관 합동 수급관리 협의체'를 1월부터 가동해 산지 출하와 유통 동향을 점검한다. 품질 기준에 미달하는 출하를 막기 위한 철저한 단속도 예고됐다.
자유무역협정(FTA) 이행으로 수입량이 늘거나 가격하락 때 보전해주는 '피해보전직불금제'의 기간 연장이 이뤄지도록 국회와 정부를 향한 건의도 이뤄진다.
오영훈 제주도지사는 14일 제주시내 레드향 재배 농가에서 농가와 농협, 만감류연합회 관계자들과 현장 간담회를 갖고, "제주 만감류를 세계 최고 수준의 품질로 만들어내고, 소비자들에게 안정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시스템만 잘 갖춰진다면 어떤 수입 농산물이 수입돼도 큰 문제는 없다"고 말했다.
제주감귤농협은 국제 해상물류비 상승 등 대외여건 악재에도 불구하고 현지 유통업체와의 협력을 강화하고, 현지 소비자 입맛에 맞춘 품질관리와 포장 디자인 개선 등 현지화 전략으로 마케팅을 강화한다는 방침이다.
올해 제주도가 목표로 하고 있는 노지감귤의 수출 계획 물량은 1400여톤. 2024년 1031톤에 비해 36%나 증가했다. 지난해 11월2일 캐나다에 18톤 수출을 시작으로, 러시아와 미국, 동남아시아 등 10여 개국에 수출할 예정이다.
만다린이 수입되더라도 조기출하를 자제하고 품질기준을 충실히 지킨 감귤이 출하된다면 제주산 만감류가 충분한 경쟁력을 갖는 만큼 농가들은 고품질 감귤 생산과 출하에 사활을 걸어야 한다는 데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병해충 유입과 저품질 수입 물량으로 인한 시장 혼선을 줄이기 위해 관련 제도와 검역 체계 보완도 빼놓을 수 없는 대목이다.
더불어민주당 문대림 국회의원(제주시갑,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은 "농축산물 할인지원사업중 할인품목에 만감류가 빠져있는데 포함시키기 위해 농림부와 협의중"이라며 "FTA 대응기금으로 만감류 재배를 권장했지만 만다린과 만감류의 출하시기가 겹친 건 결국 정부정책의 실패인 만큼 책임을 묻고, 대안 제시를 요청했다"고 말했다.
제주녹색당은 "오영훈 도정은 만감류 출하기와 만다린 수입 판매 시기를 분리·조절하는 등의 구체적인 방법 외에 농림부에 만다린의 특별 긴급 관세 적용을 적극적으로 요구하는 등 제주의 감귤 산업을 보호하기 위한 다각도의 시나리오를 짜야 한다"고 밝혔다.
만다린 수입대응 만감류 가격안정을 위한 관계기관 회의. 서귀포시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