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지금 종량제봉투 아예 없어요. 발주해도 얼마나 들어올지 모르겠네요."
25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의 한 동네 슈퍼마켓에서 일반쓰레기용 종량제봉투 구입을 문의하자 사장 라모(54)씨가 텅 빈 매대를 가리켰다. 평소 일반 종량제봉투를 채워놓는다는 매대엔 음식물용 종량제봉투만 소량 남아 있는 상태였다.
며칠 전부터 종량제봉투를 찾는 사람들이 평소보다 늘더니 순식간에 준비해놨던 수량이 다 팔렸다고 했다. 라씨는 "한 사람이 한 번에 봉투를 많이 사 가거나 하고 있다"며 "이런 일은 정말 처음 본다"고 황당해했다.
반면 전날 오후 서울 동작구의 한 편의점에선 정상적으로 종량제봉투 구입이 가능했다. 평소와 상황이 크게 다르진 않고, 수량도 넉넉하게 남아 있는 상태라고 했다. 다만 이곳 점주는 "공급처랑 얘기해 보니 앞으로 수급이 좀 달리면 발주해도 물량이 안 들어올 가능성은 있다고 한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중동 사태 장기화의 여파로 '비닐' 대란이 오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비닐의 원료인 '나프타' 수급에 비상이 걸리면서다. 특히 일상적으로 쓰이는 종량제봉투가 품귀 현상을 빚고 있다는 관측도 나오는 상황이다.
25일 서울 시내 한 대형마트에서 시민들이 쓰레기 종량제봉투를 구매하고 있다. 류영주 기자그러나 실제 CBS노컷뉴스가 전날과 이날 직접 서울시내의 슈퍼마켓과 편의점을 둘러본 결과 지역별, 업장별로 상황이 달랐다. 일부 슈퍼마켓 등에선 실제로 종량제봉투가 빠른 시간 내에 품절됐지만, 또 다른 곳들에선 평소처럼 구입이 가능한 상황이었다.
빠른 품절이 벌어진 곳들은 공통적으로 일부의 고객이 다량으로 봉투를 사 가는 일종의 '사재기'가 이뤄진 모습이었다.
서울 마포구의 한 슈퍼마켓의 종업원은 "지난주 금요일부터 일부 고객분들이 '사재기'처럼 종량제봉투를 다량으로 사 가서 화요일부터 동이 난 상태"라며 "많이 사 가시는 분들한테 반품이 안 된다고 얘기해도 사 가신다. 외려 당장 필요한 손님들이 못 사는 것 같다"고 말했다.
류영주 기자이런 상황으로 인해 일부 편의점이나 슈퍼마켓은 공급처의 요청 등으로 '1인당 한 묶음' 등으로 갯수를 제한하고 있기도 했다.
그러나 직접 찾은 서울 동작구, 서초구 등의 다수 슈퍼마켓이나 편의점엔 아직 종량제봉투가 넉넉하게 남아 있는 상태였다.
같은 동네에서도 어떤 곳은 품절, 어떤 곳은 물량이 꽤 남아 있어 분위기가 상반됐다. 일부 슈퍼마켓 등에선 "종량제봉투가 부족하다는 말이 있지만 실제 봉투 수급과 관련성은 전혀 모르겠다"는 반응도 돌아왔다.
실제로 지금 당장 종량제봉투가 부족한 상황은 아닌 것으로 관측된다. 현재 정부는 전국 지방자치단체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각 지자체별로 최대 6개월치 이상의 종량제봉투를 보유하고 있어 당분간 수급에는 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서울시의 경우도 25개 자치구 평균 약 4개월치 종량제봉투를 확보한 것으로 파악됐다.
류영주 기자다만 현 상황처럼 사재기 현상이 지속적으로 벌어질 경우 지역별 불균형이 생기고 공급 불안 현상이 더욱 심화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따라서 각 지자체에선 과도한 불안감 조성과 사재기를 자제해달라고 요청하고 있다.
다만 실제로 미국-이란 전쟁으로 인해 나프타 수급이 제한되면서 공장 등을 비롯해 관련 업계는 긴장하고 있는 상황이다. 국내에서 쓰이는 나프타의 절반가량이 해외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것으로 집계된다. 그중 사우디아, 쿠웨이트 등 중동에서 상당량이 들어오고 있다.
현재 비닐제조 공장 등뿐 아니라 석유화학 업체의 경우 나프타 수급난으로 공장 가동이 멈추는 상황이 실제로 벌어지고 있다. 전쟁이 더 장기화할 경우 비닐뿐 아니라 기저귀, 생리대, 플라스틱 등 일상에서 쓰이는 제품 전반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이에 정부는 나프타 수출 제한 등 고강도 조치를 통해 수급난을 해소하겠다는 방침을 밝히고 있다. 양기욱 산업통상부 산업자원안보실장은 전날 브리핑에서 "나프타의 생산·도입 물량을 의무적으로 보고받고, 매점매석을 금지하고, 수출을 제한할 수 있는 조치 등을 검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