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과 이란의 충돌로 촉발된 지정학적 위기, 치솟는 국제 유가, 금리 인하를 주저하는 미국 연준(Fed)까지. 악재가 겹겹이 쌓인 지금, 투자자들은 어디를 바라봐야 할까. 23일 CBS 유튜브 채널 <CBS경제연구실>에 출연한 오건영 신한 프리미어 패스파인더 단장은 전쟁의 공포 이면에 숨겨진 거시경제의 균열과 신용경색 신호를 짚어냈다.
끈적한 물가에 기름 부은 전쟁…연준, '2008년의 악몽' 떠올렸다
오 단장이 꼽은 첫 번째 연쇄 반응은 '고유가로 인한 인플레이션 고착화'다. 서비스 물가 등 이른바 '끈적한(Sticky) 인플레이션'이 잡히지 않은 상황에서 국제 유가는 배럴당 110달러 선을 위협하고 있다. 자산 가격 상승이 소비를 간접적으로 자극하는 것과 달리, 원자재 가격 급등은 물가를 직접적으로 끌어올린다.
오 단장은 현재 상황을 2008년 금융위기 직전과 비교했다. 당시 경기가 둔화하는 와중에도 유가가 140달러를 넘어서자, 연준과 한국은행은 물가 불안에 대응해 오히려 금리를 올렸다. 결국 수요가 무너지며 시장은 극심한 충격에 빠졌다. 현재 연준 내부에서 금리 인하론이 쑥 들어가고 일각에서 인상론까지 고개를 드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파월 의장의 리더십 공백이 이 같은 불확실성을 더욱 부추기고 있다.
환율 1500원에 130달러 원유…묶여버린 금리 인하
원유 수입 의존도가 절대적인 한국 경제에 고유가는 단순한 비용 증가를 넘어 거시경제 전반에 연쇄 충격을 가한다. 오 단장은 "유가가 오르면 무역수지 흑자가 빠르게 줄고, 이는 다시 환율을 끌어올리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고 진단했다.
과거 환율 1400원에 60달러짜리 원유를 들여오던 상황과, 지금처럼 환율 1500원에 130달러짜리 원유를 수입해야 하는 상황은 인플레이션 압력의 차원이 완전히 다르다. 고유가의 직접적 충격에 고환율로 인한 수입 물가 급등까지 겹치면서,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내리지 못하고 고금리 기조가 장기화하는 결정적 요인이 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란의 '페트로 위안' 도발? "달러 패권 붕괴는 과장된 해석"
이란이 원유 결제를 위안화로 받겠다고 나서면서 '페트로 달러' 패권이 흔들린다는 우려가 일었다. 그러나 오 단장은 "현재 페트로 위안이 전체 결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3~5%에 불과하다"며, 달러 패권이 흔들린다는 해석은 지나치다고 선을 그었다.
이는 달러 패권 해체라는 거시적 목표에서 비롯된 게 아니라, 미국의 제재로 달러 결제망(SWIFT)이 막힌 이란이 원유 대금을 회수하기 위해 택한 고육지책에 가깝다는 것이다.
제2의 금융위기 신호탄? 최소한 신용경색의 초기 징후
시장을 짓누르는 진짜 뇌관은 따로 있다. 고금리 장기화에 직격탄을 맞은 '사모대출(Shadow Banking)' 시장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은행 대출 규제가 강화되면서 그 빈자리를 채웠던 사모대출 펀드들이 최근 잇따라 환매 중단을 선언하고 있다. AI 혁신으로 기존 산업의 시스템과 담보 가치가 무너지면서 대규모 환매 요구(펀드런)가 발생한 결과다.
오 단장은 전쟁이 발발했음에도 안전자산인 금 가격이 급락하고 미국 국채 금리가 0.5%p나 치솟는 기현상을 "신용경색의 초기 징후"로 진단했다. 불안을 느낀 투자자들이 금마저 매도하며 현금 확보에 나서는 패닉 셀링의 성격이 짙다는 것이다.
최근 미국 연준이 월가 은행들의 자본 규제를 대폭 완화한 조치도 이 신용경색 리스크와 맞닿아 있다. 일각에서는 사모대출 부실을 은행 장부로 떠넘기는 특혜라고 비판하지만, 오 단장의 해석은 다르다. "전시 상황에서 규제를 풀어준다고 은행이 무리하게 대출을 늘리지는 않는다. 이는 즉각적인 부양책이 아니라, 지정학적 불확실성이 해소됐을 때 꽉 막힌 신용을 신속히 뚫어줄 회복력(Resilience)의 토대를 미리 마련해둔 것"이라는 설명이다.
다만 현재를 2008년급 시스템 붕괴로 보기는 어렵다고 했다. 당시에는 경제의 심장인 은행이 무너졌지만, 지금은 부실이 사모펀드에 국한되어 있고 중앙은행의 유동성 공급 수단도 다양해진 만큼 전염 위험은 제한적이라는 판단이다.
"전쟁 종료 시점 예측은 무의미…해답은 분산 투자"
오 단장은 혼돈의 시장에서 살아남는 법으로 "전쟁이 언제 끝날지 억지로 예측하려는 순간, 투자의 고통이 시작된다"고 말했다. 과거 관세 충격이나 러·우 전쟁 초기에도 시장은 패닉에 빠졌지만, 긴 호흡으로 보면 결국 하나의 이벤트로 소화하고 적응했다는 것이다.
그는 "상승장에서는 수익률을 갉아먹는 전략처럼 보이던 분산 투자가, 언제 어떤 충격이 올지 모르는 불확실성의 시대에는 가장 확실한 방어 수단이 된다"며 섣부른 예측 대신 포트폴리오를 넓게 분산하고 우직하게 유지할 것을 당부했다.
▶▶오건영 단장의 시장 심층 진단과 투자 전략 풀버전은 유튜브 채널 <CBS경제연구실>에서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