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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윈도 95처럼 버퍼링이"…일할수록 밀려난 청년 ②"멀쩡한데요"…서류와 눈앞이 다른 아이의 엄마 (계속) |
"그게 뭔데요? 무슨 소리예요, 도대체?"
휴대폰을 귀에 댄 채 김소연(50·가명)씨의 손이 멈췄다. 쥐고 있던 진료 대기 번호표가 구겨졌다. 2022년 6월, 소연씨가 암 진료를 앞두고 서울 강서구 삼성서울병원 1층 환자 대기실에서 피를 뽑고 1시간째 차례를 기다리던 중이었다.
"어머니, 이게…장애는 아닌데 장애와 비슷한…혹시 '경계선 지능인'이라고 들어보셨어요?" 아들의 담임 선생님은 조심스러우면서도 또렷하게 말했다. "아이가 이거 같은데, 혹시 알고 계셨어요? 물론 검사를 해봐야 알겠지만요."
"그게 뭐예요?" 소연씨는 통화를 스피커폰으로 전환하고 동시에 검색을 시작했다. 경계선 지능. 지능지수(IQ)가 71에서 84 사이로, 지적장애는 아니지만 평균보다 낮은 인지 능력을 의미한다는 설명이 휴대폰 화면에 떴다. 장애인도 비장애인도 아닌, 그 사이에 놓인 사람들이 있다는 뜻이었다.
"검색을 해보니까 상상하지 못했던 내용들이 있어서 너무 무섭더라고요." 소연씨는 당시까지 경계선 지능인이라는 개념을 알지 못했다. 장애인이면 장애인이지, 그 사이에 있는 사람도 있을 줄은 몰랐다. 중학생인 아들이 여기에 속할 수 있다는 말에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암 진료 포기하고 고속버스 탔다…"그게 뭐예요?"
소연씨는 진료를 포기하고 고속버스에 올랐다. 4시간을 가는 동안 스마트폰을 놓지 못했다. 경계선 지능인이 무엇인지, 검사는 어떻게 하는지, 부모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지 끊임없이 검색했다. 외국계 포털 사이트에 들어가 해외 사례까지 뒤졌다. 하지만 당시에는 인터넷에서도 관련 정보를 찾기 어려울 만큼 경계선 지능인은 알려지지 않은 개념이었다.
시골 학교로 전학을 보낸 지 한 달 만이었다. 서울에서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아 '졸업만이라도 시키자'는 심정으로 내려간 참이었다. 단순히 아이가 집중력이 부족하고 덜렁댈 뿐이라고 생각했는데, 한 달 만에 돌아온 것은 담임 선생님의 전화였다.
사흘 뒤 소연씨는 아들을 데리고 소아정신과를 찾았다. 한 달 뒤 나온 심리평가 결과, 아들의 전체 IQ는 69였다. 일반적으로 IQ 70 이하는 지적장애로 분류된다.
소연씨는 결과를 기다리는 한 달 동안 의사에게 물어볼 질문을 정리해뒀다. 인터넷을 뒤져 찾아낸 경계선 지능인의 특성 10가지를 적어놨다. 아들이 3~4개만 해당하는데도 경계선 지능인인지, 어떤 지원을 받을 수 있는지 묻고 싶었다.
"마음을 굳게 먹고 질문거리를 적어 갔거든요. 인터넷에도 정보가 잘 없었으니까요." 소연씨는 말했다. "질문을 두세 개 했나? 그냥 가라고 하더라고요. 저는 궁금한 게 더 많았는데…좀 허망했어요."
"경계선 지능이라는 개념 자체가 학계에서 논의된 지 4~5년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아직 데이터가 많지 않아요." 간신히 들은 의사의 설명은 이 정도였다. "장애는 아니라서 지원책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소연씨는 결과를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아이가 잠을 못 자고 간 상태라서, 컨디션 때문에 그럴 수도 있으니까." 같은 병원에 재검사를 요청했지만 거절당했다. 시골이라 소아정신과가 한 곳뿐이었다.
수소문 끝에 찾은 심리상담센터에서 50만 원을 내고 다시 검사를 받았다. 기초생활수급자인 소연씨에게 적지 않은 금액이었다. 결과는 IQ 71. 비슷한 수치가 다시 나오자 더 이상 부정할 수 없었다.
"예전에 아이가 초등학생 때 선생님이 산만하다고 검사 받아보라고 전화한 적이 있었어요." 소연씨가 말했다. "그때는 아들을 장애인 취급하는 것 같아 기분이 나빴죠.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좀 더 빨리 알 수 있었던 기회였을 텐데…."
어렸을 땐 축구부…선생님도 "경계선, 잘 못느껴"
기사와 직접적 관련 없는 교실 사진. 사진공동취재단고등학생인 아들 최정선(가명)군은 어디에도 속하지 못했다. 일반학급에서 수업을 따라가기에는 벅찼고, 특수학급에서는 받아주지 않았다.
"서류를 보면 특수학급에 맞는데, 대화를 해보면 전혀 맞지 않아요." 특수학급 교사는 아들이 너무 '멀쩡하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서울에서도, 시골 학교에서도 결과는 같았다.
정선군은 초등학교 때 축구부 생활을 했을 정도로 운동을 잘하고, 대화를 해봐도 큰 문제가 없어 보인다. 담임 교사도 "경계선 지능인이라는 걸 잘 느끼지 못하겠어요. 그런데 서류에 이렇게 나오니 믿을 수밖에 없죠"라고 말했다.
"잠깐 얘기해서는 전혀 몰라요. 한 2~3일 정도 깊게 대화를 해보면 그제야 티가 나죠." 소연씨는 말했다. 정선군은 수업에 적응하지 못해 결석이 잦고, 졸업에 필요한 최소 출석 일수도 얼마 남지 않은 상태다.
소연씨는 정선군을 복지관 프로그램이나 경계선 지능인 행사에 참여시킨 적이 있다. 정선군은 행사 내내 또래 아이들을 잘 도왔다. 그러나 집에 오는 길에 이렇게 말했다. "엄마, 나 제발 좀 멀쩡한 애들이 있는 곳으로 가면 안 돼?"
장애 등록도 고민했다. 첫 검사에서 IQ 69가 나왔을 때 지적장애 등록을 시도할 수 있었다. 하지만 소연씨는 망설였다. "겉보기에는 너무 멀쩡한 아이를 장애인으로 등록하면…기록이 남잖아요."
정선군은 남을 쉽게 믿는 탓에 사건에 연루되기도 했다. 선배의 말을 그대로 믿고 남의 물건을 가져다주다 경찰 조사를 받은 적도 있다. 소연씨는 경계선 지능 검사 결과지를 경찰에 제출했지만 참작되지 않았고, 합의금으로 수백만 원을 물어야 했다.
"그때는 차라리 장애 등록을 받을 걸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소연씨가 말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재검사를 받자 IQ는 71, 그다음에는 79로 나왔다. 장애 등록 기준인 '70 이하'를 넘어선 것이다.
정선군의 웩슬러 지능검사 결과. AI 생성 이미지 재구성 시청·구청·교육청 돌았지만…"어떤 지원이 있는지 모르겠다"
소연씨는 아들의 검사 결과지를 들고 시청과 구청, 주민센터, 교육청을 돌아다녔다. 하지만 그때마다 "어떤 지원이 가능한지 잘 모르겠다"는 답이 돌아왔다.
소연씨만 길을 몰랐던 건 아니었다. 한국보건복지인재원이 경계선지능 청년 203명을 조사한 결과, 정책 이용 과정에서 가장 큰 어려움으로 '어떤 정책과 서비스가 있는지 자체를 모른다'는 응답이 가장 많았다.
한국보건복지인재원 보고서. AI 생성 이미지 재구성 겨우 찾은 지원책도 참여하기는 어려웠다. 서울시 경계선지능인평생교육지원센터(밈센터)에 신청한 지 3년이 넘었지만 자리가 나지 않았다. 교육청의 심리상담 지원은 추첨제로 운영되는데, 한 번 선정돼 6개월간 무료로 지원받은 뒤로는 다시 선정되지 못했다.
원인을 규명하는 대학병원 정밀검사는 300만~400만 원이 드는데, 실비보험도 적용되지 않는다. "아이가 태어날 때부터 머리가 작아서인지, 어렸을 때 넘어져 머리를 다친 후유증 때문인지, 원인을 정확히 알고 싶어요." 하지만 암 환자이면서 기초생활수급자인 소연씨에게 검사 비용은 감당하기 어려웠다.
"성인 되기 전에 말해야죠"…아직 꺼내지 못한 말
정선군은 자신이 경계선 지능인이라는 사실을 모른다. 단지 '남들보다 조금 느린 사람'이라고만 들었을 뿐이다. 소연씨는 '경계선 지능인'이라는 정확한 표현을 아직 꺼내지 못했다.
"아이 특성상 자기가 들은 얘기를 친한 친구들에게 그대로 말해버려요." 소연씨가 말했다. 실제로 정선군은 심리상담센터에 다닌다는 사실을 친구들에게 말했다가 사이가 멀어진 적이 있다. 친구 부모가 "그 아이랑 놀지 마라"고 했다는 것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가야 할 군대도 큰 걱정거리다. 정선군은 친구들처럼 군대에 가겠다고 하지만, 소연씨는 군 생활에서 더 큰 사고에 휘말릴까 두렵다.
소연씨는 정선군이 고등학교를 마칠 무렵, 마주 앉아 이야기할 생각이다. "성인이 되기 전에 얘기해야죠." 소연씨는 말했다. "그게 어떻게 보면 쉬운 일인데, 당연한 일인데, 왜 이렇게 어려운지 모르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