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과 마수드 페제시키안 이란 대통령. 연합뉴스미국·이스라엘과 이란간의 전쟁은 미국의 예상과 달리 중·장기전으로 치닫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전세계의 에너지 혈관'인 호르무즈 해협 개방을 조건으로 협상 시한을 5일에서 7일로 늘렸다.
이런 가운데 파키스탄, 이집트 등 중재국들이 미국과 이란과의 물밑 접촉을 통해 '45일 휴전 후 종전 협상'을 추진하고 있다는 해외 보도도 나왔다.
지난 2월 28일 발발한 전쟁은 어느새 5주를 넘겼다. 이란이 미국의 예상과 달리 오래 버틴 이유로는 드론 등 이란의 비대칭 전력, 분산된 군사 기지 등 군사적 요인과 함께 미국의 제재에도 붕괴되지 않은 경제가 꼽힌다.
'이란의 경제적 동맹' 중국의 역할은
전문가들은 "이란의 최대 우방국인 중국이 '25년 협정'을 통해 전쟁 중에도 이란 경제의 숨통을 유지시켜 주는 역할을 했다"고 분석한다.
지난 2021년 3월 양국이 맺은 이 협정은 중국이 향후 25년 간 이란산 원유를 국제시장 가격보다 싸게 공급받는 대신 항만, 철도, 도로, 산업단지 등 이란의 인프라에 투자하는 내용이다.
이란은 해외 수출이 막힌 원유를 중국에 팔면서 일정한 외화를 확보할 수 있고, 이 돈으로 중국으로부터 의약품, 공장 부품, 통신 장비 등 상품과 서비스를 구매했다. 거래는 미국 달러 결제 시스템(SWIFT)가 아닌 위안화 결제 시스템(CIPS)을 이용했다.
이란이 중국 일대일로(육로와 해로를 잇는 대규모 프로젝트)의 중동 허브 역할을 한 덕에 돈 줄이 완전히 마르지 않게 된 것이다.
이번 전쟁에 대해 이란을 놓고 미국의 군사 공격과 중국의 경제 지원이 맞붙은 형국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이란전쟁으로 시험대 오른 中일대일로
항만시설을 시찰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연합뉴스이란 전쟁으로 중국의 일대일로 역시 시험대에 올랐다. '경제 동맹'이 전쟁 같은 비상상황에서 유지될 수 있느냐가 판가름날 것이 때문이다.
이란산 원유 수입이 계속 제약을 받으면 세계 최대 원유 수입국인 중국 경제에도 영향이 불가피하다. 또 자동차·철강 등 중동 수출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중국은 내수진작 정책을 계속 내놓고 있지만 여전히 수출 비중이 큰 경제 구조다.
중국이 가장 우려하는 것은 이란의 정권교체와 함께 친미 정권이 들어서는 것이다.
이럴 경우 '25년 협정'은 종잇조각이 될 수 있고, 일대일로는 중간에 맥이 끊기게 된다.
하지만 과거 사례를 봤을때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지난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으로 후세인 정권이 붕괴됐고, 2011년 나토(NATO)가 개입해 카다피 정권을 무너뜨렸지만, 미국의 원하는 정권이 들어서지는 않았다. 앞선 2001년에는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정권을 몰아냈지만 미군 철수 후 탈레반이 재집권했다.
멀어진 단기전 승리…"中에 유리해졌다"
이번 전쟁은 물리적인 힘을 통한 세계 질서를 재편하려는 미국과 내정 불간섭을 내세우며 다자주의로 맞서려는 두 강국의 '헤게모니 다툼'의 성격도 짙다.
하지만 미국의 단기전 승리가 멀어지면서 상대적으로 중국에게 유리한 상황이 전개될 수 있다는 분석이 많다.
미국의 막대한 군사 자산과 국가 재정이 이란에서 소비되면서 중국을 견제할 역량이 줄어 들었기 때문이다. 중국의 핵심 이익인 대만 문제에서도 마찬가지다.
유럽의 싱크탱크인 브뤼겔은 장기전으로 가거나 미군이 철수할 경우 "중국의 이란에 대한 외교와 투자의 공간이 확대되고 글로벌 사우스(비서구권 개발도상국 및 제3세계 국가)에서 중국의 위상이 높아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무엇보다도 이란 전쟁으로 미국은 유럽 등 동맹국과 거리가 멀어졌다. 국제법이나 유엔 같은 국제기구를 건너뛰고 이란을 '심판'하려 전쟁을 일으키면서 국제적 신뢰도 크게 잃었다.
미국 여론조사기관 갤럽이 지난 3일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130여 개국 국민 가운데 36%가 중국 지도부에 대한 지지를 보냈다. 미국은 31%에 불과했다.
중동과 유럽 등을 넘나들며 중재 외교를 펼친 중국의 '다자주의'가 미국의 일방적 패권주의를 대체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미국과 이란을 중재하는 파키스탄 등은 중국과 긴밀히 소통하며 공감대를 다져왔다.
종전 협상 과정에서 중국의 역할이 커질수록 무게추는 중국쪽으로 기울 수밖에 없게 됐다. 5주 앞으로 다가온 미·중 정상회담에서 중국이 활용할 협상 카드가 더 많아졌다는 관측이다.
미국 브루킹스 연구소의 패트리샤 M. 김 선임연구원은 "중국은 트럼프 대통령이 방중 성과를 필요로 한다는 점을 알고 있기 때문에 더 강경한 입장을 취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