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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가 지운 흔적, '문턱'서 마주하다" 고혜진 개인전《THRESHO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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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혜진 개인전 <THRESHOLD> 포스터  고혜진 개인전 <THRESHOLD> 포스터 
인류의 역사는 곧 '이름 붙이기'의 역사다. 혼돈 상태의 세계에 이름을 부여해 우리는 사물을 구분하고, 개념을 정립하며, 서로 소통해 왔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이름이 정교해질수록 세상에는 촘촘한 바리케이드가 세워졌다. 같은 감각과 본질을 공유하면서도 언어와 문화가 다르다는 이유로 거리가 생겼고, 경계가 들어섰다.

오는 6월 6일, 부산 중구 부산가톨릭센터 공간101.1에서 막을 올리는 고혜진 작가의 개인전 <THRESHOLD(문턱)>는 바로 이 경계면을 정면으로 응시하는 전시다. 하지만 작가는 경계를 폭력적으로 허물거나 없애자고 주장하지 않는다.

대신 안과 밖이 나뉘는 바로 그 '문턱'이야말로, 두 세계가 가장 격렬하게 접촉하고 가장 가까워지는 지점임을 주목한다. 이름이라는 인위적인 분리가 일어나기 이전, 우리 모두가 공유했을 '연결의 흔적'을 미디어아트의 어법으로 추적하는 시도다.

부산의 일상과 우주의 시공간, '동일한 몸짓'으로 만나다

이번 전시의 미학적 성취는 지극히 로컬(지역)적인 아카이브에서 출발해 우주적 시공간으로 확장되는 서사의 스케일에 있다.

작가는 부산 곳곳의 의미 있는 장소와 풍경을 직접 3D 스캔하여 디지털 데이터로 변환했다. 이 데이터들은 3D 그래픽 툴(Blender)과 리얼타임 엔진(Unreal Engine 5)을 거치며 거대한 '포인트 클라우드(Point Cloud, 점군)' 형태로 전시장 벽면에 투사된다.

우리가 발 디디고 서 있는 고정된 부산의 풍경은 시각적 입자와 점들의 집합체로 해체되며, 매 순간 살아 움직이는 유동적인 풍경으로 재탄생한다. 과거와 현재가 중첩된 공간의 기억이 디지털 데이터의 흐름으로 치환되는 순간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 미시적인 지역의 기록이 작가가 직접 제작한 천체망원경으로 관측한 천체 이미지와 맞물린다는 점이다. 밤하늘의 별빛을 추적하고 기록하는 행위는 인간이 보이지 않는 세계를 인식하려 했던 가장 오래된 시도 중 하나다.

부산의 골목길을 스캔하는 행위와 수억 광년 떨어진 우주를 관측하는 행위는 스케일의 차이만 있을 뿐, 본질적으로 세계를 이해하고 연결하고자 하는 '인간의 동일한 열망'이자 몸짓임을 전시는 시각적으로 증명해 낸다.

관객의 몸짓이 완성하는 리얼타임 인터랙션

<THRESHOLD>는 관객이 단순히 시각 정보를 소비하는 수동적 감상에 머물게 두지 않는다. 전시 공간 전체가 하나의 유기적인 인터랙티브(반응형) 시스템으로 구동되기 때문이다.

오픈소스 사운드 합성 프로그램인 'Pure Data'를 기반으로 구축된 사운드 시스템은 아두이노(Arduino) 거리 센서와 연동되어 전시장 내 관객의 움직임과 위치를 실시간으로 포착한다. 수집된 관객의 데이터는 OSC(Open Sound Control) 신호를 통해 언리얼 엔진으로 즉각 전송된다.

관객이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벽면의 포인트 클라우드 입자들이 소용돌이치고, 형태가 변형되며, 공간을 채운 소리의 주파수가 바뀐다. 결국 전시장의 작품은 완결된 고정체가 아니라, 관객의 존재와 결합하여 매 순간 단 한 번만 존재하는 실시간 시청각 퍼포먼스가 된다.

이러한 '과정 중심적' 미학은 전시장 한 편에서 쉴 새 없이 작동하는 3D 프린터에서도 드러난다. 전시 기간 내내 멈추지 않고 무언가를 출력하고 축적해 나가는 3D 프린팅 오브제들은 완결된 조각이 아니라 '생성 중인 상태' 그 자체를 보여준다. 작가에게 전시는 완성된 결과물을 뽐내는 쇼룸이 아니라, 시간의 흐름과 관객의 호흡이 더해져 끊임없이 세포 분열하는 생태계인 셈이다.

조소에서 뉴미디어로, 트렌디한 감각의 확장

고혜진은 본래 대학에서 조소를 전공한 미술가다. 물질의 양감과 덩어리를 다루던 조각가가 디지털 데이터의 최소 단위인 '점(Point)'과 '신호(Signal)'를 다루는 미디어 아티스트로 진화한 궤적은 무척 흥미롭다.

그는 2024년 부산비엔날레의 스팟 영상 및 오프닝 3D 영상 제작, 2023년 부산바다미술제 스팟 영상 제작 등을 도맡으며 리얼타임 3D 그래픽 기술을 동시대 시각예술 스펙트럼 안에서 가장 트렌디하고 세련되게 소화해 내는 연출자로 평가받아 왔다. 디지털 기술을 다루되 결코 차갑지 않으며, 오히려 그 기술의 틈새에서 인간적인 서사와 로컬의 냄새를 길어 올리는 것이 그의 장기다.

이번 전시는 최근 현대 미술계의 화두인 '기술과 예술의 융합', '관계의 미학'을 군더더기 없이 시뮬레이션한 현장을 만나볼 수 있다. 복잡한 코딩과 센서 메커니즘이 동원됐지만, 그것이 기술에 그치지 않고 '언어 이전의 공통된 감각을 회복한다'는 전시의 철학적 주제 의식과 완벽하게 맞물려 작동한다.

THRESHOLD (고혜진 개인전) 일시: 2026. 06. 06(토) ~ 06. 12(금) | 12:00 ~ 18:00오프닝: 2026. 06. 06(토) 16:00 ~ 19:00장소: 부산 중구 중구로 71, 부산가톨릭센터 2층 공간101.1장르: 반응형 시청각 인스톨레이션 (Responsive Audiovisual Install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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