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22년 대선 당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 선거대책위원회가 공개한 '탈모 건강보험' 공약 관련 영상. 유튜브 캡처정부가 하반기 탈모치료 건강보험 적용 확대 방안을 추진하면서 적절성을 둘러싼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건강보험 재정의 적자 전환이 예고된 상황에서 탈모보다 시급한 중증 질환 치료 보장 강화가 우선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18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정부는 하반기 탈모치료 건강보험 적용 확대 방안을 검토 중이다.
정은경 복지부 장관은 지난 11일 기자간담회에서 "청년층 탈모가 건강과 일상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에 치료가 필요하다는 관점과, 중증 위주로 보장성을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이 다양하게 있다"며 "공론화 과정을 거쳐 추진 방안을 검토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탈모치료 건보 적용은 이재명 대통령의 2022년 대선 공약이기도 하다. 이 대통령은 지난해 복지부 업무보고에서도 "요즘은 탈모를 생존의 문제로 받아들이는 것 같다"며 건보 적용 확대 검토를 주문했다.
폐암 약제 비급여 月350만 원…"주객 전도"
탈모치료 급여화의 우선순위를 두고는 반론도 적지 않다.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막대한 치료비를 부담하는 중증 질환 환자들이 여전히 많기 때문이다.
국회 전자청원에 따르면 20대 여성 A씨는 건강검진에서 폐암 의심 소견을 받은 뒤 ALK 양성 비소세포폐암 진단을 받고 수술을 받았다. 담당 의료진은 재발 방지를 위해 표적항암제 '알레센자'를 2년간 복용할 것을 권고했지만, 해당 약제는 비급여로 월 약값이 약 350만 원에 달했다.
A씨는 청원 글에서 "부모님이 집을 담보로 대출까지 받아 약값을 마련했다"며 "다시 건강하게 사회생활을 할 수 있도록 알레센자 급여화를 부탁드린다"고 호소했다.
김성주 한국중증질환연합회 대표는 "신약이 개발돼도 건강보험 급여 등재가 지연돼 수많은 중증 희귀난치성 질환 환자들과 말기 암 환자들이 한 달에 수백, 수천만 원에 달하는 약값을 감당하지 못해 치료를 포기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생명과 직결된 중증 질환 치료제 급여화는 재정 부족을 이유로 수년씩 미뤄지는데, 생명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지 않는 질환에 건보 재정을 우선 투입하는 것은 주객이 전도된 처사"라고 주장했다.
'적자 예고' 건보 재정 우려…'5천억~7천억 규모' 추산도
연합뉴스현재 탈모치료는 자가면역질환인 원형탈모나 지루성 피부염 등에 따른 질환성 탈모에만 건강보험이 적용된다. 유전성(안드로겐성) 탈모 치료는 비급여 항목이다. 급여 적용 대상이 확대되면 수혜 인원이 크게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국내 탈모 인구는 약 1천만 명으로 추산된다.
건강보험 재정 부담에 대한 우려도 제기된다. 지난해까지 흑자를 유지했던 건강보험 재정수지는 올해부터 적자로 전환될 것으로 전망된다.
국회예산정책처의 건강보험 재정전망에 따르면 재정수지율은 2029년 -10.7%, 2033년 -30.7%까지 악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누적 준비금은 지난해 26조 원에서 2028년 모두 소진되고, 2033년에는 98조 원의 재정 부족이 발생할 것으로 추산됐다.
고려대 의대 예방의학교실 정재훈 교수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본인부담률 30%를 가정해 추계한 결과 남성형 탈모 약물 급여화 시 연간 공단 추가 부담은 치료 인구에 따라 약 1천억~1400억 원(100만 명), 중간 시나리오에서는 약 3천억~4200억 원(300만 명)에 이를 수 있다"고 밝혔다.
이어 "현재 알려진 탈모 인구 비율을 적용하면 최악의 경우 5천억~7천억 원 규모까지 확대될 수 있다"며 "급여화로 치료받는 인원이 늘어나면 재정 부담은 더 커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건보료 효용성 체감…"급여화해 약가 낮출 수 있어"
반면 탈모치료 급여화가 청년층의 건강보험 체감도를 높일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보건의료단체연합 정형준 정책위원장(원진녹색병원 원장)은 "청년층을 포함해 국민 모두가 보험료를 내는 만큼, 보험료가 어떤 혜택으로 돌아오는지 보여주는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탈모약은 복제약(제네릭)이라 한 알에 100~200원까지 약가를 낮출 수 있다"며 "본인부담과 일반 진찰료를 더해도 추가 재정은 100억 원도 안 들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공론화 과정을 거쳐 하반기 중 추진 방향을 결정할 방침이다. 행정안전부는 다음 달 4일 '모두의 토론회' 첫 번째 주제로 탈모치료제 건강보험 급여 적용 문제를 다룰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