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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그것'이 아니라 '너'로 만나는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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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위해 기도합니다④]

 이학성 목사(거룩한뜻세움교회, CBS 자문위원) 제공이학성 목사(거룩한뜻세움교회, CBS 자문위원) 제공
코로나19가 한창이던 때였다. 빈 예배당에 카메라 하나를 세워 두고 혼자 앉았다. 평소 같으면 성도들이 앉아 있을 자리였다. 찬송 소리가 있고, 기도 소리가 있고, 누군가의 "아멘"이 따라왔을 공간이었다. 그날은 아무도 없었다. 넓은 예배당은 사람 보다 침묵이 더 많았다.
 
기도를 시작하기 전에 휴대폰 화면을 오래 들여다 보았다. 그날 기도의 주인공은 병 실에 혼자 누워 있던 한 성도였다. 이름 석 자를 천천히 불러 보았다. 이름을 부르고 나니 얼굴이 떠올랐다. 얼굴이 떠오르니 그 사람이 견디고 있을 시간이 따라왔다. 그제야 기도가 시작되었다.
 
코로나19로 성도들을 직접 만날 수 없던 시절, 나는 <Pray for You> 라는 이름으로 한 사람을 위한 영상 기도를 녹화해 보내기 시작했다. 사연을 받고, 그 사람만을 위해 기도한 뒤 영상을 전송했다. 돌이켜 보면 그것이 새로운 목회 프로그램이었다 거나, 어떤 성과를 낸 사역이었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지금 기억나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니다.
 
카메라의 빨간 불이 켜지기 직전의 몇 분이다. 그 짧은 시간 동안 나는 한 사람의 이름을 몇 번이고 불렀다. 그 사람이 웃던 얼굴도 생각나고, 병원 침대에 누워 있을 모 습도 생각났다. 이상하게도 그의 아픔이 내 안으로 조금씩 들어왔다. 목사는 늘 많은 사람을 위해 기도한다고 말하지만, 사실 한 사람만 생각하는 일은 쉽지 않다. 해야 할 일도 많고, 만나야 할 사람도 많다. 사람은 어느새 숫자가 되고 명단이 된다.
 
그런데 카메라 앞에서는 그럴 수가 없었다. 그 시간만큼은 오직 한 사람뿐이었다. 기도를 마치고 영상을 보내면 내 몫은 끝난 것 같았지만, 이상하게도 내 마음은 그 사람 곁에 조금 더 머물러 있었다.
 
그때, 오래전 읽었던 마르틴 부버의 『나와 너』가 떠올랐다. 처음 그 책을 읽었을 때 는 좋은 책이라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지금 와서 보니 나는 그 책을 이해한 것이 아니라 읽었다고 착각했던 것 같다. 책은 읽는 것이 아니라 살아내는 것인지도 모른다. 어떤 문장은 시간이 흘러야만 뜻을 드러낸다.
 
부버는 사람을 두 가지 방식으로 만난다고 했다. '나-그것'의 관계와 '나-너'의 관계 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사람을 너무 쉽게 '그것'으로 만든다. 도움이 되는 사람, 일을 잘하는 사람, 성실한 사람,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 그렇게 이름 앞에 설명을 하나 씩 붙이다 보면 정작 그 사람은 사라지고 설명만 남는다.
 
나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목사라는 이름으로 많은 사람을 만나면서도, 어느 순간 부터는 기도 제목을 기억했지 사람을 기억하지 못한 적이 있었다. 병명을 기억했고, 형편을 기억했고, 해결해야 할 문제를 기억했다. 그런데 그 사람의 얼굴은 흐릿했다. 이러한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조금 부끄러웠다.
 
<Pray for You>를 녹화하던 시간은 그 부끄러움을 조용히 들여다보게 했다. 나는 기도 제목을 위해 기도한 것이 아니었다. 한 사람을 위해 기도하고 있었다.
 
그 깨달음은 에마뉘엘 레비나스의 『전체성과 무한』으로 이어졌다. 그는 윤리는 타인의 얼굴 앞에서 시작된다고 말했다. 얼굴은 눈과 코와 입이 아니라, 내 앞에 있는 한 존재가 "나를 외면하지 말아 달라."고 말없이 건네는 요청이다.
 
그 말을 읽었을 때는 철학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병실에 있는 성도의 이름을 부르던 그 시간에는 그것이 철학이 아니라 삶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기도란 어쩌면 하나님께 무엇을 많이 말하는 일이 아니라, 한 사람을 끝내 외면하지 않는 일인지도 모른다.
 
예수님도 그러셨다.
 
삭개오를 사람들 속에서 찾아 이름을 부르셨고, 부활의 무덤 앞에서는 "마리아야." 하고 부르셨다. 베드로에게는 실패를 예고하시면서도 "내가 너를 위하여 기도하였다" 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은 언제나 한 사람씩 만나셨다.
 
우리는 자꾸 많은 사람을 사랑하려 한다. 그러나 많은 사람을 사랑한다는 말은 때로 아무도 제대로 사랑하지 않는 말이 되기도 한다. 사랑은 대개 한 사람에게서 시작된다. 기도도 그렇다.
 
세상은 사람을 자꾸 셈한다.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얼마나 쓸모가 있는지, 얼마나 성공했는지를 묻는다. 하지만 하나님은 먼저 이름을 부르신다. 그 이름 하나만으로도 충분하다는 듯이.
 
돌아보면 사람을 잃는 일은 거창하게 시작되지 않는다. 이름 대신 직함을 부를 때, 얼굴 대신 역할을 볼 때, 그때부터 사람은 조금씩 사라진다.
 
기도는 그 반대편에 있다.
 
잊혀 가는 이름을 다시 불러 보는 일.
바쁘다는 이유로 미뤄 두었던 얼굴을 다시 떠올리는 일.
그리고 하나님 앞에서 그 한 사람을 끝내 포기하지 않는 일.
 
오늘도 문득 누군가의 얼굴이 생각난다면, 잠시 그 이름을 조용히 불러 보시기 바란다. 기도는 하나님을 움직이는 일이 아니라, 내 마음이 한 사람에게 다시 머무르게 되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 머무름 속에서 우리는 비로소 사람을 '그것'이 아니라 '너' 로 만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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