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백두산 밀영이 아니라 소련 하바로프스크 인근에서 태어난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의 이름은 원래 유리 일세노비치 김(Юрий Ирсенович Ким, Yuri Irsenovich Kim)이었다. 해방 후 아버지 김일성을 따라 귀국한 뒤에도 상당기간 소련식 이름인 '김유라'로 불린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의 북한전문매체 NK뉴스는 최근 김정일이 평양 제4인민학교 시절에 직접 지어 "불후의 고전적 명작 동시"로 선전되는 '우리 교실'의 저자가 북한 잡지 '아동문학' 1954년 6월호에는 '김유라'로 되어 있는 사실을 소개했다. 이 동시의 하단에는 북한의 문학평론가 박세영의 감상평도 실려 있다.
'김유라'라는 이름이 아동문학 잡지에 표기됐다는 것은 이 이름이 당시 공식적으로 사용된 이름이었음을 뜻한다.
소련의 기록이나 탈북자들의 증언이 아니라 북한 내부에서 제작된 당대 출판물에서 '김유라'라는 이름이 쓰인 것은 적어도 1950년대 만해도 이 이름이 계속 사용되었음을 보여주는 흔치않은 내부 증거라고 할 수 있다.
NK뉴스의 보도에 따르면 김정일은 남산 고급중학교 졸업을 앞둔 1960년 7월에 자신의 개명 사실을 처음으로 밝혔다고 한다. 한 모임에서 동창들에게 "내 조선식 이름은 김정일이 될 것이며, 최근 그 이름으로 신분증을 발급받았다. 이제부터는 나를 김정일로 불러 달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김유라는 김정일(金正一)을 거쳐 결국 '태양'이 들어간 김정일(金正日)로 바뀌었다. 태어난 곳도 소련군 소속 88독립보병여단이 주둔한 하바로프스크 인근이 아니라 백두산 밀영으로 선전됐다.
백두혈통의 권력승계를 위해 김정일의 태어난 곳과 이름 등에서 소련색은 철저히 지워졌고, 과거에 나온 작품 등 1차 자료들은 이런 논조에 맞춰 조작되거나 다시 발간하는 절차를 거쳤다.
연합뉴스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이름도 처음에는 일본과 한국 매체 등의 보도에서 김정운(金正雲)으로 소개되기도 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요리사로 일한 일본인 후지모토 겐지가 일본 매체에 '김정운'으로 전했는데, 이는 그가 '김정은'을 '김정운'으로 잘못 알아들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 나왔다.
신화통신 등 중국매체에서는 한 때 '은혜 恩'자가 아닌 '금속 은 銀'자가 들어간 김정은(金正銀)으로 표기하기도 했다.
그러나 2010년 9월 28일 노동당 3차 대표자회에서 그에게 '조선인민군 대장' 칭호가 부여된 뒤 일본 교도통신 등의 성함 확인요청에 대한 북한 당국의 답변으로 '김정은(金正恩)'이라는 이름이 공식화됐다.
물론 김 위원장이 공식 등장이전에 '正恩'이라는 이름이었다는 1차 자료가 공개된 적은 없으나, '은혜 恩'자가 들어간 이 이름은 그가 제시한 '인민대중제일주의'와 연결돼 강조된다. 김 위원장은 북한 인민들의 수령으로서 '하늘같은 은정'을 베푸는 존재로 상징화됐다.
김 위원장의 딸 '주애'도 공식 확인된 이름은 아니다. '주애'라는 이름은 미국 농구선수 로드먼이 지난 2013년 북한 방문 기간에 들었다는 것인 만큼 정확하다고는 볼 수 없다.
북한매체들은 '사랑하는 자제분'이나 '존경하는 자제분'으로 표기하면서도 그녀의 이름을 공식적으로 보도한 적은 없다.
후계 내정 단계에 들어간 것으로 평가되는 만큼 일정 시점이 지난 뒤 그녀의 공식 직책과 이름이 공개될 것으로 보인다. 정말 후계자라면 그 이름도 상징성이 높은 글자와 의미가 포함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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