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제공현대자동차 노조가 2026년 임금·단체협약(임단협)을 마무리 지으면서 현대차그룹은 파업과 생산 차질 위기를 가까스로 넘겼다. 하지만 재계와 노동계에서는 갈등이 일시적으로 봉합된 것일 뿐, 그 불씨는 여전히 남아있다는 평가도 적지 않다.
이번 교섭에서는 단순한 임금 의제를 넘어 노란봉투법(노동조합법 개정안) 시행과 피지컬 AI 도입 등 미래 기술 전환에 따른 '고용 주도권 갈등'이 본격화됐으며, 내년부터는 이 '샅바 싸움'이 전면화할 가능성이 커졌다는 것이다.
일단 가결됐지만…내년엔 더 첩첩산중?
1일 CBS노컷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현대차 노사의 올해 임단협 잠정합의안이 노동조합 조합원 찬반투표에서 가결됐다. 투표에는 3만1166명이 참여했고, 이 가운데 1만9183명(61.55%)이 찬성했다. 지난 5월 첫 교섭 후 전면파업까지 치달았다가 111일 만인 지난달 25일 잠정합의안이 나왔고, 전날 가결되면서 올해 임금협상이 마무리됐다.
노조는 이번 교섭에서 정년 연장, 성과급, 해고자 복직, 손해배상·가압류 철회 등을 주요 요구안으로 내세웠다. 회사는 해고자 복직 요구에 완강한 입장을 취했지만, 노조는 이를 지렛대 삼아 임금피크제 적용 완화 등 정년 연장 관련 유리한 결과와 함께 손해배상·가압류 소송 철회를 이끌어냈다.
특히 이번 교섭에서 눈에 띄는 대목은 임금·성과급을 넘어 미래 기술 도입에 따른 고용 문제가 협상 주제였다는 점이다. 현대차 노조는 잠정합의안에 피지컬 AI와 로보틱스 등 미래 기술 도입과 관련해 신사업·신기술 진행 상황을 투명하게 공유하고, 미래 산업 전환에 노사가 공동 대응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이에 대해 노동 전문가들은 이번 협상이 노란봉투법(개정 노동조합법) 시행 이후 노동쟁의의 양상이 어떻게 변화할지 보여주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고 분석한다. 개정 노조법은 △근로조건에 영향을 미치는 사업 경영상의 결정 △근로자 지위 결정에 관한 주장의 불일치 및 사용자의 명백한 단체 협약 위반 등을 노동 쟁의 대상에 포함했는데, 이번에 노조의 요구 범위가 넓어진 배경으로도 작용했다고 보는 것이다.
고용노동부는 지난 2월 해당 쟁의 범위에 대한 해석지침에서 기업의 투자나 합병·분할·매각 등 경영상 결정 자체는 근로조건에 미치는 영향이 추상적·잠재적인 경우 교섭 대상이 되기 어렵다고 봤다. 하지만 해당 결정의 결과로 정리해고나 구조조정에 따른 배치전환 등 근로자의 지위나 근로조건에 실질적·구체적인 변화가 발생하면 단체교섭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경총(한국경영자총협회)을 필두로 재계는 노동조합법상 노동쟁의 정의규정 개정 통해 이익배분 등 고도의 경영상 의사결정을 노동쟁의 대상에서 제외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경영 판단과 노동자의 근로조건 사이의 경계가 모호하기 때문에 노사가 교섭 대상을 놓고 충돌할 여지가 커진다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기도 하다. 특히 생산방식 변화나 자동화처럼 회사로서는 경영 효율화를 위한 결정이지만, 근로자에게는 일자리와 배치전환 문제로 직결되는 사안이 갈등의 핵심으로 떠오를 수 있다.
로봇 도입, 쟁의 대상에 포함되는 경영상 판단인가…"갈등, 이제 시작일 뿐"
연합뉴스실제로 현대차 노조는 올해 합의안에 피지컬 AI와 로보틱스 등 미래 기술 도입과 관련 "향후 신사업 및 신기술 관련 진행 경과를 투명하게 공유하고, 미래 산업 전환에 노사가 공동으로 대응해 나가기로 합의했다"는 문구를 포함시켰다.
이 문구를 토대로 노조가 내년 교섭부터 '합의' 없이는 국내 공장에 로봇 도입을 할 수 없다는 취지의 내용을 관철하려 할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신기술 도입 결정 자체는 회사의 경영 판단에 해당하더라도, 그 과정에서 근로자의 지위나 근로조건에 실질적·구체적인 변화가 발생한다면 교섭 대상이라고 볼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현대차에서는 올해만 생산직 2천명 가량 정년퇴직할 예정이다. 하지만 노사 합의에 따른 신규 채용 규모는 이에 못 미치면서 생산 현장의 인력 구조는 변할 수밖에 없다.
현대차그룹은 2028년부터 미국 조지아주 현대차그룹 메타플랜트 아메리카(HMGMA)에 산업용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를 양산 공정에 투입할 계획이다. 현대차그룹은 로봇 메타플랜트 응용센터(RMAC)에서 실제 생산환경 데이터를 축적하고 있으며, 2028년 HMGMA 양산 배치를 거쳐 2030년 글로벌 확대 적용을 추진하고 있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올해는 (파업 위기를) 넘어가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는 시작일 뿐"이라며 "생산기지 이전 시 노조 동의 여부를 둘러싼 삼성전자 이슈처럼, (현대차그룹도) 내년에는 고용 보장 이슈와 AI·인력 조정 문제 등이 전면에 등장하면 현대차 노조가 본격적으로 싸움을 준비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중노위 원청 사용자성 판정에 하청 리스크도 가중
기술 변화와 정년퇴직에 따른 고용 주도권 다툼이 본격화하는 가운데 원청인 현대차와 하청 노조 간 직접 교섭 가능성까지 열리면서 노사 관계를 둘러싼 불확실성은 더 커지게 됐다.
중앙노동위원회(중노위)가 전날 현대차의 하청 노동자에 대한 사용자성을 일부 인정했다. 다만 생산·구내식당·보안 등에서 산업안전 의제에 한해 사용자성을 인정하고, 판매대리점 카마스터에 대해서는 사용자성을 인정하지 않아 현대차가 모든 하청 노동자의 근로조건을 직접 교섭해야 하는 상황으로 확대된 것은 아니다. (관련 기사: 중노위 "현대차, 하청 산업안전 교섭해야…카마스터는 제외")
앞서 울산지노위는 교섭을 요구한 9개 하청노조 중 구내식당, 보안·경비 등 일부 업종에 대해서만 사용자성을 인정하고 교섭 의제도 '의무실·휴게공간 제공'으로 엄격히 제한했다. 판매대리점 특수고용직인 '카마스터'의 사용자성은 부정했으며, 임금이나 조합활동 등 공통 의제 역시 도급 계약 관계를 이유로 배제했다.
중노위가 초심 판단을 유지하면서 현대차의 하청 노조 직접 교섭 부담은 산업안전 등 실질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영역에서 일부 현실화됐다. 다만 노조 측이 카마스터 사용자성 부정 및 임금 의제 배제 등에 불복해 행정소송을 제기할 경우 원청 사용자성과 교섭 범위를 둘러싼 법적 다툼은 법원으로 넘어가 이어질 전망이다.
영문기사 보기 (View English Artic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