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가 내년 162조3천억원 규모의 미래대응기금을 신설한다.
이 가운데 45조4천억원은 청년·성장동력·지방·교육·인재 분야 사업에 쓰고, 104조4천억원은 여유재원으로 적립한다. 세수 감소나 경기 변동, 예측하지 못한 재정수요 등에 대응할 때 활용하겠다는 구상이다.
정부는 국회 사전 심의·의결을 거치는 만큼 '쌈짓돈'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하지만 국회가 기금운용계획을 의결한 이후 정부가 어느 범위까지 운용계획을 바꿀 수 있는지를 놓고 논란이 예상된다. 특히 세수결손을 보전하기 위한 일반회계 전출에는 일반적인 30% 제한도 적용하지 않는 방안이 추진되고 있다.
162조원 중 104조원은 여유재원…"단년도 예산 한계 보완"
2일 예산당국에 따르면 2027년 미래대응기금 수입안은 162조3천억원이다. 4대 사업계정에 52조9천억원, 총괄계정에 109조4천억원이 배분된다. 사업지출은 45조4천억원이며, 총 104조4천억원은 여유자금으로 적립한다.
재원은 최근 10년 내국세 추세선을 웃도는 추가세수와 지방교육재정교부금 개편에 따른 재원 등이 중심이다. 여기에 초과세수와 잉여재원, 기금 운용수익 등이 더해질 수 있다.
정부가 일반회계가 아닌 기금을 택한 이유는 단년도 예산주의의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서다. 호황기에 늘어난 세수를 한꺼번에 지출하지 않고 적립해뒀다가 세수 감소나 예상 밖 재정수요에 활용하겠다는 것이다.
정부는 이를 재정안정화 기능과 전략적 투자 기능을 동시에 수행하는 '댐'에 비유한다.
조용범 기획예산처 차관은 "일반회계로 돈이 들어오면 단년도에 소진을 해야 한다"며 "재정안정화 장치로써는 일반회계가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기 때문에 댐 기능을 할 수 있는 기금을 만들어야 했다"고 설명했다.
일반회계로는 연도 중 새로운 재정수요가 발생할 경우 추경을 편성해 국회 심의를 받아야 하지만, 기금에 여유자금을 확보해두면 법령이 정한 범위에서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핵심은 30%…세수결손 전출은 제한도 없어
국회 통제 논란의 핵심은 기금 자체를 국회가 심의하느냐가 아니다. 미래대응기금도 개별 사업을 담은 기금운용계획을 국회에 제출해 사전 심의·의결을 받아야 한다.
문제는 그 이후다. 현행 국가재정법은 일반 기금의 경우 주요항목 지출금액의 20%, 금융성 기금은 30% 범위에서 국회 의결 없이 기금운용계획을 변경할 수 있도록 한다. 정부는 미래대응기금에 대해서도 주요항목 지출금액의 30%까지 변경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미래대응기금은 AI와 청년, 지역, 교육·인재 등 정책사업에 재원을 배분하는 사업성 기금이다. 금융성 기금과 같은 30% 변경 특례를 적용할 경우 국회가 당초 계획을 의결한 뒤에도 정부가 일정 범위에서 별도 의결 없이 사업 규모를 조정할 수 있다.
더 큰 쟁점은 세수결손이다. 정부가 마련한 국가재정법 개정안은 일반회계 예산의 세입 부족을 보전하기 위해 미래대응기금에서 일반회계로 전출하는 금액을 30% 제한 대상에서 제외하도록 했다.
즉 세수결손 보전을 위해서는 30%를 넘더라도 기금운용계획을 국회의 사전 의결 없이 변경해 여유재원을 일반회계로 전출할 수 있는 구조다. 대신 정부는 변경 내역을 지체 없이 국회 소관 상임위원회와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 제출하도록 했다.
정부는 사후 통제를 강화한 장치라고 설명하지만, 사전 의결과 사후 보고는 성격이 다르다. 이미 일반회계로 전출된 재원을 국회가 사후적으로 되돌리기 어렵다는 점에서 국회 통제의 실효성을 둘러싼 논쟁이 불가피하다.
100조원 운용·기금 존치 기준은 아직 미정
100조원이 넘는 여유재원의 운용 방식도 아직 구체화되지 않았다. 정부는 별도의 전문 운용기관을 선정해 국고채 3년물 금리인 약 3.8%를 웃도는 수익률을 목표로 운용한다는 구상이다.
다만 운용기관 선정 방식과 구체적인 투자 방식, 목표 수익률에 미달하거나 손실이 발생했을 때 책임을 누가 질지는 확정되지 않았다. 운용수익은 다시 미래대응기금의 여유재원으로 적립한다는 원칙만 제시된 상태다.
기획처 박창환 예산총괄심의관은 "내부적으로는 미래대응기금의 운용이 굉장히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며 "현재 계획은 법이 통과되고 논의해 내년에 확정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기금의 존치 기간과 적정 규모도 정해지지 않았다. 정부는 반도체 경기 사이클과 향후 세수, 투자 성과, 지출 규모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운용하겠다는 입장이다. 존치평가와 성과평가는 기존 기금과 같은 체계를 적용한다는 방침이다.
정부는 추가세수를 모두 지출하면 내년 총지출 증가율이 27%를 넘고, 반대로 전액을 국가채무 상환에 쓰면 국채시장 규모가 급격히 축소될 수 있다는 점을 들어 여유재원 적립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이에 따라 사업 투자와 여유재원 적립, 신규 국채 발행 축소를 병행한다는 설명이다.
결국 미래대응기금의 쟁점은 국회가 통제하느냐가 아니라 국회가 의결한 뒤 정부에 어느 정도의 재정 운용 재량을 허용할 것이냐에 있다.
특히 104조4천억원의 여유재원을 보유한 대규모 사업성 기금에 30% 변경 특례를 적용하고, 세수결손 보전에는 그 제한마저 두지 않는 것이 적절한지를 두고 국회 심사 과정에서 논란이 예상된다.
일각에서는 기금의 재정 운용 재량이 추경 등 국회 심의 절차를 우회하는 통로로 활용되지 않도록 보다 구체적인 제도 설계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석병훈 이화여대 교수는 "기금은 연중 운용계획을 변경할 때 정부의 재량이 일반회계 예산보다 클 수밖에 없다"며 "추경을 대신하는 국회 심의 우회 통로가 될 수 있기 때문에 국회 통제를 어떻게 실질화할지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반도체 경기 호황이 끝난 뒤 미래대응기금의 재원을 어떻게 마련할지 법에 함께 설계해야 한다"며 "기금의 지출 한도를 5년 단위 중기재정계획과 연동하고, 국민성장펀드나 한국투자공사 전략투자계정 등 유사한 목적의 기금·펀드 간 역할을 조정할 컨트롤타워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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