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전력산업 구조개편에 따라 쪼개졌던 발전 공기업 5개사가 25년 만에 다시 하나로 합쳐진다.
분산된 자본과 역량을 한데 모아 재생에너지 투자를 확대하고 탄소중립에 속도를 내겠다는 게 정부의 구상이다. 다만 고용과 임금 등 노동조건 조정부터 통합 발전사의 본사 위치, 민간 발전사와의 경쟁 문제까지 풀어야 할 숙제도 적지 않다.
25년 만에 '통합 발전 공기업' 부활 신호탄
4일 기후에너지환경부에 따르면 발전 5사 통합 방안은 전날 정부가 발표한 '공공기관 기능개혁 추진방안'에 포함됐다. 한국남동발전·한국중부발전·한국서부발전·한국남부발전·한국동서발전 등 5개 발전 공기업을 '한국발전'(가칭)이라는 하나의 법인으로 통합하는 게 핵심이다.
전날 발표에 나선 허장 재정경제부 제2차관은 "급격한 정책환경 변화와 미래수요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고 공공부문의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하겠다"며 "발전 5사를 하나로 통합해 재생에너지 중심의 대전환을 이루겠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발전 5사는 2001년 '전력산업 구조개편 기본계획'에 따라 한국전력의 발전 부문을 쪼개면서 한국수력원자력과 함께 출범했다. 경쟁을 도입해 효율성을 높이고 이후 민영화까지 추진한다는 게 당시 정부의 구상이었다.
하지만 발전사 분할은 민영화 단계로 이어지지 못했다. 2002년 한국남동발전 민영화가 추진되자 노동계가 전력 공공성 훼손 등을 이유로 강하게 반발했다.
노동계 반발과 경기 침체가 겹치면서 민영화 계획은 사실상 중단됐다. 2004년에는 노사정위원회와 산업자원부가 한전의 배전 부문 분할 계획도 접었다. 이후 발전 5사 체제는 20년 넘게 이어져 왔다.
공기업끼리 경쟁한 25년…다시 '규모의 경제'로
정부는 발전사를 쪼개 경쟁시키는 현행 체제가 오히려 비효율을 키웠다고 보고 있다. 5개사를 다시 합쳐 재생에너지 분야에서 '규모의 경제'를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그동안 발전 공기업끼리 경쟁하면서 초기 투자비가 크고 수익 회수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는 재생에너지 분야에는 적극적으로 투자하기 어려웠다는 지적이 제기돼 왔다. 석탄·LNG 등 해외 원료를 각사가 따로 구매하면서 비용 절감에도 한계가 있었다.
이재명 대통령도 지난해 12월 기후부 업무보고에서 "경쟁시키니까 인건비를 줄이려고 해서 (발전 공기업에서) 산업재해가 많이 나고 그러는 것 아니냐"며 분할 경쟁 체제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정부가 통합으로 기대하는 효과 가운데 하나는 투자 여력 확대다. 해상풍력과 수소 등 에너지 사업은 초기 투자비가 막대하고 투자금 회수에도 오랜 시간이 걸린다. 개별 발전사가 조 단위 대형 프로젝트를 독자적으로 추진하기에는 한계가 있었지만, 5개사가 합쳐지면 자금 조달과 대규모 투자에 보다 유리해질 수 있다.
민주노동조합총연맹 공공운수노조 제용순 한국발전산업노조 위원장은 CBS노컷뉴스에 "재생에너지 시장의 90% 이상이 민영화돼 있다"며 "공공성을 회복하기 위해 통합 발전사가 재생에너지 확대 정책을 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고용·본사 위치·시장경쟁…통합까지 '산 넘어 산'
실제 통합까지 넘어야 할 산도 적지 않다. 우선 노동계는 고용보장과 노동조건의 상향평준화를 요구하고 있다.
민주노총은 전날 논평에서 "무엇보다 고용보장과 노동조건의 상향평준화에 관한 구체적인 약속과 실질적인 조치가 함께 마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재 발전 5사는 회사마다 임금과 노동조건 등에 차이가 있다. 통합 과정에서 이를 어떤 기준으로 맞출지가 쟁점이 될 전망이다. 특정 회사 노동자들이 임금 삭감 등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게 노동계의 요구다.
통합 발전사의 본사를 어디에 둘지도 난제다. 현재 발전 5사 본사가 자리 잡은 경남 진주와 부산, 울산, 충남 태안과 보령뿐 아니라 전력 인프라가 밀집한 호남권까지 유치전에 뛰어든 상황이다.
에너지 업계에서는 발전 5사 통합이 정부가 추진하는 전력시장 개방과 충돌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전력 구매자인 한전의 자회사이면서 막대한 자금력을 갖춘 통합 발전사가 시장에서 영향력을 키울 경우 민간 발전사의 진입과 투자를 위축시킬 수 있다는 논리다. 통합 발전사의 시장 지배력을 견제하기 위한 전력감독원 신설 논의가 다시 힘을 받을 가능성도 있다.
반론도 있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전력연맹 남태섭 수석부위원장은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현재 재생에너지 시장에서 발전 5사가 차지하는 비중이 10%도 안 된다"며 "화력 부문에서도 발전 5사의 전력 거래량을 합쳐도 전체의 30%도 안 된다"고 말했다.
이어 "(발전 5사가) 통합된다고 해서 갑자기 불공정한 시장이 조성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오히려 민간 쪽으로 기울어진 시장에서 공공 영역을 늘려야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통합 과정에서 이해관계자들과 논의를 이어갈 방침이다. 기후부는 이날 오후 발전 5사와 노동조합 관계자 등이 참석하는 간담회를 열고 통합 추진 방향과 향후 절차 등을 논의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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