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경남여고 문티아라, 천안 청수고 박믿음. 영천=박종민 기자한국 여자배구의 미래를 짊어질 차세대 유망주들이 격돌한 제37회 CBS배 전국 중·고 배구대회 코트에서 유독 눈길을 사로잡은 두 유망주가 있다.
한 명은 아프리카 케냐에서 태어나 한국 귀화를 준비 중인 천안 청수고 1학년 박믿음(179cm), 또 다른 한 명은 호주에서 태어난 한국·호주 이중국적자로 이미 연령별 대표팀에서 태극마크를 달고 뛴 경남여고 1학년 문티아라(181cm)다.
태어난 곳도, 자라온 환경도 다르지만 두 선수는 닮은 점이 참 많다. 탁월한 피지컬과 탄력을 바탕으로 한 공격수라는 점, '배구 여제' 김연경이 설립한 재단 KYK 파운데이션의 장학생으로 선발돼 잠재력을 공인받았다는 점, 그리고 가슴에 태극마크를 달고 한국 배구를 빛내겠다는 뚜렷한 목표를 품고 있다는 점이다.
3일 경북 영천체육관에서 대회를 마친 두 선수는 코트 안팎에서의 치열한 성장통과 함께 가슴속에 품은 당찬 청사진을 풀어냈다.
경남여고를 대회 준우승으로 이끈 문티아라에게 배구는 가장 큰 행복이다. 그는 "배구는 하면 할수록 정말 재미있다"며 "고등학교에 올라오니 더 다양하고 빠른 플레이를 요구받는데, 이를 완벽히 소화하기 위해 훈련하는 과정 자체가 큰 배움이자 성장통"이라고 웃어 보였다.
이미 U-16 아시아선수권 우승과 U-17 세계선수권 6위를 이끌며 태극마크의 무게를 경험한 문티아라는 한층 성숙해져 있었다. 그는 "대표팀에서는 소외되는 사람 없이 다 같이 으쌰으쌰 하며 서로를 믿고 뛰었다. 유럽 선수들의 큰 키와 파워를 상대하며 블로킹 기술과 상대의 높은 타점을 막아내는 시야를 넓힐 수 있었다"며 "대한민국을 대표해서 경기를 치른다는 것 자체가 남다른 책임감으로 다가왔고, 나라를 대표하는 만큼 무조건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고 회상했다.
청수고를 4강으로 이끈 박믿음에게 이번 대회는 유독 애틋했다. 네 살 때 부모님을 따라 한국에 정착한 그는 초등학교 시절 방과 후 농구를 하다 중학교 시절 교회 목사의 권유로 2023년에야 배구공을 잡은 늦깎이다. 하지만 천부적인 탄력을 앞세워 빠르게 성장했다. 4강 풀세트 접전 끝에 아쉽게 패한 그는 "1세트를 내주고 2세트를 따낼 때 다들 열심히 뛰어줘서 크게 후회는 없지만, 마지막 5세트는 너무 아쉽고 후회스럽다"고 털어놨다.
박믿음에게는 코트 위 실력 외에도 반드시 넘어야 할 산이 있다. 바로 국적 취득이다. 그는 "부모님 중 한 분이 귀화 시험을 통과하면 미성년 자녀도 함께 국적을 얻는 '수반 취득' 제도가 있어 현재 부모님께서 귀화 시험을 열심히 준비하고 계신다"고 설명했다. 귀화 절차가 진행 중이라 전국체전 등 일부 대회에 출전하지 못하는 그는 "중학교 때도, 고등학교에 와서도 CBS배가 내게는 한 해를 마무리하는 마지막 공식 무대였다"며 "전국체전에 나가지 못하는 만큼 이번 대회 코트에서 모든 것을 쏟아붓겠다는 각오로 더 악착같이 뛰었다"고 전했다.
2일 경북 영천시 영천생활체육관에서 열린 제37회 CBS배 전국중고배구대회 18세이하 여자부 준결승전에서 한봄고를 꺾고 결승에 진출한 경남여고 선수들이 기뻐하고 있다. 영천=박종민 기자두 선수를 하나로 묶어주는 든든한 날개는 바로 '배구 여제' 김연경이다. 나란히 김연경 재단 장학생으로 선발된 두 유망주는 김연경의 플레이와 리더십을 마음에 새기며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문티아라는 "믿고 후원해 주시는 만큼 코트에서 그 믿음에 보답해야 한다는 책임감이 크다"며 "김연경 선수는 뛰어난 공격력뿐만 아니라 리베로 못지않은 안정적인 수비 능력까지 갖추셨다. 공수를 완벽하게 해내는 그 다재다능함을 꼭 닮고 싶다"고 눈을 빛냈다.
박믿음 역시 "김연경 선수의 모든 점을 다 닮고 싶다. 어떤 상황에서도 책임감 있게 볼을 때려내고 파이팅과 리더십으로 팀을 이끄는 모습이 정말 멋있다"고 경외감을 표했다. 여기에 아포짓 스파이커로서 V-리그 최고의 외인 거포인 실바(GS칼텍스)와 모마(한국도로공사)를 롤모델로 꼽으며 "실바 선수처럼 볼이 어떻게 올라오든 악착같이 때려내는 책임감 있는 공격수가 되고 싶다"고 덧붙였다.
코트는 국경과 피부색을 가리지 않는다. 이미 태극마크를 달고 세계를 경험한 문티아라와, 당당히 태극마크를 달기 위해 구슬땀을 흘리는 박믿음의 최종 종착지는 결국 같은 곳을 가리키고 있다.
박믿음은 "V-리그에서는 외국인 선수들이 주로 아포짓 스파이커를 맡지만, 국가대표팀에서는 한국 선수들만이 그 자리를 지켜야 한다. 더 열심히 훈련하고 성장해서 태극마크를 달고 국가대표 아포짓 스파이커로 당당히 코트에 서고 싶다"고 힘주어 말했다. 문티아라 역시 "CBS배를 통해 한 해 동안 갈고닦은 모습을 쏟아부었듯, 앞으로도 나의 모든 것을 코트 위에서 아낌없이 증명하며 더 높이 날아오르겠다"고 당찬 포부를 밝혔다.
다문화라는 특별한 배경을 넘어, 오직 배구를 향한 순수한 열정으로 뭉친 두 1학년 거포의 등장은 한국 여자배구의 코트를 그 어느 때보다 풍성하고 뜨겁게 달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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