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경북 영천시 영천생활체육관에서 열린 제37회 CBS배 전국중고배구대회 18세이하 여자부 준결승 중앙여고와 천안청수고의 경기에서 중앙여고 박서윤(오른쪽)과 김미주가 수비하고 있다. 영천=박종민 기자한국 여자배구가 17세 이하 무대에서 맹활약한 손서연(선명여고)에게 온 신경을 집중하는 사이, 한 살 터울 언니들인 18세 이하 대표팀 주축들이 코트 안팎에서 묵직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특정 유망주 1인에게만 쏠린 스포트라이트를 넘어 팀 스포츠 배구의 본질인 '원팀(One Team)'을 되돌아봐야 한다는 현장의 목소리가 코트 안팎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지난 3일 경북 영천생활체육관에서 막을 내린 제37회 CBS배 전국 중·고 배구대회는 U-17 세계선수권 득점 2위 손서연의 불참 속에서도 한 치 양보 없는 명승부가 펼쳐졌다.
주인공은 손서연의 화려한 스포트라이트에 가려져 있던 U-18 세대였다. 이들은 지난 7월 2026 아시아배구연맹(AVC) U-18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 준우승을 차지하며 2027년 U-19 세계선수권 티켓을 당당히 손에 쥐고 돌아온 주역들이다.
대회 현장에서 만난 U-18 대표팀의 핵심 아웃사이드 히터 신은안(한봄고)은 동생 세대를 향한 관심에 기죽지 않았다. "동생 세대가 주목받아 상대적으로 가려진 느낌이 들지 않느냐"는 질문에 신은안은 "우리 팀에는 194cm 장신 미들블로커 박서윤(중앙여고) 같은 뛰어난 친구도 있다"며 "무엇보다 팀워크 면에서는 우리가 훨씬 더 끈끈하고 앞선다고 자부한다"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이번 CBS배에서 중앙여고를 여고부 우승으로 이끌며 최우수선수(MVP)로 선정된 박서윤의 각오도 남달랐다. 고교 2학년의 나이에 이미 194cm에 도달해 압도적인 높이를 증명한 박서윤은 "우리 선수들도 다들 실력이 뛰어나고 매 순간 열정적으로 땀 흘리고 있다"며 "동생들보다 국제무대에서 더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도록 노력할 테니 우리에게도 많은 관심과 응원을 보내주시면 좋겠다"고 말했다.
2일 경북 영천시 영천생활체육관에서 열린 제37회 CBS배 전국중고배구대회에 출전한 한봄고 신은안. 영천=박종민 기자코트 밖 지도자들도 특정 선수 한 명에게만 과도하게 쏠린 영웅주의가 한국 배구 전체의 생태계를 갉아먹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한국 여자배구의 전설인 장윤희 중앙여고 감독은 "손서연 선수가 잘한 것은 맞지만 배구는 절대 혼자 하는 스포츠가 아니다"라며 "누군가 밑에서 공을 받아주고 띄워줬기 때문에 마지막에 득점을 내는 선수가 빛나는 것"이라고 짚었다.
장 감독은 이어 "한 선수의 이름 석 자에 가려져 동료들이 '나는 아닌가 보다'라며 의욕을 잃게 되면 결국 팀 배구의 연결고리가 끊어진다"며 "우리 팀 박서윤 등 좋은 유망주들에게도 '옆에서 받쳐주는 동료가 있기에 네가 에이스로 설 수 있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코트 뒤에서 묵묵히 희생하는 주변 선수들을 함께 빛내줄 때 한국 배구가 더 탄탄해진다"고 일침을 놓았다.
U-17 대표팀에서 손서연을 지휘했던 이승여 금천중 감독도 균형 잡힌 정책과 시선의 필요성을 거들었다. 이 감독은 "손서연 외에도 연령별 무대에서 기량이 뛰어난 유망주들이 코트에 정말 많다"며 "손서연뿐만 아니라 다른 선수들도 조금 더 큰 꿈을 갖고 성장할 수 있도록 고른 관심과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고 주문했다.
신은안의 공수 밸런스와 박서윤의 높이를 장착한 U-18 세대의 시선은 이제 내년 세계선수권 무대를 정조준하고 있다. 배구는 코트 위 6명이 유기적으로 톱니바퀴처럼 맞물려야 비로소 완성되는 스포츠다. 한 명의 걸출한 스타에게 모든 것을 의탁하던 시대를 지나, 코트 위 모든 땀방울의 가치를 존중하는 '원팀'을 구축해야만 한국 여자배구가 기나긴 암흑기를 뚫고 비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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