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서연. FIVB 홈페이지 캡처한국 여자배구가 2025 국제배구연맹(FIVB) 발리볼네이션스리그(VNL) 최하위로 밀려나 4년 만에 강등된 뒤 김연경 은퇴 공백을 메우지 못한 채 침체를 거듭하던 코트에 '리틀 김연경' 손서연(선명여고)의 등장은 가뭄 속 단비였다.
손서연은 지난해 U-16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 주장을 맡아 45년 만의 우승을 이끈 데 이어, 지난 8월 2026 FIVB U-17 세계선수권대회에서도 179점을 올리며 대회 득점 공동 2위로 한국의 6위 안착을 주도했다.
그러나 지난 3일 경북 영천생활체육관에서 끝난 제37회 CBS배 전국 중·고 배구대회 현장에서 마주한 지도자들의 시선은 환호보다 위기감에 가까웠다. 대형 유망주 1인에게 쏠린 과열된 조명이 한국 배구의 뿌리인 학교 체육의 붕괴 현실을 가리는 '착시'를 낳고 있다는 지적이었다.
소속팀 선명여고가 한중일 주니어 종합경기대회 출전차 일본으로 떠나 손서연이 결장했음에도, 화제의 주인공이 자리를 비운 코트에서는 스타 한 명에 기대어 연명하는 한국 배구의 구조적 한계를 향한 성토가 터져 나왔다.
중앙여고 장윤희 감독이 선수에게 지시를 내리고 있다. 노컷TV팀 채승옥지도자들은 손서연의 기량을 높이 평가하면서도 개인을 향한 과도한 찬사가 장기적인 성장을 가로막을 수 있다고 짚었다. 손서연의 경해여중 시절 은사인 김현정 감독은 "원래 미들 블로커로 뛰다 중학교 2학년 때 아웃사이드 히터로 포지션을 바꾸는 과정의 버거움을 남다른 집념과 승부욕으로 극복한 노력형 선수"라고 돌아봤다.
이어 김 감독은 "서연이에게도 '제2의 김연경을 보여주려 하지 말고 손서연 너만의 배구를 해라. 주변의 관심은 복이니 감사히 여기되 인성과 태도가 바른 선수가 돼야 실력도 따라온다'고 늘 조언한다"고 전했다.
U-17 대표팀을 이끌었던 이승여 금천중 감독 역시 냉정한 성장 과제를 꼽았다. 이 감독은 "성인 대표팀 선수들도 서연이가 볼을 때리는 임팩트 순간만큼은 프로와 견줘도 손색없다고 인정할 정도로 파워가 뛰어나다"고 칭찬했다. 실제로 프로 구단 사령탑들 사이에서도 "공격력만큼은 지금 당장 V-리그 코트에 투입돼도 통할 수준"이라는 평가가 나올 정도다.
그러면서도 "하지만 아웃사이드 히터는 공격만 해서는 안 된다"며 "때리는 것은 조금만 노력해도 되지만 받는 것은 수없이 반복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잘 받아야 때릴 수 있는 포지션인 만큼 리시브 보완이 우선"이라고 강조했다. 김현정 감독 또한 "공격력이 뛰어나다 보니 상대의 집중 목적타 서브를 견뎌내는 것도 본인이 감내하고 즐겨야 할 몫"이라고 거들었다.
이승여 감독과 금천중 선수들. 김조휘 기자현장 사령탑들이 진정으로 경계하는 대목은 척박한 학교 체육 시스템을 방치한 채 스타 한 명의 요행에 기대려는 배구계의 구조적 나태함이다. 1990년대 한국 여자배구의 전설로 코트를 호령했던 장윤희 중앙여고 감독은 "일본은 수만 개 학교 팀에서 대표 선수를 발굴하지만, 한국은 여고부 배구팀이 전국을 통틀어 15개 안팎에 불과하다"고 꼬집었다.
장 감독은 "이 척박한 저변에서도 청소년 대표팀이 세계 무대 결선에 오르는 것은 지도자와 선수들이 피땀을 쏟고 있다는 증거"라면서도 "하지만 오후 수업까지 전부 다 듣고 운동을 병행해서는 절대적인 훈련량을 감당할 수 없다"고 토로했다.
이승여 감독도 현행 제도의 맹점을 비판했다. 이 감독은 "요즘 학생 선수들은 예전에 비해 신체 조건은 월등히 좋아졌지만, 최저학력제나 수업 일수 규제 등으로 인해 절대적인 훈련량이 턱없이 부족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운동이 목표인 선수들에게 훈련 시간 부족과 병원 치료 제약 등은 큰 걸림돌"이라며 "운동에 전념할 수 있는 환경과 함께 멘탈을 다잡아줄 시스템적 개선이 절실하다"고 호소했다.
선수들 격려하는 경해여중 김현정 감독. 김조휘 기자김현정 감독은 저변 확대와 협회의 장기적 투자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김 감독은 "선수들이 지루하고 힘든 기본기 훈련을 끈기 있게 버텨내기 어려운 환경이지만, 현장 지도자들도 끊임없이 기본기를 다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현장 분위기를 전했다.
그러면서 "키 큰 유망주들을 조기에 발굴해 엘리트 체육으로 유입시키고, 방학 기간 등을 활용한 협회 차원의 집중 캠프와 지원이 지속적으로 뒷받침된다면 한국 여자배구의 미래는 결코 어둡지 않다"고 덧붙였다.
결국 한국 여자배구가 4년 만의 VNL 강등이라는 수렁을 벗어나기 위해 필요한 것은 1인 영웅주의에 기댄 반짝 환호가 아니다. 전국 15개 남짓한 여고부 팀들이 고사하지 않도록 제도를 뜯어고치고, 코트 뒤에서 묵묵히 리시브를 받아내는 동료 유망주들까지 품어줄 수 있는 훈련 환경을 복원할 때 비로소 진정한 세대교체의 문이 열린다는 것이 현장의 준엄한 일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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