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생성 이미지올해 가계빚이 사상 처음 2000조원을 넘었다. 상반기엔 신용대출이 이례적으로 튀어 올랐고, 그 열기가 가라앉자 이번엔 주택담보대출이 다시 꿈틀댔다. 주담대와 신용대출이 동반 급증하며 가계부채는 좀처럼 식을 기미가 없다. 그 배경에는
지난 15년, 오락가락한 정부 정책과 그때마다 요동친 자산가격을 지켜보며 "빚을 내야 기회를 잡는다"는 감각을 체득한 사람들이 있다.
주담대와 신용대출 '동반 급증'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해 2분기 말 가계신용 잔액은 2019조8천억원이다. 전분기 증가액(14조8천억원)보다 11조1천억원 늘어난 것으로, 증가폭이 약 1.7배 확대됐다. 가계신용 증가세를 이끈 건 가계대출이다. 1891조3천억원으로, 24조9천억원 증가했다. 증가분의 두 축은 '주택관련대출'과 신용대출을 포함한 '기타대출'이다. 2분기 주택관련대출은 12조2천억원, 기타대출은 12조8천억원 늘며 비슷한 규모로 불었다.
특히 오랫동안 숨죽였던 신용대출의 반등이 눈에 띈다. 신용대출을 포함한 기타대출은 2024년 1분기부터 2025년 1분기까지 5개 분기 내리 줄었다(-13조2천억원, -2조7천억원, -2조7천억원, -2조6천억원, -4조9천억원). 그러다 2025년 2분기 8조4천억원 증가로 반전한 뒤 증가세를 이어가, 올해 2분기엔 12조8천억원까지 뛰었다. 이는 한은이 비교치로 제시한 2021년 3분기(13조7천억원) 이후 4년 9개월 만에 가장 큰 폭이다.
증시가 뜨거웠던 상반기가 지나가자, 이번엔 주담대가 꿈틀대기 시작했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8월 금융시장 동향'에 따르면 신용대출을 포함한 기타대출은 244조9천억원으로, 6천억원 줄며 감소 전환했다. 개인 주식투자가 둔화하고 은행들이 신용대출 관리를 강화한 영향이다. 대신 주담대가 4조원이나 늘면서 증가폭을 확대했다. 수도권 주택 거래와 입주물량 증가에 힘입어 7월(3조5천억원)보다 증가분을 늘렸다.
상반기엔 주담대와 신용대출 두 축이 동반 상승했고, 8월엔 신용대출이 주춤한 자리에 주담대가 자리했다.
어느 한쪽을 조이면 다른 쪽이 그 틈을 메우거나, 여건이 맞으면 둘 다 함께 불어나는 흐름이 반복되고 있는 셈이다. 2분기 석 달간 급격히 불어난 신용대출과 신용융자가 남긴 손실과 상환 부담은 이미 발생한 뒤이기도 하다.
"빚내는 법, 우리는 이미 배웠다"
올해 상반기에 신용대출이 이렇게 튄 데는 두 가지 상황이 겹쳐 있다. 하나는 증시다. 2분기까지 이어진 주식시장 호조가 예금은행 신용대출과 증권사 신용공여 증가로 이어졌다. 다른 하나는 주담대 규제다. 정부가 LTV·DSR 등으로 주택담보대출 문턱을 계속 높여온 사이, 상대적으로 규제가 헐거운 신용대출이 그 틈을 파고들었다.
집을 담보로 빌리는 길이 좁아지자, 증시가 오르는 걸 지켜보던 사람들이 신용대출이라는 다른 문으로 몰린 셈이다.
밑바닥엔 "빚을 내서 기회를 잡아야 한다"는 생각이 깔려 있다. 정책이 계속 바뀌는 상황에서도 자산가격이 오르는 걸 반복해서 지켜보면서 학습했기 때문이다.
'빚의 학습'은 과거 정부로 거슬러올라간다. 박근혜 정부 때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이끈 이른바 '초이노믹스'는 LTV·DTI 규제 완화와 기준금리 인하를 앞세워 부동산 경기를 띄우려 했다. "빚내서 집사라"는 최 부총리의 어록이 상징하듯, 정부가 직접 대출을 풀어 등을 떠밀었다. 이때 정부 말을 듣고 대출을 낀 사람들 중 상당수가 이후 자산 가격 급등의 수혜를 봤다.
그런데 정책은 곧 정반대로 돌아섰다. 가계부채가 급증하자 이후 정부는 대출 규제를 강화했다. 정책이 오락가락하는 사이에도 자산가격은 오르내림 없이 계속 우상향했다. 그 결과
2021년엔 정부가 등을 떠밀지 않았는데도 대중이 스스로 뛰어들었다. 코로나19發 제로금리와 자산가격 급등이 맞물리면서 '영끌'과 '빚투'라는 말이 유행어처럼 번졌고,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98.7%로 역대 최고치를 찍었다.
정부의 신호를 따라 배운 경험(2015년)과, 정부와 무관하게 스스로 판단해 얻은 경험(2021년)이 결과적으로 같은 교훈으로 수렴한 셈이다.
"정책이 어느 방향이든, 결국 자산을 가진 쪽이 이긴다"는 학습이었다. 이 학습을 가장 최근에, 가장 가까이서 지켜본 게 지금의 2030세대다.
자산 상승만 본 세대…'빚의 악순환' 우려

하지만 전문가들이 우려하는 건 이 학습의 다음 단계다. 이번엔 그 경험이 자산 증식이 아니라, 반대로 손실로 돌아올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번에 튄 신용대출 자금의 상당 부분이 2030세대의 '빚투'로 흘러갔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추정이다.
이윤수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
신용대출 증가가 주식 투자자에 집중돼 있고, 대출 시점과 증시 상승기가 맞물려 있는 만큼 이미 원금 손실을 본 차주가 상당수일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그는 "은행 건전성 문제 이전에,
대출이 집중된 사람들의 소비 여력이 위축되는 걸 먼저 걱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2015년과 2021년엔 빚을 낸 쪽이 자산을 불렸다면, 이번엔 반대로 빚을 낸 쪽이 손실을 떠안고 지갑을 닫게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우석진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여기서 더 나아가 악순환을 짚었다. "2030세대가 레버리지 상품에 물리면 타격이 훨씬 크다"며 "손실을 만회하려는 방법도 결국 또 대출"이라고 말했다.
한 번 손실을 본 뒤에도 학습된 감각 때문에 다시 빚으로 손실을 메우려 하고, 그 과정에서 빚이 빚을 부르는 구조가 반복될 수 있다는 것이다.
정책 방식 자체에 대해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나왔다. 이윤수 교수는 "LTV로 주담대를 묶으면 신용대출로 우회해 오히려 이자 부담만 커지는 게 코로나 시기에도 벌어졌던 일"이라며, 규제로 한쪽 문을 막으면 다른 쪽 문으로 돈이 새는 구조적 한계를 지적했다. 우석진 교수도 "정상적인 대출 통로를 막아놓으니 다른 데서 빌릴 수밖에 없다"며 "당국이 의도한 대로 시장이 움직이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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