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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봉투법 첫 원·하청 협약 뜯어보니…원청은 '요청 시 협조'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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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부 "개정 노조법 시행 후 첫 타결"…현대제철·자회사 4곳 합의
안전 개선 주체는 대부분 자회사…원청 직접 이행조치는 빠져
정작 사내하청은 교섭권 확보 9개월 만에 '출발선'…전체 교섭 개시율 22.4%

10일 현대제철 당진공장에서 원청기업 현대제철과 4개 자회사인 현대ITC, 현대IEC, 현대IMC, 현대ISC 노사가 단체협약에 서명한 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10일 현대제철 당진공장에서 원청기업 현대제철과 4개 자회사인 현대ITC, 현대IEC, 현대IMC, 현대ISC 노사가 단체협약에 서명한 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른바 '노란봉투법'(개정 노동조합법) 시행 6개월 만에 첫 원·하청 단체협약이 나왔지만, 노동계에서는 '반쪽짜리 첫 사례'라는 평가가 나온다.

협약의 하청 쪽 당사자가 사내 하청업체가 아니라 원청 현대제철이 설립한 자회사인 데다, 합의문에 담긴 원청의 역할도 '요청 시 협조' 수준에 그쳤기 때문이다.

11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원청 현대제철과 현대ITC(당진)·현대IEC(순천)·현대IMC(포항)·현대ISC(인천) 등 4개 자회사 노사는 전날 현대제철 당진공장에서 '2026년 원·하청 교섭 합의서'에 서명했다.
 
노동부는 "개정 노조법 시행 이후 원·하청 노사가 교섭을 통해 타결한 첫 사례"라고 평가했다. 합의의 핵심은 자회사 산업안전·보건 관리체계 개선과 중장기 개선방안(로드맵) 수립이다.

하지만 노동계의 반응은 싸늘했다. 노란봉투법 개정 운동을 벌여온 시민단체 '손잡고'(손배가압류를잡자!손에손을잡고)는 곧바로 "현대제철 '원하청교섭'은 결실맺지 않았다"는 논평을 내고 노동부의 평가를 정면 반박했다.

손잡고는 "노동부의 성급한 자화자찬"이라며 "수십 년 현장에서 원청 교섭과 불법파견, 부당노동행위, 산업안전 피해, 200억원 손해배상 속에서 투쟁해 온 현대제철 하청노동자들에게는 '비수'일 뿐"이라고 비판했다.

합의문 뜯어보니…주어는 '자회사', 원청은 '협조'

실제 합의서를 보면 산업안전·보건 개선의 주체는 대부분 원청이 아닌 자회사로 돼 있다.

합의서에는 "각 자회사는 주체적으로 산업안전·보건 관리체계의 지속적 개선 방안을 수립하여 노사 간 정기적인 협의 및 점검을 실시한다"고 명시됐다. 중장기 로드맵 역시 "각 자회사가 사업 특성, 경영 상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자율적으로 수립한다"고 돼 있다.

로드맵의 구체적인 내용과 시행 시기, 이행 수준도 각 자회사 노사 간 협의를 통해 결정하도록 했다.

반면 원청 현대제철의 역할은 제한적이다. 합의서에서 현대제철의 역할이 명시된 두 대목 모두 "자회사의 요청 시", "자회사의 자율성과 독립성을 존중하는 범위 내에서" 필요한 방안에 협조하도록 했다.

원청과 자회사, 노조가 참여하는 공동 안전협의체를 분기마다 한 차례 운영하기로 했지만, 안전시설 확충이나 투자 규모 등 원청이 직접 이행해야 할 구체적인 조치는 합의문에 담기지 않았다.

한 노동계 관계자는 "교섭을 하면 조합원들의 처우가 실질적으로 바뀌는 것이 있어야 하는데, 분기에 한 번 회의를 한다는 것이 어떻게 원청 교섭의 결과가 될 수 있느냐"며 "이 정도 로드맵 수준이라면 교섭을 할 필요가 없었다고 본다"고 말했다.

정작 사내하청은 아직 교섭 전…'반쪽짜리 첫 사례' 논란

노동계가 문제 삼는 또 다른 지점은 이번 합의의 당사자다. 노란봉투법 개정 전부터 현대제철을 상대로 교섭권을 확보해 온 사내 하청 노동자들은 이번 '첫 원·하청 교섭 타결'에서 빠졌다.

금속노조 비정규직지회는 지난해 12월 노동위원회를 통해 원청 현대제철을 상대로 한 교섭권과 쟁의권을 이미 확보했다.

법원 판결과 노동위 판정을 통해 원청의 사용자성을 다퉈 온 사내 하청 노동자들은 노란봉투법 개정 논의를 촉발한 핵심 당사자이기도 하다.

노동계 일각에서는 자회사 노사의 교섭 타결 자체는 의미가 있지만, 정작 개정법이 겨냥했던 사내 하청 노동자가 빠진 만큼 '첫 결실'로 평가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대제철의 사내 하청 문제도 여전히 진행 중이다. 노동부 천안지청은 2021년 협력업체 노동자 749명에 이어 지난 1월 1213명에 대해 현대제철에 직접고용 시정지시를 내렸다.

비정규직지회의 원청 교섭도 이제 다시 출발선에 섰다. 금속노조는 지난 8일 교섭단위 분리 이후 교섭요구서를 다시 제출했고, 같은 날 사측이 교섭요구 사실을 공고했다. 교섭권을 확보한 지 9개월 만에 상견례와 첫 교섭 일정을 논의하는 단계에 들어선 것이다.

자회사와는 4차례 만에 타결…왜 달랐나

교섭 속도가 갈린 배경에 대해 노동부는 '교섭 구조의 차이'를 들었다. 노동위원회는 현대제철의 교섭단위를 자회사 4개 노조와 사내 협력업체 소속 노조로 분리했다. 자회사 노조의 경우 지난 8월 상견례를 시작한 뒤 불과 네 차례 교섭 만에 합의에 도달했다.

노동부 관계자는 "자회사 교섭은 하청사인 자회사 사측의 교섭 참여에 노조가 동의하면서 원청·하청사·하청노조 3자가 함께 논의하는 구조가 만들어져 비교적 수월하게 풀렸다"고 설명했다. 교섭 의제도 노동위에서 현대제철의 사용자성이 인정된 산업안전 분야로 좁혔다.

반면 금속노조 비정규직지회는 하청업체의 교섭 참여에 반대하고 있고, 산업안전 이외의 의제도 원청과 교섭하겠다는 입장이어서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게 노동부 설명이다.

금속노조 쪽 설명은 다르다. 원청 교섭을 요구하는 사업장들이 이미 공동 요구안을 마련했고 여기에 사업장별 요구를 추가하는 구조여서, 의제가 정리되지 않아 교섭이 지연되고 있다는 설명은 사실과 다르다는 입장이다.

노란봉투법 시행 6개월…원청 교섭 개시는 22%

이번 합의를 둘러싼 논란은 노란봉투법 시행 이후 원·하청 교섭이 예상보다 더디게 진행되는 상황과도 맞물려 있다.

국민의힘 김소희 의원이 노동부에서 받은 자료를 보면 지난 8월 14일 기준 하청노조로부터 교섭 요구를 받은 원청 사업장 456곳 가운데 실제 교섭을 시작한 곳은 102곳으로 전체의 22.4%에 그쳤다.

한화오션은 중앙노동위원회 재심에서 사용자성이 인정되자 지난 7월 행정소송과 집행정지 신청을 제기했다.

노동계에서는 교섭창구 단일화와 교섭단위 분리 등 절차가 오히려 원청과의 교섭을 지연시키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한다. 법령이나 조례로 근로조건이 정해지는 공공부문을 사실상 원청 교섭 대상에서 제외한 노동부 해석지침을 둘러싼 논란도 이어지고 있다.

노동부는 일단 사용자성이 인정된 의제부터 교섭을 시작해 범위를 단계적으로 넓혀야 한다는 입장이다.

노동부 관계자는 "의제에 '사용자성이 있느냐 없느냐'를 두고 먼저 싸우기보다는 인정된 의제부터 논의하고, 나머지 의제는 협의하면서 함께 풀어나가야 한다고 지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이번 현대제철 사례가 다른 사업장의 모델이 될 수 있느냐는 질문에는 "회사마다 여건과 구조가 상이해 모델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며 선을 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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