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생성 이미지1972년 이른바 '간첩 사건'에 연루돼 유죄 판결을 받은 고(故) 성기호씨가 54년 만에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아버지를 대신해 재심을 청구한 아들 성재윤(가명·57)씨는 이제 무죄 판결문을 들고 아버지를 다시 만날 준비를 하고 있다.
아들 성씨는 지난 9일 서울고법에서 열린 재심 선고 직후 CBS노컷뉴스와 만나 "이제 잘 마무리된 것 같다"며 "가족들이 과거의 일에서, 트라우마에서 벗어나 일상으로 돌아가면 좋겠다"고 말했다.
'간첩 사건'에 엮여 끌려간 교사…영장 없이 불법구금
당시 교사였던 성기호씨의 삶이 뒤집힌 건 1972년이었다. 육군보안사령부(보안사)는 당시 간첩 혐의로 검거한 이모씨를 수사하고 있었다. 보안사가 작성한 당시 '인지 동행보고서'에는 성씨의 범죄 혐의를 인지해 연행한다는 "검거한 간첩 이석 수사 중" 내용이 담겼다.
성씨는 반국가단체를 이롭게 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고도 이를 수사기관이나 정보기관에 알리지 않았다는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졌다.
성씨는 1심에서 징역 1년 6개월과 공무원이 될 자격 등을 제한하는 자격정지 1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이듬해 항소심은 같은 형을 선고하면서 징역형의 집행을 5년간 유예했고, 대법원에서 그대로 확정됐다.
그러나 성씨는 당시 재판 과정에서부터 수사 과정의 불법성을 주장했다. 재심 개시 결정문에 따르면 성씨는 1972년 10월 작성한 항소이유서에서 "같은 해 2월 22일 영장 없이 체포돼 이튿날 서울로 압송된 뒤 3월 27일까지 33일간 불법구금됐다"고 적었다.
당시 수사기록을 둘러싼 의문도 재심 과정에서 제기됐다. 보안사 기록상 성씨를 비롯한 사건 관련자들은 1972년 3월 22일 연행된 것으로 돼 있는데, 같은 날 다수의 관련자에 대한 진술서와 피의자신문조서 등이 작성된 것으로 나타났다.
보안사 기록대로라면 여러 명을 하루 만에 연행해 조사하고 진술서와 피의자신문조서 작성까지 끝낸 셈이다. 변호인 측은 이처럼 실제 수사 경위와 맞지 않는 기록을 토대로 작성된 조서를 유죄의 증거로 삼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50여 년 뒤 서울고법은 성씨가 적어도 1972년 3월 22일부터 구속영장이 집행된 같은 달 27일까지 5일간 불법구금됐다고 판단해 재심 개시를 결정했다. 법원은 당시 수사기록과 성씨의 항소이유서 등을 종합하면 3월 22일 이전부터 불법구금됐을 가능성도 농후하다고 봤다.
재심에서 검찰은 무죄를 구형했다. 서울고법은 지난 9일 성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선고 과정에서 "과거 재판이 위법하게 수집된 증거를 토대로 이뤄졌고 공소사실을 인정할 만한 근거가 없다"는 취지로 설명했다.
"그냥 지나간 일로 해야 무섭지 않은 거죠"…가족에 남은 상처
아들 재윤씨가 아버지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제대로 알게 된 것은 한참 뒤였다. 사건 당시 세 살이었던 그는 "아버지에게 안 좋은 일이 있었다는 정도만 어렴풋이 알았다"며 대학에 들어간 뒤에야 사건의 구체적인 내용을 알게 됐다고 했다.
가족에게 사건은 좀처럼 입 밖으로 꺼낼 수 없는 일이었다. 어머니는 보관하고 있던 당시 사건 기록 일부를 이사 과정에서 태워버리기도 했다.
성씨는 "사람이 살면서 툭툭 이야기가 나올 때는 있었겠지만, 밥상 위에 올려놓고 '내가 이래서 이렇게 됐다'는 식의 이야기는 절대 하지 않았다"고 회상했다.
"그냥 지나간 일로 해야 (국가 권력이) 무섭지 않은 거죠."
가족이 그토록 오랫동안 침묵했던 이유를 묻자 성씨는 이렇게 답했다. 그 두려움은 가족의 삶에도 흔적을 남겼다. 성씨는 할머니가 사건 이후에도 살던 곳을 떠나려 하지 않았다고 기억했다. 이사를 가면 마치 도망가는 것처럼 보여 다시 '빨갱이'라는 손가락질을 받을 수 있다는 걱정 때문이었다고 한다.
아버지의 삶 역시 이전으로 완전히 돌아가지는 못했다. 아버지는 사건 이후 곧바로 교단에 복귀하지 못한 채 교재를 판매하거나 학원 강사로 일했다. 아들 성씨는 이후에도 아버지에게 감시와 미행이 따라붙었다고 기억했다. 아버지가 대중교통을 이용하지 않고 주로 택시를 타고 다닌 것도 미행을 피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국가 시스템에 남은 흔적이 누군가의 발목 잡지 않게"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지 30여 년이 지나 사건을 다시 꺼낸 사람은 아들 성씨였다. 성씨는 재심을 청구한 이유에 대해 "한번 털고 가야 된다는 생각이 있었다"며 "한번 정리를 해야 했다"고 말했다.
재심을 준비하면서 아내와 함께 국가기록원과 법원 등에 남아 있는 기록을 찾아 나섰다. 오래된 판결문과 수사기록을 모으고 내용을 하나씩 정리했다. 그 과정에서 자신이 어릴 때는 알지 못했던 아버지의 사건을 다시 들여다보게 됐다. 그리고 54년 만에 아버지에게 무죄가 선고됐다.
성씨는 자신과 같은 일을 겪고도 아직 재심을 청구하지 못하는 피해자와 가족들이 적지 않다고 했다. 사건 이야기를 꺼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떨리고 무섭다"며 과거를 다시 마주하기를 꺼리는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그럼에도 오래된 국가폭력 사건을 하나씩 바로잡는 일이 필요하다고 성씨는 강조했다.
"이런 사건들은 계속 정리를 해줘야 해요. 그래야 국가 시스템에 남아 있는 흔적들이 다시 누군가의 발목을 잡지 않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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