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이미지 제공코로나19가 한창이던 때도 매년 올랐던 건강보험료율이 최근 4년 사이 세 차례나 동결됐다. 고물가 속 가계 부담을 고려한 결정이지만 건강보험 재정의 사정은 녹록지 않다.
고령화로 의료비 지출은 빠르게 늘고 정부는 중증·희귀난치질환자를 중심으로 보장 확대도 추진하고 있다. 국회예산정책처는 현 추세가 이어질 경우 건강보험 누적 준비금이 2029년 소진될 것으로 내다봤다.
보험료는 묶고 보장은 늘리는 상황에서 결국 남는 문제는 재원이다. 보험료를 더 걷을지, 세금으로 정부지원을 늘릴지, 의료비 지출을 줄일지를 둘러싼 선택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코로나 때도 안 멈춘 건보료 인상, 4년 새 세 번째 동결
이형훈 보건복지부 2차관이 8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2027년도 건강보험료율 7.19% '동결' 등을 내용으로 한 제15차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 결과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13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27년도 직장가입자 건강보험료율은 올해와 같은 7.19%로 동결됐다. 지역가입자의 재산보험료 부과점수당 금액도 211.5원으로 유지된다. 복지부는 지난 8일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를 열어 이같이 결정했다.
건강보험료율 동결은 2009년과 2017년, 2024년, 2025년에 이어 역대 다섯 번째다. 2024년과 2025년 7.09%로 2년 연속 동결된 보험료율은 올해 1.48% 인상돼 7.19%가 됐지만 1년 만에 다시 묶였다. 코로나19 상황에서도 매년 올랐던 건강보험료율이 최근 4년 사이 세 차례 동결되는 이례적인 흐름이다.
건강보험료율 인상은 가입자의 가계 부담으로 직결된다. 정부로서는 재정 안정에 필요한 수입과 고물가 속 국민 부담을 함께 고려해야 하는 사안이다.
일각에서는 최근 이재명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 하락 등 정치적 상황이 보험료율 인상에 부담으로 작용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 복지부는 지난 7월 말 월급 외 소득에 대한 보험료 부과를 확대하는 내용의 개편안을 심의하려다 하루 전 돌연 철회하기도 했다.
정부는 보험료율을 올리지 않아도 내년도 건강보험 수입이 늘어날 수 있다는 판단이 이번 동결의 배경이 됐다고 설명한다. 최근 5년 연속 건강보험 당기수지가 흑자를 기록했고, 지난해 말 누적 준비금도 30조2천억원으로 약 3.5개월분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이다.
내년도 정부지원도 올해보다 약 1조1천억원 늘어난다. 반도체산업 호황 등으로 기업 실적과 근로자 임금·성과급이 증가하면서 보험료 수입이 약 3조8천억원 더 들어올 것이란 전망도 반영됐다.
다만 건강보험 재정의 여유는 빠르게 줄고 있다. 2023년 4조원대이던 당기수지 흑자는 지난해 4996억원까지 떨어져 적자 전환을 코앞에 두고 있다.
보험료율을 올렸던 2020년에도 국고 지원액을 1조원가량 늘린 바 있어 정부지원 확대를 보험료율 동결의 근거로만 보기는 어렵다. 임금·성과급 상승에 따른 보험료 수입 증가 역시 경기와 기업 실적에 좌우되는 만큼 지속적으로 기대하기 어려운 요인이라는 한계가 있다.
고령화에 보장 확대…예정처 "2029년 준비금 소진"
정부 계산대로 당장 내년 수입이 늘더라도 건강보험 지출이 계속 증가하는 구조는 고민거리다. 가장 큰 요인은 고령화다.
2024년 65세 이상 인구의 진료비는 52조1935억원으로 전체 건강보험 진료비의 44.9%를 차지했다. 노인 1인당 연평균 진료비는 550만8천원이었다. 노인 인구가 늘어나면 진료비뿐 아니라 간병과 재택의료에 들어갈 건강보험 지출도 함께 증가할 수밖에 없다.
특히 정부는 이번 보험료율 동결과 동시에 보장 범위는 확대하기로 했다. 중증·희귀난치질환자 등 197만명에게 연간 최대 8천억원을 지원하는 방안이다. 올해 12월부터 희귀·중증난치질환자의 산정특례 본인부담률을 10%에서 7%로 낮추고, 2028년 상반기에는 암 환자와 같은 5%까지 내린다.
이는 중증환자 등이 직접 부담하던 의료비를 건강보험이 나눠 부담하는 것으로 건강보험의 본래 역할에 해당한다. 다만 한 번 지급하고 끝나는 돈이 아니라 해마다 반복되는 지출이다. 보장을 늘릴수록 이를 뒷받침할 안정적인 수입 기반에 대한 필요성도 커질 수밖에 없다.
국회예산정책처가 지난 6월 의료개혁 1·2차 실행방안을 반영해 건강보험 재정을 다시 추계한 결과 누적 준비금은 2029년 소진될 것으로 전망됐다. 의료개혁에 따른 추가 지출을 제외할 경우에도 2031년이면 준비금 소진이 예상됐다.
보험료율과 국고지원, 의료 이용량 등이 현행 추세대로 이어진다는 전제에 따른 전망이라 실제 소진 시점은 달라질 수 있지만 현재 쌓인 준비금만으로 늘어나는 지출을 계속 감당하기 어렵다는 경고다.
보험료로? 세금으로? 누가 어떻게 더 부담하나
강청희 건강보험공단 이사장은 건정심 결정 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매년 일정하게 올려주면 재정 기반이 조금씩 올라가는데, 한 번 쉬어가면 다시 올릴 때 큰 폭으로 올려야 한다"며 "두 번, 세 번 연속 동결하면 낮은 보험료 수입을 계속 가지고 가야 한다"고 우려했다.
이번 동결로 당장의 부담은 줄었지만 늘어나는 지출을 감당할 재원에 대한 논의 필요성은 더 커진 셈이다. 쟁점은 누구에게 어떤 방식으로 더 부담하게 할 것이냐다. 보험료만 올리는 방식으로 재정 문제를 풀면 부담이 가입자에게 집중되기 때문이다.
이에 노동계는 보험료율 인상에 앞서 정부지원부터 확대해야 한다고 요구한다. 전국공공운수사회서비스노조와 건강보험노조, 건강보험심사평가원노조는 건정심 당일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가 보험료 예상수입의 20% 수준인 지원 기준을 이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부는 내년 지원 금액이 올해보다 약 1조1천억원 늘었다고 강조하지만, 노동계는 정부 지원안이 보험료 예상수입의 14.4% 수준에 그쳐 "실질적으론 감액"이라는 입장이다.
지원 규모뿐 아니라 안정성도 문제다. 건강보험에 대한 일반회계와 국민건강증진기금 지원 조항은 일정 기간이 지나면 효력을 잃는 일몰제로 운영되고 있다. 실제 일몰과 함께 지원 공백으로 이어진 적도 있다.
지난 2022년 말 국회가 기한 안에 연장안을 처리하지 못하면서 2023년 1월부터 5월 개정안이 통과되기까지 국고지원의 법적 근거가 사라져 논란이 됐다.
현행 지원 조항의 유효기간은 2027년 말까지다. 국회는 그 전에 지원 조항을 다시 연장할지, 한시 규정을 없애고 안정적인 지원 체계를 마련할지 결정해야 한다.
다만 개인이 부담하는 보험료는 물론 정부지원도 결국 국민의 세금에서 나온다. 보험료나 국고지원 확대만으로 건강보험 재정 문제를 풀기 어려운 이유다. 과잉·중복 진료와 부당청구 등을 줄이고 필요한 의료에 재원을 집중하는 지출 관리도 관건이다.
정부는 내년 보험료 동결과 함께 약가제도 개편으로 연 2700억원, 검체·영상 수가 조정으로 연 2조6천억원, 거짓·부당청구 관리 강화로 연 800억원을 절감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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