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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보이스피싱 잡는 80대 '영크크'…우덕마을의 유쾌한 반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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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글라스 낀 80대 어르신들의 '힙'한 범죄 예방 프로젝트
청년들의 아이디어와 어르신들의 열정이 만든 시너지
귀농 사무장과 주민들이 일궈낸 활기찬 마을의 변화



"처음엔 놀랬어. 어찌나 (사진이) 풍신나게(볼품없게) 나오는지…근데 사진은 안 주는 거여?"
"주변에서 영화 '호프'에 나오는 할머니들 같다고 너무 힙하다고 완전 영크크 같다고 그랬어요"
 
검붉은 색의 반듯한 벽돌이 주택을 둘러싸고 실개천이 졸졸졸 흐르는 부안군 산내면의 우덕마을을 찾은 건 지난 2일. 마을회관에 들어서는 순간 "뭐가 됐든 밥부터 먹고 하자"며 호탕하게 취재진을 맞는 어르신들을 만날 수 있었다.
 
우덕마을은 평균연령 80대의 전형적인 시골 마을이지만, 최근 우덕마을 어르신들이 찍은 사진이 부안경찰서의 범죄예방 홍보 포스터에 사용되면서 큰 화제를 모으고 있다.
 

평균 연령 80세 어르신의 '파격 변신'…타짜·호프 연상시켜 

부안경찰서와 우덕마을 주민들이 참여한 범죄 예방 프로젝트. 부안경찰서 제공부안경찰서와 우덕마을 주민들이 참여한 범죄 예방 프로젝트. 부안경찰서 제공
포스터 속 어르신들은 선글라스를 낀 채 당당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모피 코트를 입고 선글라스를 멋들어지게 쓴 후 돈을 세고 있는 모습과 화투패를 들고 고심하는 모습. 형형색색의 트레이닝복을 입고 트럭에 올라 카메라를 응시하는 모습도 담겨 있다.
 
영화 '타짜'나 '호프' 등 흥행작들을 연상시키는 사진 아래엔 '보이스피싱 신고112 급할수록 송금 말고 확인 먼저'나 '음주운전 STOP! 진짜 의리: 취한 친구 차 키 뺐기'등 보이스 피싱과 도박, 음주운전 등을 예방하기 위한 안내 문구가 적혀있었다.
 
강렬한 어르신들의 모습과 익살스런 문구가 담긴 포스터는 우덕 마을의 축제를 위해 촬영해놓은 사진들을 활용해 부안경찰서가 '범죄 예방 프로젝트'를 기획했고, 어르신들이 사진을 찍고 릴스에 출연하는 등 모델과 배우로 활약했다.
 
촬영에 참여한 이질순(93)씨는 "처음엔 느닷없이 젊은애들이 와서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하니 부담스러웠다"면서도 "고생한 만큼 핸드폰으로 사진과 영상을 돌려볼 수 있응게 뿌듯하고 좋고만"이라고 말했다. 이길순(87)씨도 "당황혀서 잘 몰랐는디 젊은 친구들이 예쁘다 예쁘다 해주니까 좋다"고 말했다. "어르신들이 너무 멋져서 경찰청이 난리가 났다"는 취재진의 너스레에 "그려? 그럼 좋지 근데 보관하고 싶은디 사진은 따로 안 준디야?""라며 웃었다.

 MZ경찰관이 기획한 '우덕마을 주민즈'…범죄 예방 효과 '탁월'

우덕마을 어르신들이 카메라를 향해 '우덕마을 따봉' 포즈를 취하고 있다. 심동훈 기자우덕마을 어르신들이 카메라를 향해 '우덕마을 따봉' 포즈를 취하고 있다. 심동훈 기자
이번 프로젝트의 배경엔 'MZ세대'가 있다. 99년생으로 이번 프로젝트를 기획한 부안경찰서 김우림 행정관은 "고령화가 심한 부안에선 어르신들이 보이스피싱이나 음주운전, 안전모 미착용 문제에 잘 인지하지 못하고 속아 넘어가시는 경우가 많다"며 "통상적인 홍보물이 아닌 안면이 있고 친한 동네 어르신들이 나오는 포스터라면 시선을 사로잡고 관심을 높일 수 있을 것 같았다"고 기획 배경을 밝혔다.
 
그러면서 "어떻게 하면 눈에 띄는 포스터를 만들까 고민하다가 '진짜 의리: 취한 친구 차 키 뺏기'등 익살스럽고 재밌는 문구를 첨부하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어 "포스터를 보고 여러 동료와 친구들에게 나홍진 감독의 호프에 출연한 할머니들 같았다는 연락이 온다"며 웃었다.
 
어르신들을 촬영 중인 유채원 씨. 유채원 씨 제공어르신들을 촬영 중인 유채원 씨. 유채원 씨 제공
어르신들의 멋진 모습이 담긴 사진을 촬영한 청년 유채원 씨도 "할머니들께서 오토바이 타고 이렇게 운전하시는 모습이 도시의 할머니들과는 좀 다르고 좀 와일드하다는 느낌을 받았다"며 "도시 사람들한테는 이제 조금 신기하고 조금 새롭게 느껴질 것 같다는 생각을 해 사람들에게 강렬한 첫인상을 주는 포스터를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마을에서 일어나는 그런 일상 속에 있는 모습들을 뭔가 포스터로 담아놨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며 "어르신들께 디테일한 포즈를 요청드려 힘들 법도 한데 도시에서 온 청년들을 배려해 즐겁게 맞춰주셨다"고 전했다.
 

60년 된 경로당의 변신…귀촌 10년 차 사무장이 만든 변화 

우덕마을 마을 기록관에 전시된 우덕마을의 기록물들. 심동훈 기자우덕마을 마을 기록관에 전시된 우덕마을의 기록물들. 심동훈 기자
이렇듯 우덕마을이 청년들과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활력을 갖게 된 배경에는 마을의 살림꾼 박후진 사무장의 노력이 있었다. 마흔이 넘은 나이에 늦둥이를 낳고 시골 삶을 꿈꾸며 1년 살기로 부안에 왔던 그는 우덕마을의 매력에 빠져 정착하게 됐다.
 
박후진 사무장은 평범한 농촌 마을을 변화시켰다. 1961년 지어져 창고처럼 방치된 옛 경로당을 주민들과 함께 리모델링해 재생시켰고, 우덕마을 주민들이 가지고 있던 사진, 글, 소장품 등을 모아 '마을 작은 기록관'을 만들었다.
 
박 사무장은 "기록관 건립 등의 성과들을 바탕으로 '취약지역 생활여건 개조사업(새뜰마을 사업)' 같은 전국 단위 공모 사업에 도전해 선정됐다"며 "담장 정비나 오래된 건물을 철거하는 등 정주 환경을 개선하면서 마을이 깨끗하게 변했다"고 밝혔다.
 
또한 "작년에는 '전북 둥지마을 귀농귀촌 사업'으로 청년 인턴들과 함께 프로젝트를 진행했는데, 청년들이 인스타그램과 유튜브 채널을 만들어 적극적으로 홍보해 준 덕분에 방송 취재 요청도 이어지고 마을을 알고 찾아오는 분들도 생겼다"고 전했다.
 
우덕마을 어르신들이 마을회관에 모여 화투를 치고 있다. 어르신들은 모아놓은 저금통에 있는 10원 동전으로만 화투를 치신다. 심동훈 기자우덕마을 어르신들이 마을회관에 모여 화투를 치고 있다. 어르신들은 모아놓은 저금통에 있는 10원 동전으로만 화투를 치신다. 심동훈 기자
스무 살 나이에 우덕마을에 시집와 70여년을 지낸 이용녀(91)씨는 "우리 마을은 옛날부터 앞서가는 마을이여 새마을 때부터 깨끗혔는디 갈수록 마을이 발전해갖고 좋아지니까 1등 먹어"라며 "방송 나간 후로 젊은 친구들이 와서 일도 도와주고 이야구(이야기)도 나누니 좋지 뭐"라고 말했다.
 
우덕마을의 활기찬 변화는 고령화와 지역 소멸이라는 시골 마을의 고민을 새로운 가능성으로 바꿔놓은 사례다. 온 세대가 함께 어우러져 마을의 역사와 일상을 기록하고 알리는 우덕마을. 평균연령 80대 어르신들의 유쾌한 도전은 시골 마을이 나아가야 할 밝고 지혜로운 이정표를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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