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석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7일 국회 본회의에서 교섭단체 대표연설 종료 후 국민의힘 의원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황진환 기자"소박하게 본회의 자리부터 섞어 앉읍시다. 당별로 말고 가나다순으로 앉으면 어떻습니까?" 얼마 전 김민석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국회 대표연설에서 여야 의원들에게 던진 제안이다. 여야가 본회의장에서 섞여 앉아 서로 맞장구도 치고, 흉도 보며 친해져 보자는 취지였다.
그러면서 "지방의회도 하는 걸 왜 못 합니까?"라고 했을 때, 한 장면이 떠올랐다.
제11대 경기도의회 하반기 문화체육관광위원회를 이끈 황대호 의원은 취임 직후 여야를 떠나 좌석을 섞어 앉히는 등 협치 행보를 보였다. 경기도의회 제공'문화체육관광당'이라 불린 경기도의회의 파격
지난 11대 경기도의회 하반기 문화체육관광위원회다. 김 총리가 언급한 지방의회의 실험이 실제 현실에서 어떻게 작동했고 어떤 결실을 맺었는지를 확인해 준 대표적 사례다.
당시 상임위를 이끌었던 황대호 위원장은 취임 직후부터 눈길을 끌었다. 민주당의 파란색과 국민의힘의 붉은색이 섞인 넥타이를 매고 의사봉을 잡았고, 상임위 회의실 좌석 배치부터 여야를 교차해 번갈아 앉도록 바꿨다. 도민을 위한 의정 활동에 당의 색깔은 중요하지 않다는 점을 물리적 공간 배치로 보여준 것이다.
결과는 즉각 나타났다. 자리를 섞자 회의 전후로 의원 간 사적인 대화가 늘었고, 쟁점 안건을 다룰 때도 사전 협의가 자연스레 이뤄졌다.
신뢰는 구체적인 성과로 이어졌다. 전국 광역의회 최초로 칸막이를 없앤 공개 예산심사를 도입해 밀실 심의 논란을 걷어냈고, 세수 부족으로 허리띠를 졸라매던 재정 여건 속에서도 문화체육관광 분야 본예산을 연속 증액하며 여야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여러 조례와 정책토론회가 우수 평가를 받았으며, 의회 안팎에서는 당적을 초월했다는 뜻에서 '문화체육관광당'이라고 불렸다. 의원들이 집행부 및 산하 공공기관과 정책적 긴장감을 유지하면서도 상호 감사패를 주고받는 협치의 선례를 남겼다.
제11대 경기도의회 하반기 문화체육관광위원회는 '문화체육관광당'이라 불릴 정도로 여야간 협치가 돋보인 사례로 꼽힌다. 경기도의회 제공진영의 요새 무너뜨리는 '공간정치학'
좌석 배치의 변화가 이러한 성과를 이끌어낸 배경은 공간과 인간 행동의 상관관계에서 찾을 수 있다. 환경심리학자 로버트 소머(Robert Sommer)는 물리적 공간의 배치가 사람들의 상호작용 방식과 집단 역학을 직접적으로 규정한다고 설명한다. 특정 집단이 물리적으로 분리되어 마주 보는 배치는 적대감과 방어 기제를 강화하는 반면, 물리적 거리가 좁혀지고 섞이는 배치는 심리적 경계를 완화한다는 분석이다.
현재 국회 본회의장의 정당별 좌석 구도는 진영 논리와 집단 극화(Group Polarization)를 강화하는 구조에 가깝다. 동료 의원들이 둘러싼 공간에서는 개인의 책임감이 옅어지며 군중심리에 편승하기 쉽다. 고성과 야유가 관행처럼 반복되는 배경에는 이러한 공간적 배치가 주는 심리적 비호가 자리 잡고 있다.
그러나 자리를 교차해 배치하면 심리적 역학이 달라진다. 바로 옆자리에 상대 당 의원이 착석하는 순간, 심리학에서 말하는 '근접성 효과(Proximity Effect)'가 작동해 상대를 공격 대상이 아닌 대화 상대로 인식하게 된다.
익명성에 기댄 집단적 고성은 물리적으로 차단되고, 각 의원은 집단의 일원이 아닌 독립된 헌법기관으로서 태도를 점검하게 된다. 피켓을 들고 단일 대오를 과시하는 집단행동 역시 섞여 앉은 구도에서는 시각적 통일성을 잃어 자연스럽게 실효성을 잃게 된다. 카메라를 의식한 '쇼윈도 정쟁'의 가성비가 바닥으로 떨어지는 것이다
거창한 개혁보다 '작은 실천'이 답이다
정치적 협치는 거창한 선언이나 제도 개혁만으로 이뤄지기 어렵다. 물리적 거리를 좁히고 상대방과 대면하는 일상적인 접촉에서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
황대호 위원장과 경기도의회 문체위의 사례는 좌석 배치라는 작은 공간의 변화가 의회 문화를 어떻게 실질적으로 바꿀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거창한 담론보다 손쉬운 변화 하나가 엉킨 실타래를 푸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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