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 정부는 인도, 중국, 한국 등 3개국에만 홍수 피해지역 실종자 구조활동을 허용하고 있다. 미국은 구조활동 참여국 명단에 빠져 있다. 사진은 지난 9월 3일, 중국의 법의학 전문가 10명이 네팔 수도 카트만두의 트리부반 공항에 도착해 기념촬영을 하는 모습. 이들은 구호품을 실은 중국군 Y-20 수송기를 타고 입국했다. 네팔 주재 중국 대사관 홈페이지 캡처지난 8월 26일 네팔과 중국 티베트 지역에서 발생한 대규모 홍수로 많은 인명피해가 났다. 네팔에서만 1천 300여 명이 사망했다. 실종자 수는 여전히 5천 명이 넘는다.
이런 데도 대홍수 발생 초기에 네팔 정부는 다른 나라의 실종자 수색 및 구조 지원을 받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강대국들의 틈에 낀 네팔이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내놓은 고육책으로 보인다.
네팔은 인도·중국과 남북의 국경을 접한 내륙 국가다. 인접한 두 강대국과의 관계에 국가의 흥망이 걸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국에도 네팔이 중요하다. 중국이 남아시아로의 세력 확장에 나설 경우 네팔이 최전선이 되기 때문이다.
네팔에 대형 재난이 닥칠 때마다 강대국들의 이른바 '재난외교'가 활개를 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지난 2015년 4월에는 네팔에 강진이 발생했다. 사망자만 9천 명이 넘는 큰 재난이었다. 당시에도 네팔 정부는 8일 만에 외국 구조대에 철수를 공식 요청했다.
하지만 이후 인도, 중국, 미국 등은 구호 및 구조 작전을 계속했다. 각국이 수백 명씩의 군병력과 군용기들을 동원했다. 네팔의 재요청에 따른 것이라고는 하지만 강대국들의 영향력 경쟁이라는 성격이 짙다.
이번 네팔 홍수로 다시 시작된 '재난 외교'에서도 인도와 중국의 경쟁이 눈에 띈다. 하지만 미국의 존재감은 과거보다 약해졌다.
네팔 대홍수 발생 당일인 지난 8월 26일 인도가 보낸 10톤 규모의 구호 물품이 네팔에 처음 도착한 모습. 네팔 주재 인도 대사관 홈페이지 캡처대홍수 발생 직후 가장 먼저 손을 건넨 나라는 인도다. 나렌드라 모디 총리는 재난이 일어난 8월 26일 발렌드라 샤 네팔 총리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희생자들에 애도를 표시하고 지원을 약속했다.
인도는 곧바로 군 수송기에 구호 물품을 실어 보냈다. 8월 29일 네팔이 초기 방침을 바꿔 외국 구조대를 일부 수용하자, 이후 터널 구조요원과 법의학 전문가 등을 잇따라 파견했다.
중국은 한 발 늦었다. 티베트에서 동시에 발생한 홍수 대응에 시간이 걸렸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시진핑 국가주석은 8월 28일 람 찬드라 파우델 네팔 대통령에게 위로 전문을 보냈다. 중국은 8월 30일 처음으로 군 수송기에 구호품을 실어 네팔에 전달했다. 재난 발생 4일 뒤다.
중국은 인도와 마찬가지로 터널 구조인력과 DNA 감식 전문가도 보냈다. 화물용 드론과 임시교량 자재 등 구호 및 구조 장비도 지원했다. 현금 240만 달러도 건넸다.
미국의 경우, 대홍수 발생 다음날인 8월 27일 트럼프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기자들에게 "네팔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이후 9월 2일 구호 물품 5천 점, 구급 키트 500개, 소형 로더(loader) 등을 군 수송기 2대에 실어 네팔로 보냈다. 네팔 주재 미국 대사관은 9월 10일까지 미국이 400만 달러 규모의 지원을 했다고 밝혔다.
지난 9월 2일 미군 C-130J 수송기 2대가 구호 물품과 구조 장비를 싣고 네팔에 도착했다. 사진은 미군이 구조 장비인 소형 로더(front-end loader)를 내리는 모습. 미국은 네팔의 홍수 피해 현장에 대한 실종자 수색이나 구조에는 참여하지 않고 있다. 네팔 주재 미국 대사관 SNS X 캡처특이한 점은 미국이 대홍수 피해 현장의 실종자 수색 및 구조 작업에서는 제외되고 있다는 점이다.
네팔 외교부가 재난 발생 17일째인 9월 11일까지 매일 발표한 보테코시강 홍수 상황에 따르면, 인도, 중국, 한국 등 3개국만 터널 구조에 직접 참여하고 있다. 미국은 언급되지 않는다.
UAE, 말레이시아, 호주도 구조활동을 지원하고 있다. 하지만 '네팔군과 긴밀하게 협력하면서' 구조작업을 수행하는 국가는 인도, 중국, 한국뿐이다.
희생자의 신원 확인을 위한 DNA 수집 및 감식작업에도 인도, 중국, 한국 등 3개국 이외에 일본, 싱가포르가 추가로 참여하고 있다. 역시 미국은 없다.
주목할 사실은 이번 홍수의 외국인 실종자 가운데 미국인이 전체의 10%가 넘는다는 점이다. 네팔 정부의 초기(8월 27일) 발표에 따르면, 미국인 실종자 수는 66명이다. 한국인은 9명이다.
전체 외국인 실종자 약 600명 가운데 인도(93명), 중국(84명)에 이어 미국이 세 번째로 많다. 그런데도 미국은 현장 구조활동 참가국에 포함되지 않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앞서 네팔에 대한 모든 지원을 약속했다. 네팔 정부도 "최고위급 차원에서 협력을 강화해 국제지원의 효과적인 동원을 보장하고 있다"고 누누이 밝혀왔다. 하지만 실제로는 아니다.
미국의 이런 대응은 한국과도 비교가 된다. 한국은 구호품 지원뿐 아니라 터널 구조, DNA 감식 등에도 적극 참여하고 있다.
사진은 지난 9월 1일 44명의 한국 해외긴급구호대가 네팔로 출국하기 위해 군 수송기(KC-330)에 탑승하는 모습. 이후 한국은 네팔 홍수 피해현장에서 실종자의 수색과 구조는 물론 희생자의 신원 확인을 위한 DNA 감식에도 참여하고 있다. 네팔의 요청으로 현장구조팀과 법의학 전문가를 모두 지원을 나라는 인접국인 인도와 중국을 제외하면 한국이 유일하다. 외교부 홈페이지 캡처미국의 존재감 약화는 지난 2015년 4월 25일 발생한 네팔 강진 때와 비교하면 더 두드러진다.
당시 미국은 네팔에 최정예 해병대를 투입해 구호 및 인명 구조에 적극 나섰다. 네팔어로 '도움의 손길'을 뜻하는 '사하요기 하트(Sahayogi Haat) '라는 작전명도 부여했다.
미국은 해병대뿐 아니라 육·해·공 병력 및 민간인까지 모두 900명을 구호작전에 참여시켰다. 이중 네팔에만 300명이 투입됐다. 일본에 지휘소 성격의 합동테스크포스(JTF 505) 본부를 설치하고, 태국에는 중간 기지까지 운영했다. ('JTF 505 deactivates after Operation Sahayogi Haat', 2026년 5월 26일, 미국 해병대 홈페이지)
특히 미군은 네팔과 중국의 국경 20km 부근까지 헬기를 접근시켜 긴급 구호 물품 전달과 주민 수송 등의 임무를 수행했다. 이런 사실은 구호에 나선 미군 헬기가 해당 지점에 추락하면서 확인됐다.
인도는 강진 발생 10일째인 5월 4일까지 군 수송기 13대와 헬기 24대를 구호에 동원했다. 같은 기간에 중국도 군 수송기와 헬기를 각각 3대씩 파견했다. (UN 인도주의업무조정국 OCHA, 2015년 5월 4일 기준 누계) 이후 인도와 중국, 미국 모두 군 자산 투입을 더 늘렸다.
이러다 보니 강대국의 군용기들이 연일 네팔 상공을 휘젓고 다니는 지경이 됐다. 네팔 정부는 미국, 중국, 인도에 구역을 나눠 대응하도록 했다.
하지만 네팔의 조정 및 통제 권한은 충분히 존중받지 못했다. 인도군이 네팔과 중국의 국경지역까지 올라가자 네팔군이 불만을 표시하기도 했다.
미군과 중국 인민해방군 사이의 마찰도 빚어졌다. 미국 의회의 관련 보고서는 "당시 중국군이 자국의 작전 구역내에 타국 군대의 진입을 거부해 구호작전의 비효율을 초래했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중국이 자국에 배정된 구역을 마치 '주권적 영토'처럼 다뤘다"고 평가했다. 이 시기 중국군도 약 500명의 병력을 네팔에 투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The Chinese Military's Role in Overseas Humanitarian Assistance and Disaster Relief: Contributions and Concerns, 2019년 7월 11일, U.S.-China Economic and Security Review Commission)
미국은 지난 2015년 4월 네팔 강진 때, 해병대를 주축으로 한 병력과 민간인 등 300명 그리고 군 수송기, 헬기 등을 네팔에 보냈다. 사진은 당시 미국의 UH-1Y 베놈(Venom) 헬기를 이용해 네팔군이 구호물자를 피해지역에 보급하는 모습. 미국 전쟁부(Department of War) 홈페이지
이번에 발생한 네팔 홍수의 구조 작업에 과거처럼 군 자산과 병력을 대거 투입한 국가는 아직 없다. 네팔 정부가 초기부터 필요한 인력만 제한해 선별적으로 수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네팔의 이런 선제적 조치가 중국 때문에 취해졌다는 해석도 있다. 제네바에서 근무했던 네팔의 전 UN 주재 대사 디네시 바타라이 (Dinesh Bhattarai)는 "피해지역이 중국 티베트와 국경을 접하고 있는 것과 관련이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로이터 통신, Nepal declines foreign rescue help, South Korea says it is negotiating, 2026년 8월 28일)
이 말은 네팔 정부가 티베트 국경지역에 대한 중국의 예민한 입장을 감안해 외국 구조대의 진입을 막고 있다는 의미로 들린다.
하지만 네팔 외교부의 록 바하두르 푸델 체트리 대변인은 이와 관련해, "중국의 민감성과는 무관하다"고 밝혔다. 네팔의 자체 역량으로 구조작업이 가능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중국의 궈자쿤 외교부 대변인도 8월 31일 관련 질문을 받고, "근거 없이 추측하거나 분란을 조장하지 말라"고 일축했다.
하지만 양국의 반박에도 불구하고 의문은 남는다. 네팔이 소수 국가의 적은 인원에게만 구조 작업을 허용해 실질적으로 티베트 국경지역으로의 접근을 통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중국이 가장 민감해하는 미국이 구조 참여국 명단에서 계속 제외되고 있다.
급기야 지난 9월 4일 미국 하원 의원 30명이 나섰다. 이들은 미국인 실종자가 75명이라고 밝혔다. 이어 "네팔에서의 수색과 구조를 지원하기 위해 가용 자원을 모두 동원하라"고 미국 행정부에 촉구했다.
하원 의원들은 또 "네팔 및 중국 재난 당국 등과 협의해, 수색 지역 전반에 대한 완벽한 접근을 보장해야 한다"고 미국 정부에 요구했다.
미국 구조대가 티베트 부근 네팔의 피해지역에 진입하려면 중국과도 협의를 해야 한다는 것이 의원들의 생각인 것이다. 중국이 미국 구조대의 진입을 막고 있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는 대목이다.
하원 의원들의 이런 인식은 네팔의 외국 구조대 활동 제한이 '티베트 국경'과 관련이 있다는 디네시 바라타리 전 대사의 해석과도 일맥상통한다.
트럼프 행정부가 구조에 참여할 의지가 있는지도 의문이다. 시간이 갈수록 실종자들의 생존 가능 시한은 끝나가고 있다.
결국 미국이 배제된 채 구조작업이 조만간 종료될 가능성이 있다. 그렇다면 중국은 이번 사례를 '재난외교'에서의 승리로 선전할 수 있게 된다.
강성웅 국제정치 칼럼니스트, 전 YTN 베이징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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