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제덕·박종성의 심포닉 하모니카. CBS 공연기획센터 제공지난 15일 저녁 서울 송파구 롯데콘서트홀 2천여 객석은 시작부터 끝까지 경이로운 전율과 뜨거운 환호로 가득 찼다. 무대 중앙, 연주자의 두 손에 쥐어진 손바닥만 한 은빛 악기가 가쁜 숨을 머금고 내뱉는 순간마다 객석 곳곳에서는 주체할 수 없는 탄식이 터져 나왔고, 한 곡 한 곡이 끝날 때마다 쏟아진 우레와 같은 박수는 콘서트홀의 공기를 뜨겁게 달궜다. CBS가 주최한 '전제덕, 박종성의 심포닉 하모니카'는 동요를 연주하는 소박한 악기 정도로 하모니카를 기억하던 관객들의 편견을 완전히 허물어뜨린 '하모니카의 경이로운 재발견'이었다.
클래식과 재즈의 유려한 조화, 품격을 끌어올린 편곡과 완벽한 앙상블
이번 공연은 클래식과 재즈, 대중음악을 아우르며 관객의 눈높이에 다가선 친근한 선곡과 격조 높은 편곡이 있었다. 대중에게 익숙한 명곡들에 대편성 관현악의 웅장한 화성을 입혀 음악적 밀도를 극대화했다.
특히 최영선 지휘자가 이끄는 밀레니엄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장대한 관현악 사운드와 전제덕 밴드(피아노, 기타, 베이스, 드럼)의 정교하고 그루브 넘치는 리듬 섹션은 물샐틈없는 앙상블을 뽐냈다. 작은 악기 하모니카가 거대한 심포니의 바다 위에서 마음껏 날아오를 수 있도록 든든하게 받쳐준 이들의 협연은 공연의 완성도를 최고조로 끌어올린 일등 공신이었다.
정통 클래식의 한계를 뛰어넘은 박종성의 정교한 숨결
전제덕·박종성의 심포닉 하모니카. CBS 공연기획센터 제공공연의 포문은 프레더릭 로우의 뮤지컬 <마이 페어 레이디> 서곡(Overture)으로 화려하게 열렸다. 오케스트라의 웅장한 사운드로 객석이 예열된 후 무대에 오른 박종성은 세계 최초의 정통 하모니카 협주곡인 마이클 스피바코프스키의 '하모니카 협주곡'을 선보였다. 하모니카로 바이올린을 연상시키는 정교하고 유려한 연주와 넓은 음역대를 거침없이 오가는 고난도 기교에 관객들은 숨을 죽이고 감상했다.
이어 조지 거슈윈의 '랩소디 인 블루'에서는 피아노 원곡의 카덴차를 하모니카 특유의 선율과 화려한 테크닉으로 재해석해 자유분방한 스윙감을 뽐냈고, 한국 민요 '새야 새야'에서는 오케스트라의 애절한 현악 선율 위에 하모니카의 깊은 호흡을 얹어내며 우리 한(恨)의 정서적 공감을 전달했다.
영혼을 울리는 전제덕의 재즈 하모니카 선율
전제덕·박종성의 심포닉 하모니카. CBS 공연기획센터 제공
2부는 한국 재즈 하모니카의 전설 전제덕의 무대였다. 새미 페인의 스탠다드 재즈 넘버 '시크릿 러브(Secret Love)'와 영화 <쉘부르의 우산> 테마 '당신을 기다리겠어요'로 롯데콘서트홀을 순식간에 낭만적인 시네마 천국으로 탈바꿈시켰다. 이어 바흐의 '시칠리아노'를 서정적이고 현대적 감각의 모던 클래식으로 재탄생시켰고, 헨리 맨시니의 영화 <핑크 팬더> 테마에서는 위트 넘치는 베이스라인 위로 장난스럽고 스윙감 넘치는 즉흥 연주를 펼치며 관객들의 어깨를 들썩이게 했다.
하이라이트는 삼바 리듬으로 편곡한 전제덕의 대표 자작곡 '댄싱 버드(Dancing Bird)'였다. 창공을 가르는 거대한 날갯짓처럼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빠른 하모니카의 움직임과 폭발적인 즉흥 애드립 연주가 나오자 객석 곳곳에서는 탄성이 흘러나왔고 밴드의 몰아치는 드럼 비트와 오케스트라의 브라스 사운드가 맞물린 절정부에서는 롯데콘서트홀의 열기를 최고조로 올렸다.
처음으로 한 무대에선 두 거장, '넬라 판타지아'부터 '스페인'까지
전제덕·박종성의 심포닉 하모니카. CBS 공연기획센터 제공3부에서는 2012년 전제덕의 심포닉 하모니카 공연때 객석에서 관객으로 공연을 봤던 박종성은 14년 후에 자신이 동경하던 전제덕과 한 무대에 올랐다.
조제프 코스마의 '고엽(Autumn Leaves)'으로 가을밤의 쓸쓸하고도 낭만적인 정취를 전제덕 밴드와 함께 풀어낸 뒤 이어진 엔니오 모리코네의 '넬라 판타지아(Nella Fantasia)'는 이날 공연의 가장 극적인 순간이었다. 오케스트라의 아련한 도입부가 지나고, 하모니카의 티 없이 맑고 영롱한 첫 선율이 공간을 가르는 순간 객석 전체에서는 마법에 걸린 듯 일제히 탄식이 터져 나왔다. 사람의 목소리보다 더 깊은 울림을 전하는 하모니카의 음색에 완전히 매료된 관객들은 숨소리조차 죽인 채 눈시울을 붉혔다.
척 맨지오니의 퓨전 재즈 명곡 '필스 쏘 굿(Feels So Good)'을 오케스트라와 밴드의 리듬에 두 연주자가 유쾌한 대화를 나누듯 솔로를 주고받으며 축제 분위기를 만들었다.
공연의 마지막은 칙 코리아의 라틴 재즈 걸작 '스페인(Spain)'으로 대미를 장식했다. 로드리고 아랑훼즈 협주곡의 도입부를 지나 맹렬한 라틴 리듬으로 돌입하자, 전제덕과 박종성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내달린 정교한 초고속 유니즌 연주와 불꽃 튀는 즉흥 솔로 배틀은 관객들에게 아찔한 전율을 안겼다. 오케스트라와 밴드가 총동원된 폭발적인 피날레 화음이 멎는 순간, 1500여 관객은 약속이라도 한 듯 떠나갈 듯한 박수를 보냈다.
전제덕, 스티비 원더 곡 직접 열창…객석 열광
본 프로그램이 끝난 뒤 이어진 앵콜 무대는 그 어떤 순간보다 뜨거운 감동과 전율의 연속이었다. 첫 번째 앵콜곡으로 연주된 카니발의 '거위의 꿈'은 두 대의 하모니카가 세상에 건네는 웅장하고 따뜻한 위로가 되어 벅찬 감동을 안겼다.
그리고 공연의 대미를 장식한 마지막 앵콜에서 믿기 힘든 광경이 펼쳐졌다. 연주된 곡은 세계적인 팝스타 스티비 원더의 대표곡 '이즌 쉬 러블리(Isn't She Lovely)'. 같은 시각장애를 딛고 세계 최고의 음악가가 된 스티비 원더를 평생 존경해 온 전제덕이 하모니카 대신 마이크를 쥐고 직접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 것이다.
전제덕의 소울풍의 진솔한 목소리가 콘서트홀에 울려 퍼지자 예상치 못한 반전에 관객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고, 박종성의 경쾌한 하모니카 연주와 풀 밴드, 오케스트라가 어우러지며 장내는 순식간에 열광의 도가니로 변했다. 객석 전체가 박수로 하나 되어 리듬을 탔고, 연주가 끝나자 환호성과 박수가 롯데콘서트홀을 가득 채웠다.
"2026년 최고의 명공연"…쏟아진 찬사와 하모니카의 위대한 귀환
전제덕·박종성의 심포닉 하모니카. CBS 공연기획센터 제공
공연이 끝난 후 로비는 황홀경에서 쉽게 빠져나오지 못한 관객들의 찬사로 가득 찼다. 한 관객은 "하모니카라는 악기가 이렇게 섬세하면서도 압도적일 수 있다는 사실을 오늘 처음 알았다. '넬라 판타지아'의 첫 소리에 온몸에 소름이 돋았고, 마지막에 전제덕 씨가 직접 노래를 부를 때는 가슴이 벅차 눈물이 났다"고 소감을 밝혔다. 클래식 애호가들 역시 "완벽한 선곡과 편곡, 지휘자와 오케스트라, 밴드의 앙상블까지 모든 것이 완벽했다. 단연 올해 최고의 공연 중 하나로 꼽고 싶다"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두 거장의 신기에 가까운 테크닉과 영혼을 담은 호흡, 그리고 최영선 지휘의 밀레니엄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전제덕 밴드가 완성한 어제의 무대는 대한민국 공연 예술계에 '하모니카의 위대한 재발견'이라는 역사적 족적을 뚜렷이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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