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민경 성평등가족부 장관이 16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임신중지 약물 도입 방안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2019년 4월 헌법재판소가 형법상 낙태죄 조항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지 7년 만에 정부가 임신중지 약물 도입을 공식화했다.
임신과 출산 과정에서 여성의 건강권과 자기결정권을 보다 폭넓게 보장할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반면 미성년자 처방 시 보호자 동의 여부와 의료환경이 열악한 지역의 약물 접근성, 종교·의료계의 반발 등은 풀어야 할 과제로 남았다.
입법 공백 계속되자…정부, 임신중지 약물 도입
성평등가족부·보건복지부·식품의약품안전처는 16일 임신중지 약물 도입 방안을 공개했다. 임신 9주 이하 임신부를 대상으로 하되 도입 이후 첫 2년간은 의료기관에서 의사가 직접 처방·조제하도록 하는 게 핵심이다.
식약처 신준수 의약품안전국장은 이날 언론 브리핑에서 미프지미소정(미프진)의 품목허가 신청 이후 위해성관리계획 등에 대한 보완 절차가 진행 중이라며 내년 1분기 안에 도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조치는 헌재의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 이후 장기간 이어져 온 제도적 공백을 일부 메우는 조치로 평가된다.
헌재 결정에 따라 형법상 낙태죄 조항은 2021년 1월 1일부터 효력을 잃었다. 하지만 국회가 헌재가 정한 시한까지 후속 입법을 마련하지 못하면서 임신중지를 둘러싼 법적·제도적 공백이 이어져 왔다.
원민경 성평등가족부 장관(왼쪽)과 오유경 식품의약품안전처장이 16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가정책조정회의에서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정부가 입법을 기다리지 않고 약물 도입에 나선 배경에는 불법 유통 문제가 있다. 제도적 공백 속에서 여성들이 온라인 등을 통해 유통되는 검증되지 않은 임신중지 의약품에 노출되고 있다는 판단이다.
식약처가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전진숙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2021년부터 2026년 5월까지 임신중지 의약품의 온라인 불법판매·알선광고 적발 건수는 3189건에 달했다. SNS를 통한 적발 건수는 2021년 26건에서 지난해 313건으로 약 12배 늘었다.
정부가 도입 이후 첫 2년간 의료기관 내 의사의 처방·조제를 원칙으로 정한 것도 현행법의 한계 때문이다.
법무부는 헌재 결정에서 약사의 임신중지 약물 조제에 대해서는 별도로 판단하지 않은 만큼 현행법상 약사가 해당 약물을 조제할 경우 처벌될 가능성이 있다고 해석했다.
형법·모자보건법 개정 병행…'9주 제한·접근성' 쟁점
연합뉴스정부는 약물 도입과 함께 형법과 모자보건법 개정도 추진한다. 복지부는 올 하반기 국회에서 모자보건법 개정안 논의가 이뤄질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 국회에는 의원입법으로 모자보건법 개정안 6건이 발의돼 있다.
여성계에서는 정부의 임신중지 약물 도입을 환영하면서도 사용 대상을 임신 9주 이하로 제한한 데 대해서는 문제를 제기했다.
한국여성정치네트워크는 이날 논평을 통해 "기준을 임신 10주(70일) 이하로 상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임신 70일 이하까지 임신중지 의약품 사용을 허용하고 있는 만큼 국제 기준에 미치지 못한다는 지적이다.
의료기관에서 의사가 직접 약물을 조제하도록 한 데 따른 지역별 접근성 문제도 있다. 산부인과 등 의료기관이 부족한 지역에 거주하는 여성은 약물을 처방받기 위해 장거리를 이동해야 할 수 있다. 미성년자가 약물을 처방받을 때 보호자 동의를 의무화할지도 결정되지 않았다.
28개 여성·의료단체가 참여하는 '모두의안전한임신중지를위한권리보장네트워크'는 "일본이 2023년 임신중지 의약품을 허가하면서 병상을 갖춘 의료기관에서의 사용과 의료진의 관찰 등 강한 제한을 두면서 접근성 격차가 발생했다"고 지적했다.
종교·의료계에서는 후속 입법이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정부가 약물 도입을 추진하는 데 대한 우려가 나온다.
대한산부인과의사회는 "도입 자체를 원칙적으로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면서도 "임신중지와 미프진 도입 문제를 개별 의료기관의 판단이나 행정부의 지침으로 넘겨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 가정과 생명위원회 생명운동본부와 한국교회총연합 사회정책위원회도 지난 7월 기자회견에서 미프진 허가 방안의 재검토와 입법 공백 해소를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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