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해·공군사관학교 통폐합 및 육군사관학교 지방 이전 반대 총궐기 대회에서 참석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윤창원 기자육군사관학교 총동창회가 국군사관학교 창설과 3군 사관학교 통합 정책을 막아서겠다며 연일 대대적인 집단행동과 성명전을 이어가고 있다. 별을 달았던 예비역 장성들과 원로들이 머리띠를 두르고 "모교를 지키자"며 궐기하는 모습은 기이함을 넘어 참담함을 안긴다. 평생 국민의 세금으로 훈련받고 계급과 명예를 누리며 "국가와 국민을 위해 목숨을 바치겠다"고 서약했던 이들이, 지금 온 힘을 다해 사수하려는 것은 조국의 안보가 아니라 자신들의 '모교 간판'과 '동문 카르텔'이다.
이 광경을 지켜보는 국민은 혀를 차며 묻고 있다. "군인은 국가를 지키는 자들인가, 모교를 지키는 자들인가?"
사관학교의 역사와 전통이 중요하지 않다는 사람은 없다. 6·25전쟁의 포화 속에서 피땀으로 쌓아 올린 선배 장교들의 헌신과 구국의 역사는 당연히 존중받아야 마땅하다. 그러나 서릿발 같은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그 역사와 모교에 대한 애정이 대한민국의 안위보다 중요한가? 선후배 동문의 인연이 미래 전장에서 우리 장병들을 승리로 이끄는 전투력보다 앞서는가?
연합뉴스단언컨대 국민에게는 그렇지 않다. 오늘날 대한민국의 국방을 책임지고 AI·드론·우주·사이버가 결합된 초연결 복합 미래전을 이끌어갈 군 지휘관이 과거 어느 학교를 졸업했는지는 국민에게 아무런 관심사가 아니다. 그 학교의 교가와 교훈이 수십 년 뒤에도 박물관처럼 영구 보존될 것인지에 대해서도 국민은 관심이 없다. 국민이 진정으로 염원하는 것은 '육사'라는 배타적 브랜드를 영구히 누리는 귀족 군대가 아니라, 우리의 안위를 해치는 현재와 미래의 어떤 침략도 압도적으로 분쇄할 수 있는 진짜 '이기는 강군'이다.
더욱이 국민은 12·3 불법 비상계엄이라는 초유의 헌정 파괴 사태를 겪으며 가슴을 쥐어뜯는 심정으로 또 다른 근원적 질문을 던지고 있다. "우리 군의 총구가 다시는 국민과 헌법을 향하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있는가?"
이 엄중한 역사적 물음 앞에서 오늘의 장교 양성체계 개혁은 두 가지 피할 수 없는 과제를 안고 있다. 첫째는 미래 다영역 복합전에서 승리할 수 있는 고도의 지성과 전문성을 갖춘 장교를 육성하는 것이고, 둘째는 사적 학맥이 아니라 오직 '헌법과 국민에게만 충성하는 민주적 군사 지도자'를 기르는 것이다.
육·해·공군사관학교 통폐합 및 육군사관학교 지방 이전 반대 총궐기 대회에서 참석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윤창원 기자그런데 지금 육사 총동창회가 벌이는 반대 운동을 보라. 이 본질적이고 국가적인 질문들은 온데간데없이 뒤로 밀려났다. 오직 학교의 위치, 동문회의 기득권, 폐쇄적인 순혈주의 전통만을 앞세우며 개혁의 물길을 거스르고 있다. 5·16과 12·12, 그리고 12·3에 이르기까지 헌정사에 씻을 수 없는 오점을 남긴 군사 반란의 정점마다 왜 특정 사관학교의 사적 인맥과 맹목적 의리 문화가 작동했는지에 대한 뼈를 깎는 반성은 털끝만큼도 찾아볼 수 없다. 헌법을 짓밟았던 과오 앞에서는 침묵하면서, 모교의 간판을 바꾸겠다는 정책 앞에서는 결사 항전을 외치는 이 뒤틀린 엘리트 의식을 국민이 대체 어떻게 납득하겠는가.
국군사관학교 창설은 특정 학교를 말살하려는 정치적 보복이 아니다. 학령인구 급감이라는 인구절벽 속에서 국방 교육 자원을 정예화하고, 3군이 입학 초기부터 함께 헌법적 가치와 다영역 합동성을 체화하여 특정 학맥의 밀실 카르텔을 원천 차단하자는 시대적 결단이다. 군종별 초급지휘관 실무 역량은 3~4학년 심화 트랙에서, 군사전문가로서의 능력은 임관 후 각급 보수교육 과정과 야전에서 고도화하도록 정교하게 설계되어 있다.
육사 총동창회와 예비역 수뇌부는 이제 그만 협소한 교정의 담장에서 걸어 나와 국민의 준엄한 눈빛을 마주해야 한다. 국가가 군인에게 부여한 거룩한 사명은 '동문의 기득권 호위(護衛)'가 아니라 '국토와 국민의 호국(護國)'이다. 선배 장교들이 지켜야 할 것은 과거의 특권적 영광이 아니라 내일의 청년 장교들이 당당하게 복무할 수 있는 '국민의 군대'다.
지금 육사 동문들이 지키려 몸부림치는 것은 모교의 명예가 아니라,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군사 카르텔의 마지막 참호일 뿐이다. 동창회라는 좁은 울타리를 부수고 국가 백년대계의 개혁에 지혜를 보태라. 끝내 시대의 경고를 외면한 채 집단이기주의의 깃발을 내리지 않는다면, 기다리는 것은 국민적 지탄과 역사의 냉엄한 파문뿐임을 똑똑히 기억해야 할 것이다.
국방안보포럼 서남열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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