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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스터디카페가 내 고향"…죄책감에 명절 반납한 청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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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환위기 이후 가장 큰 폭으로 줄어든 20대 취업자
"마음 편히 쉬지 못하는 압박감…명절에도 불안"
추석 연휴에도 취업 준비…"가족여행도 포기"
전문가 "경쟁 사회 속 심리적 압박…명절 계기로 풀어야"

추석 연휴를 앞두고 서울 용산구 서울역이 귀성객들로 북적이고 있다. 류영주 기자추석 연휴를 앞두고 서울 용산구 서울역이 귀성객들로 북적이고 있다. 류영주 기자
"오늘도 불합격 통보를 받았어요. 최종 면접에서만 3번을 떨어지니 이럴 때가 아니다 싶어 정신이 번쩍 듭니다."

취업 스터디에 참여하기 위해 경기 의왕시에서 서울 구로구까지 온 김명휘(26)씨는 이번 추석 연휴 귀성을 포기하고 취업 준비에 전념하기로 했다. 6개월째 마케팅 직무 취업을 준비 중인 김씨는 "주변을 보면 아예 자포자기한 친구들도 있다"며 "열심히 해도 합격보다 불합격 소식이 더 많다 보니 뉴스 외에도 피부로 체감되는 게 더 크다"고 털어놓았다.

20대 청년들이 외환위기 이후 최악의 취업난을 겪고 있다.

국가통계포털(KOSIS)에 따르면 올해 1~8월 20대 취업자는 월평균 327만9천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347만2천명)보다 19만3천명(5.6%) 줄었다. 1~8월 월평균 기준 20대 취업자 감소 폭은 외환위기 여파가 이어진 1998년(55만명) 이후 가장 컸다. 글로벌 금융위기였던 2009년과 코로나19 충격이 덮쳤던 2020년보다도 심각한 수준이다.

인구 감소를 감안해도 20대 고용 사정은 좋지 않았다. 20대 인구가 줄면 취업자 수도 자연스럽게 감소할 수 있지만, 올해 1~8월 20대 인구는 월평균 555만명으로 전년보다 3.5% 줄어든 반면 취업자는 5.6% 감소했다. 인구 감소 폭보다 취업자 감소 폭이 더 컸다.

"가족 여행도 사치"…과제·자격증에 명절 잊은 청년들

15일 오전 영등포구 한 청년 센터에 청년들이 모여있다. 김하영 기자15일 오전 영등포구 한 청년 센터에 청년들이 모여있다. 김하영 기자
청년들에게 이번 추석 연휴는 휴식의 시간이 아니다. 9월 24일부터 27일까지 나흘간 이어지는 연휴에도 취업난 속 청년들이 느끼는 심리적 압박감은 극에 달하고 있다.

지난해 구인·구직 플랫폼 사람인이 성인 남녀 2357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추석 연휴 취업준비 계획'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78.1%가 "연휴 동안 취업 준비를 하겠다"고 답했다. 연휴에도 취업 준비를 한다는 이유로는 '수시채용 위주라 공고가 언제 뜰지 몰라서'(43.6%·복수응답)가 가장 많았고, '공고 자체가 적어 취업이 힘들어서'(38.3%), '긴 연휴로 집중할 시간이 생겨서'(30.9%) 등이 뒤를 이었다.

올해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취업 준비생들의 상황을 살펴보기 위해 지난 15일 서울 영등포구에 위치한 한 청년센터를 찾았다. 오전 9시부터 청년들이 취업 준비에 한창이었다. 가져온 텀블러에 커피를 타고 노트북으로 자기소개서를 수정하거나 문제집을 펴고 책에 밑줄을 긋는 눈에 띄었다. 모자를 푹 눌러쓰거나 머리를 높이 질끈 묶은 채 공부하는 모습에서는 피곤한 기색도 엿보였다.

방금 자기소개서 제출을 마쳤다는 취업준비생 문소연(28)씨는 연휴 기간 내내 과제 전형에 매달려야 한다. 문씨는 "최근 3달 동안 서류만 50개 넘게 제출했다"며 "얼마 전 한 곳에서 서류 합격 통보를 받아 연휴 내내 제출할 과제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삼성 그룹 공채에도 지원해 서류 합격을 대비한 GSAT(삼성직무적성검사) 공부도 병행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프리랜서 강사이자 PM 직무 취업을 준비 중인 윤재현(29)씨 역시 명절을 반납했다. 윤씨는 "AI 메이커톤 포트폴리오 제작 프로젝트를 연휴 내내 이어가야 한다"며 "가족들은 펜션으로 여행을 떠나기로 했지만 바빠서 같이 가지 못한다고 전했다"고 말했다.

한국 기업 취업을 목표로 하는 외국인 유학생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경희대 미디어학과에 재학 중인 스자키 마오(27)씨는 "일본에서는 3학년 2학기만 돼도 취업 준비에 늦었다는 인식이 있다"며 "다가오는 중간고사와 취업 준비를 병행하려면 연휴 기간을 활용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잔소리 안 해도 찔려요"…가족 압박 없어도 불안


추석을 앞둔 청년들은 가족들이 직접적인 눈치를 주지 않더라도 취업에 대한 불안과 막막함을 느끼고 있다고 호소했다.

사회복지 분야 취업을 준비하는 권연희(26)씨는 "부모님이 대놓고 눈치를 주진 않으시고 오히려 안쓰러워하신다"면서도 "사람마다 거쳐야 할 '생애주기'가 있는데, 제때 취업해 안정적인 직장을 얻고 다음 단계로 나아가지 못하고 멈춰 서 있는 자체가 막막하다"고 토로했다.

문씨 역시 "열심히 하고 있다는 걸 보여드리면 부모님도 별 말씀 안 하신다"면서도 "3개월 인턴 후 정규직 전환 실패를 두 번이나 겪다 보니 정신적으로 피폐해진 상태"라고 씁쓸해했다.

"고립 이어질 수도"…명절 기회 삼아 환기 필요

16일 오전 서울 노량진역 인근 카페에서 공부 중인 청년들. 김하영 기자16일 오전 서울 노량진역 인근 카페에서 공부 중인 청년들. 김하영 기자
전문가들은 청년들이 명절에도 취업 준비를 이어가는 현상을 취업난 속에서 나타나는 심리적 압박의 한 단면으로 분석했다.

한양사이버대 사회복지학과 구혜영 교수는 "사회적으로 내세울 만한 성과가 없다고 느끼면 가족들에게 자신을 드러내는 것 자체를 부담스러워하게 된다"며 "가족들이 직접적인 잔소리를 하지 않더라도 청년 스스로 자존감이 크게 위축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정익중 교수는 "치열한 경쟁 체제에서 뒤처지면 낙오자가 된다는 공포감을 느낀다"며 "명절까지 취업 준비에 내몰리는 현상을 막을 수는 없겠지만, 이런 심리가 장기화될 경우 고립이나 은둔 등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취업 준비로 인한 심리적 부담을 혼자 감당하기보다 가족이나 주변 사람들과 소통하며 고립감을 줄이는 것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정 교수는 "오히려 명절은 이런 감정을 풀기 좋은 기회"라며 "취업 준비도 중요하지만 연휴 동안 심리적 고립감을 풀 방법을 스스로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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