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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영조부터 권은주, '낭만러너' 심진석까지…그들이 달리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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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스펙스, 춘천마라톤 80주년 축하 기획전 'Wish You Were Here'
각기 다른 이야기 가진 러너 12명의 소장품과 인터뷰 공개
평일 200여명, 주말 700여명의 러너들로 '문전성시'
종로구 자하문로 옛 프로-스펙스 효자점 건물에 서촌 플래그십 개장
기존 건물의 골조 살려 과거와 현재 공존하는 거점 구축

황영조 선수의 소장품인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마라톤 제패기념 우표. 곽인숙 기자 황영조 선수의 소장품인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마라톤 제패기념 우표. 곽인숙 기자  "나는 빨리 운동을 그만두는 게 목표였습니다. 이 힘든 걸 계속하기에는 너무 힘들었어요. 빨리 이 지옥에서 벗어나고 싶었고요. 마라톤이 내 꿈이었고 나를 살리기 위해 뛴 거지, 단순히 즐긴다고 말하기에는 너무 가혹한 운동입니다. 늘 불구덩이에 들어갔다 나오는 것 같았고, 매번 사선(死線)을 넘었어요. 혼신의 힘을 다한다고 말하잖아요. 그 말 자체가 혼(魂)을 태운다는 뜻이에요. 정신을, 영혼을 다 태워야 하는 거죠."

 "마지막 대회 때는 발바닥이 찢어져서 걸어 들어왔어요. 마지막 16킬로미터를 터벅터벅 걸어서. 지금은 매일 팔에 주사를 꽂고 피를 뽑고 그럽니다. 두 시간을 뛰면 탈이 나요. 그런데 죽기 전에 다시 한 번 풀코스를 뛰어보고 싶어요. 나는 사실 뛰는 게 좋아서 뛴 사람은 아니에요. 늘 뛰기 싫었어요. 그래도 꿈이 있었고 목표가 있었으니까 일어났죠. 남들이 놀 때도 저는 뛰었고요. 예전에는 대한민국을 위해 뛰었다면, 이제는 나를 위해 뛰어보고 싶어요.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한번 뛰어보려고요."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마라톤 금메달리스트 황영조 선수


권은주 선수의 소장품인 1997년 춘천 국제 마라톤을 앞두고 자신의 심경을 기록한 훈련일지. 곽인숙 기자권은주 선수의 소장품인 1997년 춘천 국제 마라톤을 앞두고 자신의 심경을 기록한 훈련일지. 곽인숙 기자 "선수 때는 기록과 경쟁 안에만 있었잖아요. 그런데 나와서 달리기 하는 분들을 보면 정말 빠른 러너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달리는 자체를 행복해하는 러너들이 더 많아요. 러닝 클럽을 통해 많은 러너들을 클럽을 접하게 되는데, 저마다 정신적으로 힘든 시간을 지나고 계신 분들이 많더라고요. 그럼에도 용기를 내어 밖으로 나와 달리면서 자신들의 삶을 조금씩 되찾아가죠. 늘 순탄한 과정은 아니지만, 그 과정 자체에서 의미를 찾고 즐거움과 행복을 느끼는 거예요."

 "사실 선수였을 때는 코스가 아무리 멋져도 그 멋진 풍경을 잘 몰랐어요. 달리는 데 집중하느라 눈여겨볼 겨를이 없었거든요. 1997년 춘천마라톤 때가 그랬어요. 현지 적응 훈련을 하면서 눈 감고도 뛸 수 있을 만큼 코스를 알고 있었는데도, 나중에 은퇴하고 러너 권은주로 돌아와서 그 코스를 뛴 게 지금으로부터 9년 전인데요. 의암댐을 내려가면서 바라보는 삼악산의 단풍이 너무 아름다운 거예요. 그 때 비로소 내가 이렇게 멋진 곳을 달렸었구나 하고 가을을 제대로 느꼈어요."
-전 국가대표 마라토너 권은주 선수


'낭만러너' 심진석 선수의 소장품인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안전화. 곽인숙 기자'낭만러너' 심진석 선수의 소장품인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안전화. 곽인숙 기자 "인터넷에 달리는 영상을 올리다 보니, 어느 날 '낭만러너'라는 별명이 붙어 있었습니다. 누가 지어줬는지는 모르는데, 아마 웃으면서, 남 탓하지 않고, 힘든 상황 속에서도 달린다는 뜻으로 지어준 것 같아요. 스무 살 무렵 집 형편이 어려워졌는데, 건설 현장에서 비계공으로 일을 했습니다. 따로 훈련할 시간을 낼 수가 없어서 새벽 출근길에 8킬로미터쯤 뛰었습니다. 안전화를 신고 물통 넣은 가방을 멘 채로요. 찬 공기를 맞으며 아무도 없는 조용한 길을 뛰는 그 자체만으로도 너무 행복했습니다. 그러던 중 2015년 6월에 처음으로 동네 5킬로미터 달리기 대회에 출전했는데, 첫 대회에서 바로 우승을 했어요. 그게 저한테는 큰 계기가 됐습니다. '내가 달리기가 맞는 사람이구나', 하면서 저의 취미이자 장점을 찾은 거죠."

 "최근에 황영조 감독님께서 소속 선수들과 함께 3주간 전지 훈련을 할 기회를 주셨습니다. 그 때 저의 가장 큰 단점인 오버페이스를 고칠 실마리를 얻었어요. 달리는 게 너무 좋아서 출발 신호가 울리면 곧바로 질주하고 싶어지거든요. 어려운 일이지만 점차 성장해가는 기분이 좋습니다. 가장 도전해보고 싶은 무대는 해외 마라톤이에요. 작년 겨울에 케냐로 훈련을 간 게 저의 첫 해외 경험이었는데, 저보다 잘 뛰는 선수들과 같이 뛴다는 게 설레었어요. 막상 가니 음식도 안 맞고 적응할 시간도 짧아서 힘든 시간을 보냈지만, 해외 마라톤은 어디든 한 번 뛰어보고 싶어요. 40년, 50년 뒤에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100살까지 달리는 게 목표예요. 기록은 좋지 않겠지만, 건강과 완주만 생각하면서 달릴 겁니다."
-'낭만러너' 심진석


이번 전시를 기획·총괄한 구은성 프로-스펙스 사업부장의 소장품인 자신이 신고 뛰던 프로-스펙스 러닝화의 밑창. 곽인숙 기자이번 전시를 기획·총괄한 구은성 프로-스펙스 사업부장의 소장품인 자신이 신고 뛰던 프로-스펙스 러닝화의 밑창. 곽인숙 기자 "아버지를 따라 처음 산악자전거를 타러 간 날이었어요. 비포장 코스라 나무 뿌리랑 돌부리로 노면이 울퉁불퉁했어요. 오르막이라 페달링을 멈추면 안 됐는데, 흙길이라 헛바퀴가 휙휙 돌았어요. 자전거가 부서질 것 같기도 하고, 내가 지금 잘 하고 있는 건가 의심도 들고요. 그때 옆에서 같이 가시던 민대장 아저씨가 그러셨어요. "자전거를 믿어라, 이런 환경 다 견뎌내도록 지어진 기계니까 믿고 힘차게 가면 된다"고요. 그 한 마디에 자전거가 나를 받쳐주겠구나 싶었어요. 신뢰가 생기니까 용기가 나더라고요."

 "디자인이라는 것이 어떤 외형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잖아요. 물론 외형이 매력적이면 소비자들의 반응이 단기적으로 올라오겠지만, 결국 브랜드를 단단하게 만드는 건 오히려 '비물질적'인 것들 같아요. 브랜드를 둘러싼 이야기, 제품들이 표현하는 감각, 이를 통해 사용자들이 꾸려가는 삶의 리듬. 그런 것들에 초점을 맞춰가도록 노력하고 있어요."
-프로-스펙스 사업부장 구은성


우리나라 마라톤의 대명사인 황영조 선수부터 1997년 춘천 국제 마라톤에서 2시간 26분 12초로 당시 한국 최고 기록을 세웠던 권은주 선수, 22만명이 넘는 구독자를 보유한 아마추어 마라톤 선수 '낭만 러너' 심진석, 전 국가대표 축구선수 이영표에 이르기까지 전문 마라톤 선수부터 일상 속에서 자신 만의 방식으로 달리는 러너까지 12명의 이야기를 담은 춘천마라톤 80주년 축하 기획전 'Wish You Were Here'이 서울 종로구 자하문로 골목 상권인 서촌 프로-스펙스 매장에서 열리고 있다.

매장 2층 '12 Scenes from the Road: 풍경의 기억'에서는 각기 다른 이야기를 가진 러너 12명의 소장품과 인터뷰를 공개한다.

전시는 12명의 러너를 기록이나 프로필로 소개하기보다 한 사람의 달리기를 이루고 있는 개인적인 이야기를 관람객이 직접 발견하도록 구성한 점이 눈에 띈다.

나무 상자에는 한 명의 러너가 자신의 달리기를 떠올리며 선택한 사물과 그에 얽힌 인터뷰가 함께 담겨 있다.

3단으로 구성된 나무 상자의 맨 아래엔 러너의 소장품, 그 위에는 러너의 인터뷰가 담겨 있어 관람객이 상자를 하나씩 열고 사물과 이야기를 살펴보면서 겉으로 드러나는 기록이나 결과만으로는 알 수 없었던 '그 사람이 달리는 이유'를 만나도록 했다.

각종 마라톤에서 다수의 상을 수상한 남성지 지큐(GQ)의 이재위 디지털 디렉터의 소장품인 마라톤 훈련 수건. 곽인숙 기자각종 마라톤에서 다수의 상을 수상한 남성지 지큐(GQ)의 이재위 디지털 디렉터의 소장품인 마라톤 훈련 수건. 곽인숙 기자특히 각각의 이야기를 하나의 독립된 상자에 담아 12명의 경험을 획일화하지 않고 개별적으로 보여주는 동시에, 한 공간 안에 서로 다른 달리기의 모습이 함께 존재하도록 구성했다.

황영조 선수는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마라톤 제패기념 우표를, 권은주 선수는 1997년 춘천 국제 마라톤을 앞두고 자신의 심경을 기록한 훈련일지를, '낭만러너' 심진석 선수는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안전화를, 이번 전시를 기획·총괄한 구은성 프로-스펙스 사업부장은 신고 뛰던 프로-스펙스 러닝화의 밑창을 내놓았다.

1층에서 열리는 'Prologue: 향하는 마음' 섹션은 장수인 사진가의 프레임으로 채워졌다. 스코틀랜드, 덴마크 훔레베크, 미국 콜로라도 등 국외 각지에서 담아낸 이미지를 슬라이드 필름 형태로 연출했다. 관람객들이 다가올 미래의 자신에게 직접 손편지를 적어 보내는 엽서 체험도 진행중이다.

1층에서 열리는 'Prologue: 향하는 마음' 섹션은 장수인 사진가의 프레임으로 채워졌다. 곽인숙 기자1층에서 열리는 'Prologue: 향하는 마음' 섹션은 장수인 사진가의 프레임으로 채워졌다. 곽인숙 기자전시는 입소문을 타고 러너들로 붐비고 있다. 평일에는 200여명, 주말에는 700여명의 러너들로 문전성시를 이룬다.

하와이 호눌룰루 마라톤 풀코스를 완주한 40대 직장인 김모씨는 "러너들 사이에 이 전시가 유명해서 오게 됐다"며 "여기 글귀들이 다 심금을 울렸다"고 말했다. 김씨는 마인드풀 러닝 코치이자 작가인 김성우 러너의 글이 가장 마음에 남았다고 했다.

한 러너가 2층 '12 Scenes from the Road: 풍경의 기억' 전시를 관람하고 있다. 곽인숙 기자 한 러너가 2층 '12 Scenes from the Road: 풍경의 기억' 전시를 관람하고 있다. 곽인숙 기자 30대 직장인 김모씨는 "몸 상태를 생각하지 않고 열심히 달리려고 했었다가 부상이 좀 심하게 왔는데 훨씬 잘 달리고 많이 달리신 분들이 써놓은 것들을 보면서 자기 반성도 하게 되고 조금 내려놓는 마음도 가지게 됐다"며 "달리기에 대한 본질, 내가 왜 처음 달리기 시작했는지에 대해 생각할 수 있어서 좋았다"고 말했다.

기획자의 의도대로 관람객 역시 다른 사람의 러닝 이야기를 보는 데서 그치지 않고 자신의 달리기와 기억을 자연스럽게 떠올리는 모습이었다.

춘천마라톤 완주 메달. 곽인숙 기자 춘천마라톤 완주 메달. 곽인숙 기자  "잘 팔리는 저가 신발을 생산하지 않기로 한 결정, 브랜드 방향성과 맞지 않는 할인 매장을 철수하기로 한 결정, 서촌에 플래그십 매장을 오픈하기로 한 결정, 쉽게 얻어낸 것이 정말 하나도 없어요. 100% 확신이라는 건 존재하지 않아요. 매 순간이 의심이고, 모든 결정이 베팅이에요. 너무너무 답답하고 숨이 막힐 것만 같아서, 한강을 달리러 나갔다가 엉엉 소리내어 울면서 뛴 적도 있어요. 그렇게 눈물이랑 땀을 다 빼고 돌아와서 다시 일을 시작하고요."

이번 전시의 기획자이자 45년 전통의 대한민국 스포츠 브랜드 프로-스펙스의 대대적인 리뉴얼을 진두 지휘하고 있는 구은성 사업부장의 인터뷰도 눈여겨 볼 만 하다.

프로-스펙스는 '스포츠 포 올(SPORTS FOR ALL)'을 핵심 가치로 내걸고, 기록과 경쟁을 넘어 누구나 자신의 방식으로 스포츠를 즐기고 도전할 수 있는 문화를 지향한다는 브랜드 철학을 제품 기획부터 디자인, 공간 전략 전반에 반영하고 있다.

러닝 카테고리를 브랜드 핵심 축으로 설정하고 산업디자인 스튜디오 SWNA와 협업해 개발한 쿠셔닝 러닝화 'SWNA SEAM 26' 등은 러너들 사이에 입소문을 타며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유통 전략도 브랜드 경험 중심으로 바꿔 서울 용산 LS타워 직영점과 아울렛을 통합 직영 매장으로 리뉴얼해 젊은 감각으로 다시 태어났다.

1층 전시장에는 1990년 당시 '프로스펙스 신장개업'이라는 현수막이 걸린 익숙한 간판의 매장 사진이 액자에 담겨져 있다. 곽인숙 기자  1층 전시장에는 1990년 당시 '프로스펙스 신장개업'이라는 현수막이 걸린 익숙한 간판의 매장 사진이 액자에 담겨져 있다. 곽인숙 기자  "한 30년쯤 전, 이 건물의 1층에 프로-스펙스 매장이 있었어요. 당시 우리 브랜드의 초기 서울 매장이었죠. 부동산 사장님이 건물 사진을 갖고 계시더라고요. 그 사진을 보고나서는 맞춰지는 느낌이었어요. 당시 회사 내부 여러 상황들을 고려하며 약간의 긴가민가함이 남아있었거든요. 역사가 있던 자리에 새로운 역사를 쓰고 싶었어요."

매장이 들어선 건물은 과거 프로-스펙스 효자점이 운영됐던 곳이다. 1층 전시장에는 1990년 당시 '프로스펙스 신장개업'이라는 현수막이 걸린 익숙한 간판의 매장 사진이 액자에 담겨져 있다.

브랜드가 쌓아온 45년 역사를 현재의 관점에서 해석하고, 그 위에 새로운 사람과 경험을 창출하는 공간으로 재구성했다.

기존 구조물을 허물지 않고 본래의 구조를 바탕으로 현대적 감각으로 되살렸다.

공간 연출은 '하이브 사옥'을 디자인한 스튜디오 씨오엠(COM)이 맡아 거친 콘크리트 골조와 테라조 바닥 위로 최소한의 하얀 철골 구조를 덧대 개방감과 고유한 개성을 극대화했다.

특히 1층 외벽 일부를 통유리로 열어 지역 주민과 방문객이 교차하는 서촌의 일상적 풍경이 매장 안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도록 했다.

시간이 흐르고 이 공간이 동네에 스며드는 장소가 됐으면 한다는 구 사업부장의 바람을 담은 것이다.

매장을 열기 전까지 줄곧 서촌에 머물며 마지막까지 공을 들인 그는 "똑같은 생각을 했던, 저마다의 오해와 결핍과 의심들을 뜨겁게 품어주고자 하는 의지를 가진 집단. 그런 커뮤니티였으면 좋겠어요"라고 공간에 대한 소망을 나타냈다.

이번 전시를 시작으로 서촌 매장에서 스포츠를 주제로 한 다양한 콘텐츠와 프로그램을 선보일 예정이다.

전시는 10월 5일까지 열린다.

프로-스펙스 서촌 플래그십 스토어 전경. 프로-스펙스 제공프로-스펙스 서촌 플래그십 스토어 전경. 프로-스펙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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