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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 독약 로비'의 명암[기자수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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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노컷뉴스의 '기자수첩'은 기자들의 취재 뒷 얘기를 가감없이 풀어내는 공간입니다.

무소속 한동훈 의원이 20일 국회에서 취재진과 만나 김승원 법무부 장관 후보자 사퇴와 이에 따른 더불어민주당의 대응과 관련해 입장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무소속 한동훈 의원이 20일 국회에서 취재진과 만나 김승원 법무부 장관 후보자 사퇴와 이에 따른 더불어민주당의 대응과 관련해 입장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중요한 건 당신이 뭐라고 말하느냐가 아니라, 사람들이 뭐라고 듣느냐다(It's not what you say, it's what people hear)."

여론조사 전문가 겸 커뮤니케이션 전략가 프랭크 런츠의 말이다. 군중의 귀가 반응할 만한 단어로 사안을 규정하고 프레임화해야 한다는 얘기다. 런츠는 실제로 상속세(estate tax)를 '죽음세(death tax)'로 대체하는 묘수를 선보였다. 미국 부시 행정부 당시 공화당 의원들에게 '죽음세'란 표현만 쓰라고 권고해 상속세 단계적 폐지가 반영된 감세안 발표를 이끌어냈다. 기후위기 문제에선 지구온난화(global warming)보다 덜 시급하고 덜 위협적으로 느껴지는 '기후변화(climate change)'를 대입하는 식이다.
 
포장을 간다고 내용물이 바뀌진 않는다. 하지만 여론의 온도는 물론, 입법지형과 정책효과까지 좌우할 수 있는 '네이밍'의 힘은 막강하다. 문제는 정치권의 전선이 중도의 상식보다는 진영의 감정을 추동하면서 형성된다는 것. 뜨겁고 독한 언어가 호응을 얻기 쉽다.
 
이런 면에서 눈길을 끈 신상 네이밍은 무소속 한동훈 의원의 "오빠 독약 로비"다.
 
먼저 전제할 것이 있다. 한 의원은 분명 청문정국의 스타다. 날마다 김승원 전 법무장관 후보자 관련 글을 SNS에 수십 건씩 올리며 브리핑한 열의는 언론 못지않았고, 실제 낙마 목표도 관철시켰다. 녹취록 등의 출처 문제와 '짜깁기 논란'은 차치하고, 신약 청탁 의혹을 쟁점화한 실력은 부인하기 어렵다. 오죽하면 법사위도 아닌 한 의원이 껄끄러웠던 더불어민주당이 '한동훈 청문회'를 띄웠을까. 어쩌면 '오빠 독약 로비'도 자신이 민주당을 가장 잘 도발할 수 있다는 자신감에서 비롯된 표현일지 모른다.
 
그러나 이 네이밍이 최선이었느냐를 묻는다면 선뜻 '그렇다'고 답하기는 힘들 것 같다. 궁극적으로는, 본질과 거리가 있는 병살타일 수 있겠다는 취지에서다.
 
저작권자가 아예 한 단어처럼 붙여쓰고 있는 합성어의 노림수는 확실하다. 코로나19 유행 당시 '신약 임상승인 로비 의혹'이라는 꽤 복잡한 사안을, 사적 친밀관계(오빠)와 독극물(독약)의 결합으로 압축해 단순화한다. 맥락과 사실관계를 따지기 전에 감정적 거부감부터 심겠다는 것이다.
 
청탁을 입증할 증거의 신빙성, 제3자 뇌물죄 성립 여부 같은 까다로운 쟁점들은 제쳐놓고, 김 전 후보자와 브로커 양모씨의 관계성을 부각하는 것. 그리하여, 수용자들로 하여금 추가적 상상의 나래를 펴게 만드는 전략이다. 김 전 후보자와 양씨의 사적 관계엔 관심이 전혀 없다고 선을 그으면서도, 김 전 후보자에게 양씨 자택에서 단둘이 찍은 사진이 있냐고 공개 질의한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스캔들의 뉘앙스를 담은 '낙인찍기'는 이슈 부양엔 분명 효과적이었다. 어떻게 제목을 뽑으면 한 명이라도 더 읽게 만들까를 고민하는 언론이 헤드라인으로 써먹기 좋은 워딩임에도 틀림없다. 하지만 많은 클릭이 기사의 퀄리티를 담보하지 않는다. '오빠 독약 로비' 역시 이 문제를 정치공세 이상의 엄정한 검증 또는 어디까지가 국회의원의 정당한 민원 수용이고 위법한 청탁인지 등의 생산적 논의로 이어가지 못했다. 

15일 김 전 후보자 청문회를 집어삼킨 것도 신약 청탁 의혹의 절차적 규명이나 주가조작 연관성이 아닌 '정치검찰' 공방이었다. 김 전 후보자는 한 의원이 검찰 내부자료를 입맛대로 왜곡했다며 "민주주의의 큰 적"이라 반격했고, 민주당 법사위원들도 가세했다. 한 의원이 "백 번, 천 번이라도 되겠다"며 일일이 맞받으면서 장외 공방전만 과열됐다. 사안의 실체는 익숙한 진영 구도에 묻혔다.

물론 민주당이 검찰 출신인 한 의원을 '검찰개혁' 프레임으로 겨냥하는 것은 새삼스럽지 않다. 문제는 한 의원 자신이 그 공세에 근거를 보태줬다는 데 있다. 김민석 민주당 대표의 20여 년 전 정치자금 사건과 '새천년 NHK' 술자리 논란까지 끌어내 "9억 받아 처먹고", "접대부 끼고 놀았다"며 몰아붙인 것이 단적이다. 김 대표가 정치자금 사건을 "검사들의 작품"으로 규정하며 한 의원을 "윤석열과 같은 핏줄의 배다른 형제"라 되받자, 공방은 결국 검찰 프레임으로 완전히 옮겨 붙었다. 의분(義憤)의 발로라기엔 뜨악한 수위의 언사가, 민주당의 낡은 레퍼토리에 되레 생기를 불어넣은 셈이다. 한 국민의힘 관계자마저 "어딘가에 쫓기는 사람 같다"고 했다.

무엇보다 '오빠 독약 로비'와 같은 네이밍은 자칫 자가당착이 되기 쉽다. 단기간 세일즈 효과가 큰 만큼 감수해야 할 리스크도 크다는 것이다. 독한 낙인은 후일 같은 잣대가 자신에게 돌아올 때 방어가 상당히 궁색해질 수 있다. '오빠', '룸살롱' 등의 자극적 단어를 주문처럼 외는 것보다는, 쿨하고 드라이한 '일격'으로 승부하는 게 좋지 않을까. 거대 야당을 제대로 견제할 보수 재건을 바라는 유권자들이 한 의원에게 바라는 언어는 '조선제일검' 시절과는 다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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