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비엔날레 전시관 전경. 김한영 기자지난 2014년 박근혜 당시 대통령을 풍자한 작품 '세월오월'의 전시 유보 사태로 책임 큐레이터직에서 물러났던 윤범모 광주비엔날레 대표가 12년 만에 다시 논란의 중심에 섰다.
21일 광주CBS 노컷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이번 논란은 제16회 광주비엔날레 파빌리온 프로젝트에 참여한 국립대만미술관의 전시 명칭에서 시작됐다.
대만 문화부와 참여 작가들은 당초 '대만 파빌리온'으로 협의했지만, 광주비엔날레 측이 지난 6월 전시 명칭을 기관명인 'NTMoFA 파빌리온'으로 변경했다며 반발했다. 국내외 미술계에서도 정치적 검열이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됐다.
재단은 국가관과 기관관을 구분하는 운영 원칙과 계약에 따른 조치일 뿐 외부 개입이나 정치적 검열과는 무관하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작품 반입과 설치까지 미뤄지자 재단은 지난 8월 25일 국립대만미술관의 요구를 받아들여 '대만 파빌리온' 명칭을 승인했다. 지난 6월 명칭을 변경한 지 두 달가량 만에 당초 명칭으로 되돌린 것이다.
논란은 외교 문제로 번졌다.
다이빙 주한 중국대사는 지난 8월 27일 민형배 전남광주통합특별시장과의 면담에서 '대만 파빌리온' 명칭 사용에 유감을 표한 것으로 알려졌다.
통합특별시는 행사 준비 과정에서 소통이 부족했다며 사과하고 수습에 나섰지만 중국 측 작가들은 작품 설치를 중단하고 전시 철회 의사를 밝혔다.
주한중국대사관도 비엔날레 개막을 이틀 앞둔 지난 3일 담화문을 내고 "대만 명칭 사용은 하나의 중국 원칙을 심각하게 위반하고 한중 관계의 정치적 기반을 훼손한다"고 반발했다.
파장은 지역 교류로도 이어졌다. 중국 지방정부·의회와 예정됐던 교류 일정이 취소되는 등 차질이 빚어졌다.
광주에는 호남권 유일의 중국 외교공관인 주광주 중국총영사관이 있다. 광주와 중국은 경제·문화·관광 등 여러 분야에서 교류를 이어왔다. 통합특별시는 판다 유치를 비롯한 대중국 협력 사업도 추진하고 있다.
이번 사태가 향후 교류에도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윤범모 광주비엔날레 대표가 지난 4일 광주비엔날레 전시관에서 열린 제16회 광주비엔날레 개막식 기자간담회에서 대만 파빌리온 명칭 논란과 중국관 전시 철수 등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김한영 기자광주 미술계에서는 재단의 미숙한 대응이 문화예술계에서 해결할 수 있었던 문제를 정치·외교 갈등으로 키웠다며 책임 규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지역 미술계는 대만 파빌리온 명칭 논란과 중국 측의 전시 철회로 올해 비엔날레의 작품성과 성과가 가려지고 있다고 우려했다. 재단이 명확한 원칙을 제시하지 못한 채 입장을 번복하고 사태 수습에도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면서 논란을 확산시켰다는 것이다.
지역 미술계의 한 관계자는 "올해 전시는 해외 작가들 사이에서 베니스비엔날레보다 좋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로 호평받고 있지만 재단의 미숙한 대응이 전시에 찬물을 끼얹었다"며 "문화예술의 영역에서 해결할 수 있었던 사안이 정치·외교 문제로까지 번진 만큼 명칭 변경과 번복 과정, 보고·승인 체계를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비엔날레 대표는 실무를 하는 자리가 아니라 문제가 발생했을 때 최종 책임을 지는 자리다"며 "광주 미술계에서는 윤범모 대표가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대형 걸개그림 '세월 오월'. 연합뉴스 윤 대표는 과거에도 이번과 비슷한 논란에 휘말린 전력이 있다.
지난 2014년 광주비엔날레 20주년 특별전에서는 홍성담 작가의 걸개그림 '세월오월'이 박근혜 당시 대통령을 풍자했다는 이유로 전시가 유보됐다. 작품은 결국 전시장에 걸리지 못했고 참여 작가들이 반발하는 등 파문이 일었다.
당시 전시 유보에 반발해 책임 큐레이터직에서 물러난 인물이 현재 재단을 이끄는 윤 대표다. 그러나 이번 논란에서도 충분한 설명이나 수습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지역 미술계에서는 지난 2014년에도 작품이 끝내 전시장에 걸리지 못한 뒤 윤 대표가 사퇴했다는 점을 들어 당시와 비슷한 소극적 대응이 되풀이되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미술계의 한 관계자는 "윤 대표는 2014년 '세월오월' 전시 파행 당시에도 사태가 커지는 것을 막거나 적극적으로 중재하지 못했고 책임을 회피하다 여론에 밀려 사퇴했다"며 "12년 만에 비슷한 논란이 되풀이됐지만 이번에도 책임지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윤범모 대표는 지난 4일 기자회견에서 대만 파빌리온 논란과 관련해 "이렇게 파행 사태까지 오게 된 것에 대해 참으로 송구하고 안타깝다"며 "중국관이 끝까지 함께하기를 원했지만 결국 전시 철수로 이어져 정말 아쉽다"고 밝혔다.
민형배 전남광주통합특별시장이 지난 8월 26일 광주청사 회의실에서 확대간부회의를 진행하고 있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제공광주비엔날레재단 이사장인 민형배 시장도 지난 8월 26일 확대간부회의에서 "예술인들이 광주를 향해 항의하고 책임자 사퇴까지 요구하는 것은 몹시 부끄러운 일이다"며 "나중에 책임을 묻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문책을 예고한 지 3주가 넘도록 진상조사나 경위 파악은 시작되지 않았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관계자는 "대만관 명칭 변경 논란과 관련해 현재까지 시 차원의 조사에 착수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책임을 묻겠다는 시장의 말도, 송구하다는 대표의 사과도 나왔지만 정작 책임 소재는 규명되지 않았다. 국가와 이념의 경계를 넘어서는 국제미술행사를 표방해 온 광주비엔날레가 오히려 외교 갈등의 중심에 섰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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