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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률의 스포츠레터]''이적 분쟁'' 김연경과 선동열, 결정적 차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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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경

 

김연경(24, 192cm)은 한국 여자배구의 보물입니다. 런던올림픽에서 36년 만에 4강 진출을 이끈 데 이어 한국 배구 사상 처음으로 종목 MVP에 올랐습니다. 서양 선수들에 밀리지 않는 당당한 신장과 탁월한 기량을 선보이며 지난 시즌 유럽 챔피언스리그에서는 터키 페네르바체의 팀 우승과 득점왕, MVP까지 거머쥐었습니다.

그런 김연경이 보다 ''넓은 물에서 놀아야 한다''는 데는 이견이 없습니다. 좁은 국내 리그를 떠나 유럽 리그의 정상급 선수들과 겨뤄야 하는 게 당연합니다. 그래야 한국 배구의 보물이 빛을 발하고 유지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최근 이른바 ''김연경 사태''의 추이를 가만히 살펴보면 이런 대명제를 벗어난 것 같습니다. 단순히 유럽 무대에서 뛸 수 있게 해줘야 한다는 순수한 의도가 스타 플레이어를 두고 이권이 걸려 있는 불순한 냄새가 풍기기 때문입니다. 또 선수를 둘러싼 이해 당사자들이 모두 수긍할 수 있는 해결책이 아닌, 어느 한 쪽만 이득을 보는 ''이기주의''의 단면이 보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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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김연경 사태는 17년 전 선동열 현 프로야구 KIA 감독의 일본 진출 때를 떠올리게 합니다. 둘 모두 국내 무대를 평정해 더 이상 남아 있을 이유가 없던 걸출한 스타입니다. 또 열화와 같은 국민들의 성원에 해외에서 뛰어야 한다는 여론이 비등한 상황도 비슷합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결정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17년의 세월을 지나 과연 두 불세출의 스타 사이에는 어떤 다른 점이 있을까요?

▲선동열 "해외 진출시켜달라"…김연경 "FA로 풀어달라"

지난 1995년 프로야구 한일 슈퍼게임 이후 당시 해태(현 KIA) 투수 선동열은 해외 진출을 선언합니다. 이룰 것은 모두 이룬 선동열에게 국내 무대는 더 이상 의미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선동열은 지난 1985년부터 11시즌 동안 투수 3관왕만 4차례에, 팀 우승도 6차례나 일궈냈습니다. 당시 나이 32세, 전성기가 지나기 전, 은퇴 하기 전에 더 큰 무대를 밟겠다는 선수의 간절한 의지였습니다.

당연히 해태는 전력의 핵인 선동열의 해외 진출을 극력 반대했습니다. 하지만 해태 불매운동 등 엄청난 여론의 힘과 은퇴를 불사한 선동열의 의지에 밀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당시 해태의 여론 조사 결과 선동열의 해외 진출에 찬성하는 국민은 80%에 이르렀습니다. 결국 해태 구단은 해외 진출을 허락했고, 선동열은 주니치 유니폼을 입고 꿈에 그리던 일본 무대를 밟게 됐습니다.

김연경도 17년 전의 선동열 감독 때처럼 해외에서 뛰기를 간절하게 원하고 국민들도 성원을 보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상황은 다소 차이가 있습니다. 김연경은 이번 사태가 터지기 전 해외 무대에서 지난 시즌까지도 뛰었습니다. 지난 시즌 터키 페네르바체에서 뛰기 전 일본 무대에서 두 시즌을 합하면 세 시즌입니다.

사실 이번 시즌도 최근 일련의 사태에 앞서 본인이 원한다면 해외에서 뛸 수 있는 여건은 됐습니다.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흥국생명 소속으로 임대 선수로 해외로 나가 뛸 수 있었던 겁니다. 해외에서 뛰느냐, 못 뛰느냐의 문제가 아니라는 겁니다.

하지만 김연경은, 아니 김연경 측은 FA(자유계약선수)를 원했습니다. 흥국생명 소속이 아닌 자유로운 신분에서 터키 페네르바체로 완전 이적을 주장한 겁니다. FA가 아닌 임대 선수로 뛰는 것을 거부했습니다. 정말로 원했던 바는 해외에서 뛰는 게 아니라 FA 신분이었던 겁니다.

지난 19일 김연경은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었습니다. 여기서 김연경은 "코트에 서지 못해 고통스럽다. 해외 무대에서 정말로 뛰고 싶다"고 호소했습니다. 대한배구협회와 흥국생명이 국제이적동의서(ITC)를 발급해주지 않으면 터키에서 뛰지 못하는 것처럼 얘기했습니다. 임대 계약을 맺으면 ITC가 발급되고 터키에서 뛸 수 있다는 내용은 빠졌습니다. 김연경 측이 임대 계약은 원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제대로 주장을 하려면 "FA로 해외에서 뛰게 해달라"고 호소했어야 했던 겁니다.

▲선동열-해태, ''윈-윈'' 임대…김연경 계약의 수혜자는?

선동열

 

선동열은 일본 주니치에 입단하면서 3억 엔(당시 24억 원)이라는 거액의 임대료를 받았습니다. 이는 당시 재정이 열악하던 해태 구단에는 적잖은 도움이 됐습니다. 국보급 투수를 해외로 보내기로 양보한 대신 구단 운영자금을 마련한 겁니다. 선동열은 원하는 해외 진출을 이뤘고, 구단은 돈을 얻었습니다. 양 측 모두 수긍하는 ''윈-윈''의 사례였습니다. 이후 프로야구에서는 이종범(당시 해태)과 이상훈(당시 LG)도 같은 형식으로 주니치에 입단해 해외 진출의 꿈을 이뤘습니다.

김연경의 경우는 다소 다릅니다. 김연경의 원 소속구단 흥국생명은 선수의 해외 진출로 얻은 것이 거의 없습니다. 일본 JT 마블러스에 김연경을 보냈지만 임대료를 받지 않았습니다. 김연경이 국내 4시즌 동안 우승을 3번이나 이끈 만큼 대승적인 차원에서 일본 진출을 허락했고, 이 부분에 대해서는 김연경 본인도 여러 차례 감사의 뜻을 밝혔습니다. 다만 김연경에게 3,300만 원을 받아 김연경 장학금을 만들었고 박정아 등 신인급 선수들이 수혜를 봤다는 게 흥국생명 측의 입장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 김연경 측은 이렇다 할 이견이 없습니다.

하지만 지난 7월 김연경 측이 터키 페네르바체와 맺은 FA 계약은 흥국생명을 완전히 배제한 겁니다. 이미 자유계약선수 자격을 얻어 더 이상 흥국생명 소속이 아니라는 겁니다. 이런 논리라면 흥국생명은 선수도 잃고, 이적료 등 금전적인 혜택도 얻을 수 없습니다. 선수의 뜻을 존중해 해외 진출을 도왔는데 되돌아온 것은 아무 것도 없게 되는 셈입니다.

물론 한국배구연맹(KOVO)의 FA 규정에 문제는 있습니다. 지난 시즌 터키 페네르바체 시절 지원과 그 이후 해외 구단 물색에 흥국생명이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아 섭섭한 부분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이번 김연경 측의 FA 계약 추진은 규정과 도의를 넘어 자신의 권리만을 찾으려는 것 같아 씁쓸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특히 이번 사태에는 선수 본인이 아닌 다른 이해 관계자가 적극 개입한 것 같아 더욱 개운치 않은 뒷맛을 남깁니다. 지난 2009-10시즌 일본이나 지난 시즌에는 특별한 말이 없다가 이번 시즌에야 KOVO 규정의 문제점을 고치겠다고 나서는 부분입니다. 잔다르크처럼 다른 선수들을 위해 희생하겠다는 선수 본인의 정신이야 칭찬받아 마땅하지만 하필이면 김연경 측의 주장이 관철되지 않은 상황에서 나왔다는 시점이 그렇습니다.

무엇보다 문제를 스포츠가 아닌 정치의 분야로 끌어들였다는 점이 석연치 않습니다. 선거를 앞두고 얄팍하게 여론을 등에 업은 국회의원들에게 제대로 된 해결책이 나오길 기대하기는 무리입니다. 더군다나 당시 회견에는 스포츠에서 관용적으로 사용되는 ''세리머니''의 뜻조차 제대로 알지 못한 채 대한체육회 국정 감사장에서 ''국어 공부를 제대로 하라''고 어이없이 외치던 의원도 있었습니다. 소위 ''꾼''들의 입김이 작용하지 않았나 하는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는 대목입니다.

▲선동열-해태, ''윈-윈'' 임대…김연경 계약의 수혜자는?

김연경

 

김연경이 임대 계약이 아닌, FA 계약을 맺으면 이득을 보게 되는 당사자들이 분명히 있을 겁니다. 물론 선수가 더 많은 혜택을 받아야 하는 것도 당연합니다. 그러나 정작 더 큰 무대에서 더 많은 활약을 펼쳐야 하는 선수의 미래보다 주변인들의 ''떡고물''이 본위가 되는 상황은 결코 바람직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김연경 선수와는 약간 안면이 있습니다. 여자대표팀의 국제대회 취재와 소속 회사의 방송 출연 섭외 등으로 몇 차례 인사와 얘기를 나눴습니다. 직업을 떠나 세계 정상을 다투는 빼어난 기량에 여자 선수답지 않게 솔직하고 털털한 성격과 화끈한 말 솜씨에 팬을 자처하고 있습니다. 김연경 선수가 런던올림픽 4강전에서 미국에 아쉽게 패한 뒤 인터뷰에서 분한 기분을 삭이지 못하고 씩씩거릴 때는 덩달아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반면 흥국생명은 개인적으로 예전 감독 경질 사태 등으로 이미지가 원체 좋지 않았습니다. 이번 사태의 가장 큰 원인도 흥국생명의 어설픈 구단 운영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일본 임대 때부터 확실하게 계약 관계를 설정해놨으면 이런 일은 없었을 것인데 하며 혀를 차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개인적인 호불호를 떠나 이런 기사를 쓸 수밖에 없는 겁니다.

22일 문화체육관광부가 대한체육회와 대한배구협회, KOVO, 흥국생명 수뇌부와 만나 ''김연경 사태''에 대한 긴급 회의를 열고 대책을 내놨습니다. 그러나 ''언 발에 오줌누기'' 식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구단과 협회를 윽박지른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닙니다. 1년 뒤에 또 다시 같은 문제가 수면 위에 떠오를 수 있습니다. 1년 뒤에는 김연경 선수가 이런저런 이권을 떠나 세계적인 스타로 거듭날 여건이 마련되기를 바랄 뿐입니다.

P.S. : 선동열 감독은 주니치에서 4년을 뛴 뒤 지난 1999시즌을 마지막으로 현역에서 은퇴했습니다. 당시 전성기 못지 않은 구위를 자랑하던 선감독은 일본을 떠나 더 큰 무대인 메이저리그 진출도 노렸지만 아쉽게 유니폼을 벗어야 했습니다. 이런저런 이유들이 있지만 야구계에서는 중간에 개입한 사람들에 마음이 상한 선감독이 은퇴를 선언할 수밖에 없었다는 공공연한 소문이 돌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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