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이 띄운 '대입 지역비례선발제', 지방소멸 해법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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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저출생 인구위기는 지역의 소멸을 뜻합니다. 이대로라면 2047년 전국 229개 시·군·구 모두가 소멸위험지역으로 분류됩니다. 대한민국 전체가 침몰하는 가운데, 눈앞의 불균형은 지역소멸을 가속화하고 있습니다. 이제라도 소멸의 시계를 멈춰 세울 상생의 해법을 찾아야 합니다. 창사 70주년을 맞은 CBS노컷뉴스는 이를 위해 <지역을 살피다, 미래를 살리다> 연속 기획을 마련합니다. CBS 기자들이 전국 각지를 돌며 진단한 현실과, 모색해 본 해법들을 10편에 걸쳐 연재합니다.

[CBS 창사 70주년 특별기획: '지역을 살피다, 미래를 살리다'⓹]

한국은행 'BOK 이슈노트', 서울대 등 상위권대 '지역별 비례선발제' 파격 제안
강남 3구 학교 출신, 2024학년도 서울대 합격자 중 12.5% 차지
서울대·연세대·고려대, '지역별 비례선발제'에 부정적 반응
"지역별 비례선발제…지방 인재의 수도권 대학 이동, 지역 소멸 못 막아"
의대처럼 로스쿨도 '지역인재전형' 선발 비율 늘려야
대학 졸업 후 노동시장과 연계돼야…"결국은 일자리"

연합뉴스연합뉴스
▶ 글 싣는 순서
①가장 가까운 2차 병원 '4시간 48분'…지역의료 붕괴 '골든타임'
②사라지는 마을, 학교…대한민국 '소멸 쇼크' 현장 보고서
③"지역에 돈이 안 돈다"…기업·청년 실종보고서[영상]
④어르신 돌보고, 음악가 꿈 키우고…내 고향 지키는 '기부금'
⑤한은이 띄운 '대입 지역비례선발제', 지방소멸 해법인가?
(계속)

한국은행이 지난 8월 발간한 'BOK 이슈노트-입시경쟁 과열로 인한 사회문제와 대응방안' 보고서는 교육계에 적지 않은 파장을 몰고 왔다.
 
한은이 업무 범위를 벗어난 교육 이슈를 다룬 데다, 그 내용도 서울대 등 상위권대가 앞장서서 신입생을 지역별 학생수에 비례해 선발하자는 파격적인 제안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BOK 이슈노트는 "광복 이후부터 지난 정부까지 대입제도는 큰 폭의 개편만 고려하더라도 총 24회나 변경됐지만, 입시경쟁 과열로 인한 사회문제가 완화된 모습은 찾기 어렵다"고 밝혔다.


보고서는 사교육 부담 및 교육기회 불평등 심화, 저출생, 수도권 인구 집중 등 구조적 사회문제가 서울 강남 3구(강남·서초·송파구)를 중심으로 한 지나친 입시 경쟁에서 비롯됐다며,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지역별 비례선발제'를 제시했다.
 
특히 서울대 입학생 중에서 강남 3구에 사는 부유층 학생들의 입학비중이 지나치게 높은 것에 대해 우려했다. 국회 교육위 소속 국민의힘 정경희 의원실이 지난 3월 서울대에서 받은 '2024학년도 서울대 합격자 출신 고교별 현황(최초합격자 기준)' 자료에 따르면, 강남 3구 출신은 총 466명으로 전체 합격자(3726명)의 12.5%에 달했다. 강남 3구 출신 비율은 2020학년도 11.2%, 2022학년도 11.9%, 2024학년도 12.5%로 상승 추세다.
 
국회 기획재정위 소속 국민의힘 박수영 의원은 지난 10월 "서울대 등 상위권 대학이 지역별 비례선발제를 도입하면 입시를 위해 서울로 인구가 집중되는 현상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을 것"이라며 "교육열에서 파생해 고착화한 사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파격적인 접근을 고려해야 한다"고 힘을 실었다.
 
박 의원실이 2024학년도 입시 서울대 합격자 수를 지역별 고3 학령인구 비율에 맞춰 시뮬레이션한 결과, 전국 17개 시도 중 서울·대전·세종 등 3곳만 서울대 합격자 수가 감소하고 나머지 14개 지역은 모두 합격자가 늘어난 것으로 분석됐다.
 
2024학년도 입시 기준 전국 고3 학생 수는 39만4940명, 서울대 합격자는 전체의 0.93%인 3685명(최초 합격자 기준, 검정고시·외국소재고 출신 제외)이다. 이를 지역별 학령인구 수에 대비하면 서울은 합격자 수가 1306명에서 603명으로 703명이 줄고, 대전은 136명에서 114명으로, 세종은 70명에서 33명으로 줄었다. 나머지 14개 지역은 모두 합격자가 늘었다. 증가 인원은 경남이 115명으로 가장 많고, 경기(86명), 전남(82명), 전북·경북(각 79명) 순이었다.
 

서울대·연세대·고려대, '지역별 비례선발제'에 부정적 반응


하지만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등 상위권 대학들은 '지역별 비례선발제' 도입에 대해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유홍림 서울대 총장은 지난 10월 15일 국회 교육위 국정감사에서 "현행 입시에서 (지역별 학생 수를) 할당이나 비례 형태로 반영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며 반대 입장을 밝혔다.
 
서울대는 다만 "2005학년도부터 수시모집에 '지역균형전형'을 국내 처음으로 도입했고, 2024학년도부터는 정시모집에도 '지역균형전형'을 도입해 운영하고 있다"면서 "지역균형전형 외에도 사회통합·농어촌·저소득 등 기회균형전형을 별도로 실시해 대학 신입생의 다양성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서울대는 국회 교육위 더불어민주당 소속 김문수 의원실에 "향후 지역균형전형 모집정원에 대한 일괄적인 수적 확대보다는 지역적 다양성을 높일 수 있도록 전형을 개편할 예정이다. 개편안에 대해서는 현재 자체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전문가 자문과 학내 의견 수렴이 진행되고 있다"고 밝혔다.
 
연세대와 고려대는 국회 기획재정위 소속 차규근 조국혁신당 의원실에 '지역별 비례선발제'는 시기상조라는 입장을 밝혔다.
 
연세대는 "현재는 검토한 바 없으며, 대내외적 상황 뿐 아니라 교육적 의의까지 종합적으로 고려해 장기적 관점으로 접근함이 바람직하다고 판단된다"고 밝혔고, 고려대는 "지역할당제는 우리나라의 경쟁적 입시 환경과 국민 정서를 감안할 때 시기상조"라며 "이미 학교추천전형과 같은 지역균형 전형을 시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광주교대 교육학과 박남기 교수는 "지역별 비례선발제를 도입할 경우 서울 강남 학생들의 의대 등 상위권 대학 진학률이 낮아지는 대신 지방 학생들의 상위권 대학 진학률이 높아질 것"이라며 "그런 관점에서 보면 지방에 있는 인재가 다시 수도권 대학으로 이동할 것이기 때문에 지역 소멸을 막을 수는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지역인재 선발하는 '지역인재전형' 크게 확대해야


교육 전문가들은 지방 대학을 살릴 수 있는 현실적인 대안으로 지역인재전형 확대를 꼽았다. 이를 통해 지방 대학들이 지역 우수 인재들을 많이 뽑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성천 교육정책디자인연구소 소장은 "중고교를 해당 지역에서 나온 학생들을 대상으로 해서 별도로 뽑는 지역트랙을 더 늘려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러면서 "중고교를 해당 지역에서 다닌 학생들이 대학도 해당 지역에서 졸업할 경우 굳이 서울로 가지 않고 지역에 남을 가능성이 더 높지 않겠느냐"며 "로스쿨에 대해서도 지역인재 전형을 의대처럼 크게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이른바 메디컬 학과로 불리는 의대·약대·치대·한의대는 '지방대육성법'에 따라 2023학년도부터 신입생의 40%(강원·제주는 20%)를 해당 권역 출신 중에서 선발해 오고 있다. 교육부는 2025학년도부터 비수도권 메디컬 학과에 지역인재전형으로 60% 이상 선발하도록 권고한 바 있다.
 
지역인재전형에 응시하기 위해서는 6개 권역(부울경·대구경북·강원·충청·호남·제주 권역) 중 대학이 속한 권역에서 고교 교육과정을 이수해야 하고, 2028학년도 대입부터는 중학교도 비수도권에서 나오도록 요건이 강화된다.
 
종로학원이 2025학년도 신입생 모집 요강을 분석한 결과, 전국 25개 로스쿨 중 지역인재전형을 운영 중인 곳은 11곳이다. 로스쿨의 지역인재전형 모집인원은 전체 선발인원의 15% 이상이어서, 메디컬 학과에 비해 크게 낮다.


다만 박 교수는 "단순히 지역인재전형 비율을 높일 경우 지역에 있는 상류층들에게 특혜를 주는 셈이 되는 만큼, 사회통합전형과 접목시켜 해당 지역에 거주하는 학생들 중에서 사회적 약자에 해당하는 학생들의 비율을 좀 높여줘야 그 제도의 취지가 살아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거점국립대 지원 확대, 특화된 대학 학과 집중 육성 필요

 
김 소장은 "지방국립대에 대한 예산지원을 늘릴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같은 국립대라 하더라도 서울대와 지방 국립대 간에 예산 지원에서 상당히 차이가 나고 있다"며 "거점국립대를 중심으로 해서라도 과감하게 투자해 학생들이 가고 싶어하는 대학으로 만들려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대학알리미에 따르면, 지난해 학생 1인당 교육비의 경우 서울대가 6059만원인데 비해 9개 비수도권 거점국립대의 경우 최소 2248만원(강원국립대)에서 최대 2645만원(경북대)으로 서울대의 절반에도 못 미쳤다.


학생 1인당 교육비는 대학이 대학원생을 포함한 재학생의 교육을 위해 투자한 총액을 학생 수로 나눈 것으로, 교육여건을 나타내는 지표다.
 
반상진 전북대 교육학과 교수는 "정부는 책임을 지고, 지방대학에 대한 집중적인 재정 투자를 해야 된다. 제가 항상 예를 드는 게, 카이스트나 포항공대를 지방대학이라고 얘기하지 않는다. 거기는 국립대학보다도 4배, 5배가 더 투자 된다. 투자가 된 만큼 대학이 좋아진다. 그러니까 지방을 살리려면 좋은 대학을 많이 만드는 투자를 확대하는 게 가장 필요하다"고 밝혔다.
 
박 교수는 "강력하게 생존 의지를 가지고 있고 또 그걸 보다 효율적으로 운영해 갈 수 있는 대학들을 제대로 평가해 그러한 대학에 파격적인 지원을 해야 한다"고 밝혔다.
 
종로학원 임성호 대표는 "지역 학생들은 물론 외부 학생들도 끌어들일 수 있도록 지역 내에서 명문 의대와 같은 특화된 대학 학과를 집중 육성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교육부는 지역소멸에 대한 위기의식으로, 지난해부터 과감한 혁신과 지역과의 긴밀한 협력을 기반으로 지역-대학의 동반성장을 이끌어 갈 세계적 수준의 특화 분야를 지닌 비수도권 소재 대학을 글로컬(glocal) 대학으로 선정해 집중 육성에 들어갔다.
 
교육부는 지난해와 올해 글로컬대학 각각 10곳씩을 선정했으며, 2025~2026년에 5개가량씩을 선정하는 등 2026년까지 비수도권 지역에서 30곳을 글로컬대학으로 선정할 방침이다. 글로컬 대학으로 선정되면 1곳당 5년간 1천억원씩 지원된다.
 
최근 대학들은 한 해도 거르지 않고 문을 닫는 추세다. 2020년 이후만 살펴보면, 2020년 부산 해운대구의 동부산대, 2021년 전북 군산의 서해대, 2022년 전남 광양의 한려대, 지난해 경남 진주의 한국국제대에 이어 올해는 강원 강원관광대가 문을 닫았다.
 

대학졸업자, 지역정주 위해 노동시장과 연계돼야…"결국 일자리"

 
대학 졸업생이 지역사회에 정주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노동시장과의 연계가 선행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한국직업능력연구원에 따르면, 지역 경제의 쇠퇴는 청년층의 일자리에도 영향을 미쳐 수도권(서울 51.8%, 경기 49.9%, 인천 49.2%)의 청년(15~29세) 고용률은 약 50%로 전국 평균인 43.4%보다 높지만, 비수도권(전남, 경북, 경남, 광주, 전북, 세종)의 청년 고용률은 40%에도 미치지 못했다. 일자리가 없으니 서울 등 수도권으로 몰리는 악순환이 계속되는 것이다.
 
직업능력연구원 백원영 연구위원은 "인구 유입에 의존하는 방식에서, 질적 투입인 고숙련 인재의 양성과 활용으로 지역인재정책을 전환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박 교수는 "지역 소멸과 관련된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은 일자리다. 어떠한 기업을 어떻게 유치해서 젊은이들이 일자리를 갖도록 할 것인가 하는 부분이 핵심"이라고 밝혔다.

대입은 물론 대학 졸업 이후까지 아우르는 교육 당국의 보다 입체적인 대응책 마련이 요구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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