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태령 투쟁 그리고 故백남기…"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한다"[다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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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농민회총연맹 전봉준 투쟁단 농민들이 지난 21일 오후 윤석열 대통령 체포·구속 등을 촉구하며 트랙터와 트럭을 몰고 상경하던 중 서울 남태령 고개 인근에서 진입을 막는 경찰과 대치하고 있다. 오른쪽 사진은 지난 2016년 9월 27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故) 백남기 농민 빈소에 조문하려는 시민들 발길이 이어지는 모습. 박종민·류영주 기자전국농민회총연맹 전봉준 투쟁단 농민들이 지난 21일 오후 윤석열 대통령 체포·구속 등을 촉구하며 트랙터와 트럭을 몰고 상경하던 중 서울 남태령 고개 인근에서 진입을 막는 경찰과 대치하고 있다. 오른쪽 사진은 지난 2016년 9월 27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故) 백남기 농민 빈소에 조문하려는 시민들 발길이 이어지는 모습. 박종민·류영주 기자
"오늘 남태령에 가려고 신발을 고르다가 경찰들이 가로막는다는 말에 방수화를 신어야 하나 고민했다. 그리고 문득 백남기 어르신이 별이 된 이후 전농의 투쟁으로 물대포가 더이상 나오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죽은 자는 산 자를 온 힘으로 돕는다. 그리고 산 자는 죽은 자를 온 몸으로 기억한다."

지난 22일 한 누리꾼이 SNS에 올린 뒤 온라인을 달구는 글이다. 하루 만인 23일 오후 3시 현재 70만회 가까운 조회수를 기록할 정도니 그 넓은 공감의 폭을 짐작할 수 있다.

토요일이던 지난 21일, 전국농민회총연맹 소속 농민들은 전국 각지에서 트랙터와 트럭 등을 몰고 상경 시위에 나섰다. 하지만 서울 서초구 남태령역 부근에서 경찰이 친 견고한 차벽에 막혔다. 농민들은 소식을 듣고 달려온 수많은 시민들과 함께 경찰을 상대로 이틀에 걸쳐 30여시간 동안 밤샘 대치를 벌였다. 그리고 끝내 길을 내 한남동 대통령 관저 앞까지 행진, 대통령 윤석열 체포·구속을 외쳤다.

남태령에서 경찰과 대치할 당시 농민들과 시민들 사이에서는 고(故) 백남기 농민 이야기가 널리 회자된 것으로 전해진다.

여전히 생생하다. 지난 2015년 11월 민중총궐기 투쟁대회에서 경찰이 쏜 물대포에 맞고 쓰러져 의식불명 상태에 놓인 백남기 농민은 317일 만인 이듬해 9월 끝내 세상을 떠났다.

당시 시위 현장에 물대포는 어김없이 등장했다. 평생을 민주화에 헌신해온 백남기 농민의 죽음 이후 물대포 직사 살수 등 집회·시위 대응 방식의 반인권성이 도마 위에 올랐다. 결국 2020년 경찰의 살수차 물대포 사용에 대한 기준이 법령에 엄격하게 규정됐다. 그해 헌법재판소 역시 백남기 농민에 대한 경찰의 직사 살수가 과잉 대응이었다는 취지를 담은 판결을 내렸다.

그렇게 지금 우리는 보다 안전한 환경 위에서 우리네 권리인 집회와 시위를 행사하기 위해 거리로 나선다. 위 누리꾼의 SNS 글에서 "죽은 자는 산 자를 온 힘으로 돕는다. 그리고 산 자는 죽은 자를 온 몸으로 기억한다"는 글귀는 그 단초가 된 백남기 농민을 기리는 의미이리라.

"죽은 자는 산 자를 온 힘으로 돕는다…산 자는 죽은 자를 온 몸으로 기억한다"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한강 작가가 10일(현지시간) 스웨덴 스톡홀름 시청사에서 열린 연회에서 수상 소감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2024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한강 작가가 10일(현지시간) 스웨덴 스톡홀름 시청사에서 열린 연회에서 수상 소감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아시아 여성 첫 노벨문학상에 빛나는 소설가 한강은 지난 8일(한국시각) 스웨덴 스톡홀롬 한림원에서 열린 노벨문학상 수상자 강연을 통해 5·18민주화운동을 다룬 소설 '소년이 온다' 집필 과정을 회고했다. 당시 그는 "이십대 중반에 일기장을 바꿀 때마다 맨 앞페이지에 적었던 문장들"이라며 다음과 같은 두 물음을 전했다.

"현재가 과거를 도울 수 있는가? 산 자가 죽은 자를 구할 수 있는가?"

그러나 한강은 "자료를 읽을수록 이 질문들은 불가능한 것으로 판명되는 듯했다. 인간성의 가장 어두운 부분들을 지속적으로 접하며, 오래전에 금이 갔다고 생각했던 인간성에 대한 믿음이 마저 깨어지고 부서지는 경험을 했기 때문"이라며 말을 이었다.

"이 소설을 쓰는 일을 더이상 진척할 수 없겠다고 거의 체념했을 때 한 젊은 야학 교사의 일기를 읽었다. 1980년 오월 당시 광주에서 군인들이 잠시 물러간 뒤 열흘 동안 이루어졌던 시민자치의 절대공동체에 참여했으며, 군인들이 되돌아오기로 예고된 새벽까지 도청 옆 YWCA에 남아 있다 살해되었던, 수줍은 성격의 조용한 사람이었다는 박용준은 마지막 밤에 이렇게 썼다. '하느님, 왜 저에게는 양심이 있어 이렇게 저를 찌르고 아프게 하는 것입니까? 저는 살고 싶습니다.'"

한강은 "그 문장들을 읽은 순간, 이 소설이 어느 쪽으로 가야 하는지 벼락처럼 알게 되었다. 두개의 질문을 이렇게 거꾸로 뒤집어야 한다는 것도 깨닫게 되었다"며 아래와 같이 강조했다.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는가?"

한강은 "이후 이 소설을 쓰는 동안, 실제로 과거가 현재를 돕고 있다고, 죽은 자들이 산 자를 구하고 있다고 느낀 순간들이 있었다"고 역설했다.

우리 모두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해방 이후 80년이 흐르는 동안 이 나라의 주인은 국민이라는 자명한 이치를 증명하기 위해 수많은 피를 흘려왔다는 사실을. 그 숭고한 길을 잊지 않고 뼛속 깊이 각인했기에 윤석열 정권이 벌인 12·3 내란사태로 휘청이는 나라를 다시 일으켜 세우고자 시민들이 떨쳐 일어난 것이리라.

시린 광장에서 우리는 다시 한번 절실하게 느끼고 있다. 너와 나는 서로서로 연결돼 있다는 엄연한 이치를. 그리고 앞서 소개한 누리꾼 글을 빌린다. "죽은 자는 산 자를 온 힘으로 돕는다. 그리고 산 자는 죽은 자를 온 몸으로 기억한다"는 명백한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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